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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 월아산 청곡사

작성자정만|작성시간10.04.03|조회수210 목록 댓글 0

청곡사

청곡사는 진주 지역에서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많은 지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사찰로서 국보 제302호 괘불을 비롯하여 보물 제1232호 제석-범천상,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5호 삼층석탑,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51호 대웅전,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61호 괘불함,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348호 금강역사상,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349호 영산회상도,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139호 업경전 등이 있다.

신라49대 헌강왕(憲康王) 5년(879)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한 것으로 사찰을  창건하게 된 동기는 남강변에서 청학(靑鶴)이 날아와 서기(瑞氣)가 충만함을  보고  절터로 정하였다고 전하여 내려오고 있으며, 그후 고려말(高麗末) 우왕 때 실상사장로(實相寺長老) 상총대사(尙聰大師)가 중건했다.

1397년 태조 6년 이 고장 출신인 신덕왕후가  태조의 왕비가 된 것을  기리기 위해 승려 상총이 이 절에 머물면서 대장경을 만들었는데,  이때 김사행 등은 향로를 만들었다.

임진왜란때 불탄 것을 광해군 때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름.대웅전은 경남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건물의 형식은 단층 팔작지와 붕가(瓦家)로서 다포계 계통을 따르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활주(活柱)를 받쳐  보강하고 있다.

대웅전(大雄殿)에 봉안한 석가삼존상(釋迦三尊像)은 광해군 7년(1615)에 조성된 불상으로 임진왜란이후 불상으로는 비교적 대작에 속한다.


 

 청곡사 영산회상전

 

 청곡사 영산회상전

 

청곡사 영산회괘불탱

국보 제302호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크기는 길이 104㎝, 너비 640㎝이다.

그림의 구도를 보면, 본존불인 석가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현 보살이 배치되어 있다. 화면 중심에 꽉 차게 배치되어 있는 석가여래상은 얼굴이 둥글고 풍만한 모습에 상체는 짧지만 당당하고 우람하게 표현되었다. 두 어깨에 걸친 옷은 두터운 편이다. 옷은 붉은색과 녹색으로 채색하였고 옷깃에도 변화를 주었으며 전면에 걸친 꽃무늬 장식이 밝고 선명해 보인다.

문수,보현 보살상은 각각 연꽃가지를 들고 서 있다. 본존보다 약간 작은 신체, 화려한 보관, 둥근 얼굴, 정면을 향한 자세 등이 매우 당당하고 화려하며 본존 뒤로 물러서게 배치해 원근감을 나타냈다. 청색,하늘색,연분홍색 등 다양한 색감이 나타나며, 복잡하고 화려한 꽃무늬와 장신구가 보살상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보살상의 머리 위에는 석가의 제자인 아난,가섭을 비롯해 여러 불상이 그려져 있다.

이 괘불은 1722년(경종 2) 의겸(義謙) 등이 참여하여 제작한 것으로, 석가불을 중심으로 문수·보현 보살을 화면 가득 배치한 구도, 당당하고 건장한 체구, 둥글고 원만한 얼굴, 화려하고 밝은 색채와 꽃무늬 장식 등에서 18세기 초반의 불화 가운데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석가·문수·보현의 삼존불입상이라는 점에서 경상북도 예천 용문사의 괘불과도 비교되며, 의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우수한 것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출처:문화제청

 

 청곡사 적목당

 

 청곡사 수조

 

 청곡사 범종각

 

 청곡사 요사

 

청곡사 환학루

청곡사의 누각인 환학루(喚鶴樓)는 팔작지붕에 앞면과 옆면 각 3칸씩의 규모를 하고 있다. 현대에 지은 건물이기는 하지만, ‘학을 불러 온 누각’이라는 뜻의 이름은 도선 국사가 청곡사를 창건할 때 청학이 내려앉은 터에 절을 지었다는 창건설화와 맥이 닿으므로 전통을 잘 살리고 있다고 보인다.

 

청곡사 업경전 지장보살좌상

업경전(業鏡殿)은 일반적으로 명부전 혹은 지장전 등으로 부르며, 지장 보살을 본존으로 하여 염라대왕 등 10대왕을 봉안한 전각이다. 지장보살은 석가 입멸 후 미륵불이 출현할 때까지 부처 없는 세계에 머물면서 육도 중생을 교화한다는 보살이다.

청곡사의 업경전은 879년(헌강왕 5년) 도선 국사가 청곡사를 창건할 때 대웅전 옆에 함께 지었다고 전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1612년(광해군 4) 중건되었고 다시 조선 후기에 포우 대사가 대웅전과 여러 부속건물을 중수할 때 함께 중수되었다.

이 전각은 앞면 3칸, 옆면 1칸 크기에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단순한 외관과는 다르게 내부는 우물천장과 우물마루로 조성되는 등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안에는 조선시대에 조성한 목조 지장보살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협시하고 있고, 그밖에 10왕상과 판관,녹사,사자(使者),인왕상 등이 배치되어 있다.

특히 인왕상은 조각기법이 매우 뛰어나 조선 후기 인왕상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청곡사 금강역사상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48호

업경전에 출입문 좌우에 있는 상으로, 금강역사는 불교의 수호신 중의 하나로, 다른 말로 ‘인왕’이라고도 한다. 보통 사찰 문의 양쪽에 서 있는데, 왼쪽은 밀적금강, 오른쪽은 나라연금강이다. 금강역사상은 대체로 머리 부분에 둥근 빛을 표현하는데, 그것은 이들 신이 단순히 힘만 센 것이 아니라 지혜 또한 뛰어나다는 사실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또한 나라연금강은 입을 벌려 ‘아’하고 소리치는 듯한 형상을 하여 ‘아금강역사’라고 하고, 밀적금강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기 때문에 ‘음금강역사’라고도 부른다. 이 ‘아’와 ‘음’은 범어의 첫 글자와 끝 글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금강역사의 입은 처음과 끝을 연결하는 영원과 통일을 상징한다. 우리나라 금강역사상의 특징은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무섭지 않고 약간의 민화적 형상을 취하여 친근감을 준다는데 있다.

청곡사 업경전 금강역사상은 나무로 만든 것으로, 명부시왕의 수호신 역할을 한다. 커다란 괴목에 이음새 없이 조각된 사실적 조각수법이 뛰어나 신체의 생동감을 잘 전해주고 있다. 조선시대 후기 작품으로 불교 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드물게 나무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더욱 귀중하다.


 

 청곡사 업경전 시왕상

 

청곡사 대웅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1호

청곡사 대웅전은 광해군4년(1612)에 재건한 것으로 이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앞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다포계 양식의 건물이다. 기둥은 가운데가 약간 불룩한 배흘림으로 처리하였으며, 처마를 받쳐주는 기둥 위의 장식물은 조선후기 다포계 팔작집의 대웅전답지 않게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편이다.

지붕의 네 귀퉁이는 처마받침기둥이 있으며, 기둥의 주춧돌은 가공하지 않은 자연석을 이용하였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 대웅전은 신라시대와 조선시대의 건축 양식이 뒤섞여 있으며, 일제강점기의 대내적 중수로 인해 본래의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사찰 전체의 면모가 잘 보존되어있다.

절 앞의 방학교 밑을 흐르는 시냇물과도 잘 어울려 아직도 청학이 날아올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안에는 목조 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약사, 아미타여래상이 협시하는 삼존상을 비롯하여 후불탱, 신중탱, 그리고 목조 제석, 범천상의 모조품이 봉안되어 있다.

근래에 지붕기와를 개수하다 청기와 3장이 대웅전의 한복판에서 발견됐는데 이는 청룡의 상징으로 짐작을 하고 있다. 


 

 청곡사 대웅전앞 쾌불지주

 

 청곡사 대웅전내 석가모니불

 

청곡사 목조 제석,범천상

보물 제1232호

제석(帝釋)과 범천(梵天)은 본래 인도의 브라만 또는 힌두교의 신상(神像)이었으나, 대승불교 이후 불법을 지키는 신상으로 여겨져 사천왕상 등과 더불어 불교미술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조각상이 아닌 그림으로 그려졌다고 전하며, 조선시대 탱화에서 주로 예를 찾아볼 수 있으나 조각상으로는 청곡사의 이 상이 유일하다.

제석-범천상은 마치 보살상 같은 자비로운 인상인 것이 눈에 띤다. 탱화의 경우 보살은 두 손에 물건을 들고 그 기능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과 얼굴이 금색인데 비해, 제석-범천상은 두 손을 합장한 경우가 많고 얼굴에 호분으로 흰색을 칠하고 있다.

이 청곡사 제석범천상 역시 탱화의 일반적 특징과는 다르게 입체감을 나타내고 있다. 두 손은 합장이 아니고 옷 주름도 보통 탱화의 것과는 다르다. 회화로서는 조선 후기 불교그림에서 흔히 찾을 수 있지만, 홀로 있거나 새겨져 있는 것은 청곡사 제석-범천상이 유일하다.

조각 기법은, 조선 후기 양식을 따르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만든 예와는 현저한 차이를 나타내어 우리나라의 양식적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두 상은 현재 해인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지금 대웅전에 봉안된 작품은 원본을 그대로 복사한 모조품이다.


 

청곡사 신축중인 당우

 

 청곡사 나한전

 

 청곡사 나한전내 석가여래좌상

 

 청곡사 나한전내 나한들

 

 청곡사 나한전내 나한들

 

 청곡사 칠성각

 

 청곡사 칠성각내

 

 청곡사 칠성각내

 

 청곡사 칠성각내

 

 청곡사 산신각

 

 청곡사 산신각내 산신상과 산신탱

 

 청곡사 진영각내 진영전

 

 청곡사 독성각내 독성탱

 

청곡사 전경

 

청곡사 찾아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혹은 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하여 회덕분기점을 지나 대진고속도로로 바꿔 탄다. 진주를 지나 문산 나들목으로 나와 200m 가량 직진하면 오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청곡사 방면으로 향한다. 곧장 가면 첫 번째 삼거리가 나오고 여기에서 우회전 해서 2분 정도 직진한 뒤 갈림길에서 다시 우회전하면 청곡사 입구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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