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용암
금용암의 창건은 조선시대 후기 철종(재위 1849~1863) 무렵, 이인덕행(李仁德行)이라는 보살이 이곳에 초막을 짓고 살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보살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덕을 베풀어 그 명성이 자자했던 인물로 1919년 10월15일 해인사에 출가하여 비구니계를 받고 대봉(大鳳)이라는 법명의 비구니 스님이 된다. 이후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기와 인법당 3칸을 지어 법당, 승방, 공양간으로 사용하며 법등을 밝혀 사명을 ‘금용암’이라 했다.
이때 법당에는 석조 지장보살좌상을 모셨는데 그때의 지장보살상을 개금하여 현재 염화전에 봉안하고 있다. 또 당시 토굴을 지어 기도정진하던 장소가 절 뒤편 산비탈에 있는데 지금은 거의 스러지고 자그마한 비석(山王大神之位)과 큰 병풍바위만이 남아 당시 열렬했던 인덕행 보살의 구도행을 보여주고 있다.
금용암이 사찰다운 면모를 일신하는데는 1964년 범어사 동산스님의 법상좌인 덕윤선사의 중창과 그 궤를 함께 한다. 66년 주지로 추대된 후 다음해 10월까지 염화전(拈華殿)과 지금의 향적당인 승당노전(昇堂爐殿)을 완성하고 공양간인 원통료, 그리고 칠성, 산신, 독성을 함께 모신 삼성각 등을 중창해 오늘에까지 이르게 했다. 또한 스님의 둘도 없는 도반으로 단청 인간문화재이며 최고의 선묵장인 석정스님 역시 도움을 아끼지 않아 금용암 각 전각의 탱화를 조성하였으며, 72년 10월에는 김연희라는 불자의 시주로 전기를 가설, 도량이 일신되고 서기가 한층 더해지는 계기를 맞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리던 88년에 주지 덕윤스님은 금용암을 전통사찰로 등록하고 현재의 염화전과 삼성각, 원통료를 새로이 중수했다
금용암 입구
금용암
금용암 주법당 염화전
금용암 염화전내
금용암 염화전내 지장보살상
금용암 삼성각
금용암 삼성각
금용암 삼성각내 칠성탱
금용암 삼성각내 산신상과 산신탱
금용암 삼성각내 독성탱과 삼신제왕탱
금용암 삼성각에서 바라다본 전경
금용암 요사
금용암 찾아가는 길
남해고속도로 북부산 톨게이트를 통해 백양터널을 지난 후 어린이대공원 또는 성지곡수원지 이정표를 찾아가면 된다. 어린이대공원 입구에 다다르면 입구 바로 옆길로 난 초읍동 주택가를 통과, 삼환 아파트 단지와 대진빌라 사잇길로 들어서면 바로 그곳에서부터 금용암으로 이르는 3백미터의 우거진 송림길에 접어들게 된다. 송림길을 지나면 금용암이 자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