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관(申東寬)
본적 : 경남 남해군 서면 도산리
주소 : 서울특별시
성별 : 남
생졸 : 1929년 10월 3일생
학력 : 서면 중현초등학교졸, 한양대학교 대학원(정치학석사) 졸
경력 : 대통령 경호실장, 제8·9·10대 국회의원, 국회원내 수석부총무
포상 : 청조근정훈장, 보국훈장(2등)
업적 :
청남(靑南) 신동관은 1929년 10월 3일에 남해군 서면 중현리 도산마을에서 부 신세철과 모 정태생의 사이에서 차남으로 출생했다. 어린 시절 중현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큰 포부를 펼치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 서울조선전기공업학교를 졸업한 후 육군종합행정학교에 입학했다.
사회는 혼란기라 이때부터 군인의 길이 나라를 위하는 길이라 생각하고 졸업 후 장교로 임관되어 군무에 재임하면서 국민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까지 수료했다. 계속해서 향학열에 불타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계속해서 미국 육군보병학교와 일본 경도대학에서 2년 동안 연수를 했다.
사회는 혼란 등으로 더욱 악화되어 이승만 대통령이 정치일선에서 물려날 무렵에 5·16 군사혁명으로 군부가 정치에 개입함에 따라 박정희 소장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 피선됨에 따라 경호과장직을 수행하면서 육군대령으로 예편하였다. 박정희 의장이 대통령으로 당선됨에 따라 경호과장에서 차장으로 승진하여 대통령 수행 해외 10개국을 순방하였다.
1971년 4월에에 민주공화당 경남 제17지구당(남해·하동) 위원장으로 선임되어 제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1973년에 제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국정에 참여하였다. 국회의원 재임기간동안 국회건설분과위원장, (사)아시아청년협회 회장, 민주공화당 건설분과위원장, (사)대한청소년근로장학회 회장, 국회원내수석부총무 등을 역임하였다.
1964년 7월에 박대통령이 진해 저도에서 하기휴가를 보낼 때 장지수 사령관 등 군수뇌부가 자리를 함께 하여 신동관 경호과장의 건의사항을 들어 주기로 하고 남해의 발전을 위해 남해대교 건설의 중요성을 대통령에게 피력한 결과 1966년 9월에 국무회의에서 남해대교 건설 확정하였고 1968년 5월에 착공하여 1973년 6월 22일에 남해대교가 탄생하게 되었다.
국회의원 재임이후 한국아마추어복싱연맹 회장, 제7회 아시안게임 선수단장, 테헤란아시안게임 농구단장, 대한민국체육회 부회장, 대한유도협회 부회장, 육종동우회 회장, 대한승마협회 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상훈으로는 청조근정 훈장, 보국훈장, 근무공로 훈장, 니제르공화국 훈장, 에치오피아국 훈장, 독일 지휘관 십자훈장, 월남공화국 훈장 등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남해군 개발계획 연구(1968년)와 일본열도개조론(일본 다나까 수상)를 역서하였다.
가족으로는 부인 이정림 사이에 2남 1녀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