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산사는 강릉시내에서 남서쪽으로 6km 정도 떨어져 있다.
범일국사가 신라 문성왕 9년(847년) 창건한 사찰로 신라의 불교 종파인 5교 9산 중 9본산의 하나였다. 굴산사가 폐사된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고려 말이나 조선 초기 쯤으로 추정된다. 굴산사 일대는 현재 농경지로 변해 확실한 규모와 가람배치는 알 수 없으나 영동 지역 최대의 사찰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굴산사지 부도(보물 제85호), 굴산사지 당간지주(보물 제86호), 굴산사지 석
불좌상(문화재 사료 제38호)등이 남아 있다. 범일국사 탄생설화가 얽힌 학바위와 석천(石
泉)이 있어 굴산사 당시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이 곳은 태풍 루사의 피해로 석천이 유실되었으며, 임시로 복구해놓은 상태이다.
굴산사지 안내도
농경지로 변해버린 굴산사. 멀리 논 가운데 당간지주가 보인다.
거대한 자연석으로 이루어진 굴산사 당간지주
굴산사지 당간지주
굴산사지 당간지주
보물 제86호
신라 문성왕(文聖王) 9년(847) 범일국사(梵日國師)가 창건한 굴산사의 옛터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당간지주이다. 굴산사는 범일국사가 당나라 유학시 왼쪽 귀가 떨어진 승려가 고향에 자신의 집을 지어달라는 청으로 지은 사찰이라고 한다.
절에 행사가 있을 때 절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이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사찰 앞에 세워지며 신성한 영역을 표시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 당간지주는 현재 밑부분이 묻혀 있어 지주사이의 깃대받침이나 기단(基壇) 등의 구조를 확인할 수가 없다. 두 지주의 4면은 아무런 조각이 없으며, 밑면에는 돌을 다룰 때 생긴 거친 자리가 그대로 남아 있다. 깃대를 고정시켰던 구멍은 상·하 두 군데에 있고, 정상은 끝이 뾰족한 형상이며, 남쪽 지주의 끝부분은 약간 파손되었다. 전반적으로 소박하나 규모가 거대하여 웅장한 조형미를 보인다.
굴산사지 석불좌상
굴산사지 석불좌상
1984년 6월 2일 강원도문화재자료 제38호로 지정되었다.
오랜 세월 풍상을 겪고 낙뢰의 피해를 입은 듯 전신에 균열이 있고 상호(相好)와 수인(手印), 하반신의 파손이 심하다. 얼굴은 둥글고 길며, 눈꼬리가 길고, 인중은 짧다. 입술은 얼굴에 비해 작고 어깨는 움츠렸다. 두터운 불의(佛衣) 때문에 몸의 굴곡이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두 손을 가슴께에 모은 지권인(智拳印)을 짓고 머리에 관을 쓴 모습이 전체적으로 경직되어 보인다.
발견 당시에는 석불입상으로 알려졌으나 1992년 해체보수 때 석조비로자나불좌상으로 밝혀졌다. 평창군 진부면(珍富面)의 월정사 석조보살좌상(月精寺石造菩薩坐像:보물 139)보다 조금 후대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둥글고 긴 안면 골격과 평평한 신체에 추상적인 표현과는 달리 곡선이 많이 사용된 조각기법으로 볼 때 고려 초기인 11세기 자연주의 양식에 속한다.
굴산사지 석불좌상은 신라시대에 명주(溟州)라고 불리던 강릉시 구정면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에서 강릉한송사지보살좌상(국보 124), 강릉신복사지석불좌상(보물 84)과 더불어 같은 지역에서 제작된 고려시대 불교조각으로서 중요한 자료이다.
굴산사
굴산사는 간데없고 옛터에 솟대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굴산사지 석천
범일국사 탄생설화가 얽힌 석천(石泉)이 있었으나. 태풍 루사의 피해로 석천이 유실.
임시로 복원됨
굴산사지 부도
굴산사지 부도
보물 제85호
이 부도는 굴산사를 세운 범일국사(梵日國師)의 사리를 모신 탑으로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굴산사터의 위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모든 부재가 8각을 기본으로 하여 조성되고 있지만 부분적으로는 변형된 수법을 보인다.
사리를 모시는 몸돌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받침부분이 놓이고, 위로는 지붕돌과 꼭대기장식이 놓였다. 꼭대기장식으로는 상륜받침과 보개(寶蓋), 연꽃봉오리 모양의 구슬장식이 놓여 있다. 한 돌로 된 바닥돌은 8각의 평면이며, 위에는 접시 모양의 받침돌이 있다. 2단으로 된 8각의 괴임돌이 있는 아래받침돌은, 평면이 원형이며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다. 그 위 중간받침돌에는 8개의 기둥을 세워 모서리를 정하고 각 면에 천상(天上)의 사람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새기고 있다. 조각되어 있는 상은 8구 모두 서로 다른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데, 악기는 장구(또는 장고)·훈(塤)·동발(銅발)·비파(琵琶)·소(簫:피리)·생황(笙簧)·공후(하프)·적(笛:대금) 순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맨 윗받침돌은 위를 향해 활짝 핀 연꽃모양을 새겼다. 몸체는 8각의 낮은 몸돌과 지붕의 경사가 급한 지붕돌로 이루어지는데, 지붕돌 처마끝의 치켜올림이 없어 밋밋하다.
전체적으로 위축된 느낌을 주는 이 부도는 몸돌이 낮고 작은 데 비하여 지붕돌이 다소 커져 균형을 잃은 듯하다.
부도앞 요사채. 지금은 그 누구도 관리가 되질않고 페허로 변해버린 요사채
굴산사지 복원 작업과 보호가 필요할듯....
굴산사지 찾아가는 길
강릉시내에서 관동대학교 정문을 지난 구정 학산까지 가다가 큰 다리 오른편으로 들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