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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회

가장 어두운 밤에 드리는 낙헌제(시편 54:1~7절)

작성자손정호|작성시간26.06.16|조회수2 목록 댓글 0

https://youtu.be/yrZJyM7sNRE

가장 어두운 밤에 드리는 낙헌제(시편 54:1~7)

 

오늘은 시편 54편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으시겠습니다.

 

1. 밤이 깊을 때,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1~3)

1.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주의 힘으로 나를 변호하소서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름'은 그 이름의 소유자의 존재 자체 또는 인격 전체나 성품을 대변해 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의 이름'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나 본질적인 품성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역사 가운데 섭리하시고 행하시는 주권적인 능력을 지니신 분임을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주의 힘으로 나를 변호하소서"

당시 다윗은 억울하게 반역자로 몰려 쫓기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권력(사울 왕)이 자신을 죄인으로 몰아가고 있을 때, 다윗은 오직 최고 재판장이신 하나님만이 자신의 무죄함을 알아주실 분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

같은 요청을 표현을 바꾸어 두 번 연속 부르짖음으로써, 다윗이 처한 상황이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시급하고 절박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

이는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것을 넘어, 상대방에게 몸을 굽혀 그 숨소리와 작은 신음까지 주의 깊게 집중하는 것을 뜻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멀리 계신 거대한 신이 아니라, 고통당하는 자의 입술에서 나오는 작은 탄식과 비명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귀담아들어 주시는 친밀하고 자비로운 분으로 의지하고 있습니다.

 

3. 낯선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들이 나의 생명을 수색하며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셀라)

'낯선 자들'은 본래 이방인, 객, 나그네 등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을 그 마음에 두지 않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 시의 제목에 나타나 있는 십 땅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원래 십(Ziph) 땅의 사람들은 유다 지파에 속한 사람들이며(수 15:55) 다윗과는 같은 지파였습니다(수 15:24).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이들을 낮선 자, 포악한 자 등으로 부른 것은 이들이 다윗을 배반했기 때문입니다. 즉 이들은 마땅히 다윗을 도와 그를 보호해 주어야 할 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사울을 피해 유다 광야 남편 하길라 산에 숨어 있을 때에 기브아에 있는 사울에게 이 사실을 알려 다윗을 배반했던 것입니다(삼상 23:19; 26:1).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 이것은 곧 '하나님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자들'의 오만한 태도를 가리킵니다. 자기 형제와 동족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인데 십 사람들은 도리어 형제를 위기 중에 빠뜨리는 악행을 저질렀던 것입니다.

 

2. 눈을 들어 내 생명을 붙드시는 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4~5)

4. 하나님은 나를 돕는 이시며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윗을 배신하고(십 사람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아무도 도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때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유일한 도움이' 되신다고 선언합니다.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 주시는 이시니이다"

'붙들어 주신다'의 원어적 의미는 '떠받쳐 주신다', '지탱해 주신다'입니다. 사울 왕은 다윗의 생명을 빼앗으려 추격하고 있지만, 다윗은 자신의 생명이 사울이 아닌 오직 하나님 손에 달려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5. 주께서는 내 원수에게 악으로 갚으시리니 주의 성실하심으로 그들을 멸하소서

여기서 '악으로 갚으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감정적인 복수를 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원수들이 다윗을 파멸시키기 위해 팠던 함정과 악한 꾀가, 결국 그들이 행한 그대로 자신들에게 되돌아가게 하신다는 공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직접 원수에게 피의 보복을 하겠다고 나서지 않습니다. 모든 심판과 보복의 권한을 '공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철저히 맡겨드리고 있습니다. 원수 갚는데 전문가는 하나님이십니다. 원수, 또는 배신하는 사람을 보고 원망하며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그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입니다. 

 

"주의 성실하심으로 그들을 멸하소서"

성경에서 하나님의 성실(진리, 신실함)은 "한번 하신 약속과 말씀은 반드시 지키시는 성품"을 뜻합니다.

왜 성실하심으로 멸해달라고 기도하였겠습니까? 하나님은 의인을 보호하시고 악인을 심판하시겠다고 율법과 말씀을 통해 끊임없이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다윗이 "주의 성실하심으로 그들을 멸하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은, 사사로운 감정으로 원수를 없애달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법과 공의를 이 땅에 신실하게 실현해 주십시오"라는 공적인 요청입니다.

 

다윗은 이제 이 싸움이 '다윗 대 사울(원수들)'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 대 세상의 악'의 싸움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실하심이 나타날 때, 악은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영적 확신이 이 구절에 가득 차 있습니다.

 

3. 가장 어두운 밤에 낙헌제를 드려야 합니다 (6~7)

6. 내가 낙헌제로 주께 제사하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에 감사하오리니 주의 이름이 선하심이니이다

낙헌제는 구약의 제사 중 하나로, 의무나 율법적인 책임 때문에 억지로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너무나 감사해서 '자원하는 마음'과 '기쁨'으로 드리는 감사제를 뜻합니다.

지금 다윗의 상황은 여전히 광야에 숨어 있고 사울의 군대가 추격해 오는 위기 속입니다. 환경은 변하지 않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반드시 건져주실 것을 믿음으로 미리 바라보며 "그 구원의 날에 내가 억지가 아닌, 정말 기쁜 마음으로 주님께 축제의 예배를 드리겠습니다"라고 서원하고 있습니다. 미리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심으로 기도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우리 신앙의 역사 속에도 인생의 가장 어두운 밤에 ‘낙헌제’를 드린 믿음의 선배가 있습니다. 바로 사랑의 원자탄이라 불리는 손양원 목사님이십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손양원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청주교도소에 수감되어 모진 고문과 추위를 견뎌야 했습니다.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차갑고 어두운 독방, 언제 처형당할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가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가장 절망적인 밤이었습니다.

어느 날, 옆방에 있던 죄수가 슬픔과 두려움에 겨워 밤새도록 통곡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어두운 감옥 안을 울리는 맑고 나지막한 찬송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부르는 찬송이었습니다.

목사님은 몸을 가눌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손을 모으고 하나님을 향해 자원하는 기쁨의 찬송, 즉 ‘입술의 낙헌제’를 드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훗날 목사님이 감옥에서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 감옥은 나에게 감옥이 아니라, 하나님과 가장 깊이 만나는 지성소입니다. 주님의 선하심이 나와 함께하시니 내 마음에는 평안과 감사밖에 없습니다.”

현실의 환경은 온몸을 꽁꽁 묶는 감옥이었지만, 목사님의 영혼은 이미 하나님의 구원과 승리를 맛보며 낙헌제의 예배를 드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7. 참으로 주께서는 모든 환난에서 나를 건지시고 내 원수가 보응 받는 것을 내 눈이 똑똑히 보게 하셨나이다

다윗은 여전히 쫓기는 신세였지만, 기도를 마친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이 이미 이루어진 미래가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아직 눈앞에 나타나지 않은 하나님의 승리를 마치 이미 일어난 역사적 사실처럼 확신하며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주께서는 모든 환난에서 나를 건지시고"

다윗은 살면서 사울 왕의 추격뿐만 아니라 수많은 배신과 생명의 위협을 겪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이번 한 번만' 도와주시는 분이 아니라, 과거에도 건지셨고, 현재도 건지시며, 미래의 모든 환난에서도 완벽하게 건져내실 나의 영원한 구원자이심을 고백합니다.

 

"내 원수가 보응 받는 것을 내 눈이 똑똑히 보게 하셨나이다"

여기서 원수가 보응 받는 것을 똑똑히 본다는 것은, 원수가 망하는 것을 보며 사사로운 쾌감을 느낀다는 뜻이 아닙니다. 세상 권력이 아무리 강하고 악인이 득세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이 세상을 통치하시고 공의를 바로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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