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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회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시편 53:1~6절)

작성자손정호|작성시간26.06.15|조회수4 목록 댓글 0

https://youtu.be/ncQ8cQHtEQI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시편 53:1~6)

 

오늘은 시편 53편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으시겠습니다.

 

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그들은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여기서 ‘어리석은 자’는 지적 능력이 떨어지거나 학력이 낮은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어 원어로 ‘나발(Nabal)’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이는 ‘도덕적·영적으로 완고하고 미련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 하는 사람입니다.

 

한 무신론자 과학자와 하나님을 믿는 친구가 사막을 걷고 있었습니다. 걷다 보니 모래 위에 아주 정교하고 아름다운 금시계 하나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무신론자가 말했습니다. "와, 신기하네. 수백만 년 동안 바람이 불고 모래가 뒤섞이면서 우연히 태엽과 톱니바퀴가 맞물려 이런 시계가 만들어졌나 봐!"

그러자 하나님을 믿는 친구가 황당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습니다. "자네 제정신인가? 이 시계가 아무리 길가에 굴러다니고 있었어도, 이걸 만든 '시계 기술자'가 있다는 건 상식 아닌가? 이 정교한 시계도 만든 이가 있는데, 시계보다 천만 배는 더 정교하게 돌아가는 지구와 우주, 우리 인간이 우연히 생겼고 주인이 없다고 말하는 게 진짜 과학적인가?"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통제나 간섭을 받지 않고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내 마음대로 살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입 밖으로 크게 무신론을 외치지 않더라도, 적어도 자신의 '마음' 속에서는 하나님을 완전히 지워버린 채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믿으니, 은밀한 생각과 행동을 지켜보시는 분도 없고, 먼 훗날 내 삶을 심판하실 분도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마음의 중심이 결국 삶의 전반적인 타락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이라는 절대적인 기준이 사라진 인간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세 단계로 보여줍니다.

그들은 부패하며: '부패'는 본질이 썩어 냄새가 나고 망가진 상태를 뜻합니다. 영혼의 공급원이신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도덕적으로 썩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단순히 속으로만 타락하는 것이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으로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죄악을 뿜어내기 시작합니다. 기준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나의 이익과 쾌락'이 되기 때문입니다.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여기서 '선'은 하나님 기준에서의 참된 선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인간의 선한 행위는 결국 자기만족이나 평판을 위한 것일 때가 많습니다. 

 

2. 하나님이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사 지각이 있는 자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하나님은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살피고 계십니다. 여기서 '굽어살피사'는 마치 재판장이 판결을 내리기 전에 증거를 면밀히 조사하듯, 인간의 마음 중심과 행동을 아주 정확하게 감찰하시는 모습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간절히 찾으시는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지각이 있는 자: 여기서 '지각'은 세상적인 지식이나 IQ가 높은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우주 만물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영적인 현실을 올바르게 분별하는 영적 지혜'를 뜻합니다. 즉, 내 인생의 창조주와 심판주가 누구인지 똑바로 인지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구하며, 그분의 뜻대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입니다. 내 힘으로 살 수 없음을 고백하며 매일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는 사람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내려다보시는 이유는 '누가 죄를 짓나 보고 벌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어떻게든 하나님을 경외하고 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그 한 사람'을 찾아 은혜를 베푸시고 구원하시기 위한 간절함이 담겨 있습니다.

 

3.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한 사람도 없도다

여기서 '물러가다'라는 단어는 원래 있던 바른 궤도에서 이탈하여 '등을 돌리고 도망치다', 혹은 '배반하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인간이 마땅히 서 있어야 할 자리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밀어낸 채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자기 욕심을 따라 제 갈 길로 가버린 상태를 의미합니다.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히브리어 원어로 '더러운 자'는 우유나 음식이 '상해서 썩어 문드러진 상태'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주목할 점은 '함께'라는 표현입니다. 죄는 엄청난 전염성이 있어서, 한 사람이 궤도를 이탈하면 도미노처럼 주변 사람들도 함께 동조하고 타락하게 만듭니다. 결국 사회 전체가 거대한 죄의 문화를 형성하여, 다 함께 영적으로 썩어 냄새가 나는 비참한 상태에 이르렀음을 고발합니다.

 

"한 사람도 없도다", 예외 없는 전적 타락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온전한 선을 행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훗날 사도 바울은 이 구절을 그대로 인용하여 로마서 3장 성경에 기록합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로마서 3:10;12)

바울이 이 절망적인 시편 구절을 인용한 이유는, 모든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받을 수 없는 절망적인 존재임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내 의로움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만이 유일한 살길이자 소망입니다.

 

4. 죄악을 행하는 자들은 무지하냐 그들이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여기서 ‘무지하냐’라는 표현은 지식이 없어서 몰랐냐는 뜻이 아니라, "그들이 정말 아무것도 깨닫지 못할 만큼 미련하단 말이냐?"라는 하나님의 강한 탄식과 책망이 담긴 질문입니다.

 

"떡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성경 전체를 통틀어 악인들의 착취를 이보다 더 생생하고 소름 끼치게 표현한 구절은 드뭅니다. 악인들이 힘없는 자들, 특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고 그들의 재산과 노동력을 빼앗는 일을 마치 매일 밥 먹듯이 당연하고 예사롭게 행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양심의 가책이나 주저함이 전혀 없는 상태입니다.

 

주목해야 할 단어는 '내 백성'입니다. 악인들은 그저 힘없는 약자를 괴롭힌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내 백성', '내 자녀'로 부르십니다. 내 자식들이 세상에서 떡처럼 씹히고 짓밟히는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의 찢어지는 아픔과 분노가 이 표현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을 부르지 아니하는도다", 영적 교만의 극치입니다. 악인들이 이토록 잔인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을 부르지 않기 때문(예배와 기도의 부재)입니다.

 

5. 그들이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너를 대항하여 진 친 그들의 뼈를 하나님이 흩으심이라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셨으므로 네가 그들에게 수치를 당하게 하였도다

악인들은 돈과 권력, 군사력을 쥐고 있었기에 평소에는 "아무도 나를 건드릴 수 없다"며 전혀 두려움이 없는 상태(영적 자만)로 살았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들이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는 안전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순간, 그들에게 원인을 알 수 없는 극심한 공포와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맞이하게 될 심리적 붕괴를 뜻합니다. 역사적으로도 열왕기하 7장에서 아람 군대가 아무도 쫓아오지 않는데 하나님이 들으시게 한 군대 소리 때문에 모든 무기와 양식을 버리고 도망쳤던 사건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악인들의 마음을 두려움으로 마비시키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너를 대항하여 진 친 그들의 뼈를 하나님이 흩으심이라"

하나님의 백성(교회와 성도)을 대항하여 진 친 악인들의 뼈를 하나님이 흩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된 것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죽은 자의 시신이 무덤에 묻히지 못하고 들판에 버려져 '뼈가 사방으로 흩어진다'는 것은 가장 저주스럽고 수치스러운 종말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대신해 싸우셔서, 대적들의 군대를 철저하게 파멸시키셨다는 것입니다.

 

악인들이 그토록 기고만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방관하거나 능력이 없어서 가만히 계신 줄 알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 완전히 '버림받은' 상태였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그들을 물리치셨습니다. 그 결과, 늘 짓밟히고 무시당하던 연약한 성도들이 도리어 전세를 뒤집고 그 강대하던 악인들에게 준엄한 '수치'를 안겨주게 됩니다.

 

6. 시온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줄 자 누구인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야곱이 즐거워하며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시온에서 시작됩니다. 예배드리는 자리가 하나님의 은총이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구원하여 줄 자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이 죄악과 고통에서 건져내실 분은 오직 시온에 계신 하나님 한 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군사력이나 돈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참된 구원이 시작된다는 고백입니다.

 

"자기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키실 때에", 내 힘으로는 도저히 끊고 나올 수 없는 절망의 사슬을 하나님께서 친히 끊으시고, 모든 상황을 원래의 영광스러운 자리로 되돌려 놓으신다는 것입니다. (훗날 이스라엘이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초자연적으로 해방되어 돌아왔을 때, 이 구절은 예언적으로 그대로 성취됩니다.)

 

"야곱이 즐거워하며 이스라엘이 기뻐하리로다", 여기서 야곱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 전체'를 뜻합니다.

악인들이 떡 먹듯 괴롭힐 때는 신음과 눈물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는 날 그들의 입술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터져 나오는 즐거움과 찬송이 가득하게 될 것임을 선포합니다.

 

비록 지금 눈앞의 현실은 악인들이 득세하고 의인들이 고통받는 '포로 상태' 같을지라도, 성도는 하나님이 반드시 찾아오셔서 전세를 뒤집으실 '그날'을 미리 바라보며 오늘을 견디는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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