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무게
첨부터 안답니다
가벼워야 한다는 걸
수천 번 지나고도
수만 번 지르밟고도
이냥껏
홀로 스치듯
자국 없는 써레질
어디든 순수해서
가야 할 데 두지 않고
먼지도 다독이고
파도도 아우르며
입을 맞추는
딱 고만큼의 무게로
늦가을 크로키
채워서 비워내는 탄복할 여유를 보라
살라서 맑아지는 하늘 켠 살핀 품에
저 억새 흐너진 독백 아리도록 꽂힌다
늦도록 품은 빛을 떨군들 아쉬울까
익었다 자부하면 멍마저 물컹거릴
느긋이 노을 필 그때 손편지 한 장 쓰고픈
일렁인 갈잎 손길 끝점을 보노라니
찾아올 이름들이 소스라치게 내걸려
함부로 무심치 말자 잡아채는 길섶이다
모퉁이 돌아들 즘 겨울 훅 드민대도
넉넉한 환대라면 겸상한들 어떤가
까짓 봄, 오면 볼 테지 반주 한 잔 치든다
눈물 해부학
온전히 혼자의 몫 혼자만의 발현이다
나누어 줄 수 없는 투병의 질긴 상대
던져도 깨지지 않아 목 밑에 걸어둔 것
샘처럼 솟았다가 뼈마저도 물러질
그러나 카타르시스, 쑥스러운 기억 같은
뒤돌아 애써 태연한 그러다 더욱 아픈
맘 안에 담아두면 말갛게 삭혀질까
헹구듯 내어 걸다 허공중 붉은 칠을
닦다가 멈출 일이면 천만번도 울겠다
한가을 볕살같이 별안간 달궈지는
떨굴 잎 가늠하다 무서리 닥쳐온 날
숨죽여 쏟아놓기엔 마음 하마 비워진
자전의 일부분
억새의 질컥함이 숲 하나 완성하고
새에게 배운 말을 바람에 전하는 날
갈대는 강자락 자락 촘촘히 엮고 있다
비밀한 대화겠지 구절초 진 자리에
잎들이 모여든다 탈색된 아우성들
아무도 길을 모른 채 터벅대는 비현실
숲은 또 긴 호흡에 무덤덤하니 지내듣고
바람은 억새 잡고 사는 법 전하지만
변색의 상위 포식자 포만감을 모른다
초식의 무리에겐 소용없는 울이어서
음악도 없는 밭에 들꽃을 가꾼다지
어울릴 제 깜냥으로 그만한 게 없다고
- 시집 『모티브의 전향』 책만드는집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