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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삼연 시인 시조집 『모티브의 전향』

작성자김수환|작성시간26.06.07|조회수32 목록 댓글 0

바람의 무게

 

 

첨부터 안답니다

가벼워야 한다는 걸 

 

수천 번 지나고도 

수만 번 지르밟고도 

 

이냥껏

홀로 스치듯 

자국 없는 써레질

 

어디든 순수해서 

가야 할 데 두지 않고 

 

먼지도 다독이고

파도도 아우르며 

 

입을 맞추는 

딱 고만큼의 무게로

 

 

 

 

늦가을 크로키

 

 

채워서 비워내는 탄복할 여유를 보라

살라서 맑아지는 하늘 켠 살핀 품에 

저 억새 흐너진 독백 아리도록 꽂힌다 

 

늦도록 품은 빛을 떨군들 아쉬울까 

익었다 자부하면 멍마저 물컹거릴 

느긋이 노을 필 그때 손편지 한 장 쓰고픈 

 

일렁인 갈잎 손길 끝점을 보노라니 

찾아올 이름들이 소스라치게 내걸려 

함부로 무심치 말자 잡아채는 길섶이다 

 

모퉁이 돌아들 즘 겨울 훅 드민대도 

넉넉한 환대라면 겸상한들 어떤가 

까짓 봄, 오면 볼 테지 반주 한 잔 치든다   

 

 

 

 

눈물 해부학

 

 

온전히 혼자의 몫 혼자만의 발현이다 

나누어 줄 수 없는 투병의 질긴 상대 

던져도 깨지지 않아 목 밑에 걸어둔 것 

 

샘처럼 솟았다가 뼈마저도 물러질 

그러나 카타르시스, 쑥스러운 기억 같은 

뒤돌아 애써 태연한 그러다 더욱 아픈 

 

맘 안에 담아두면 말갛게 삭혀질까 

헹구듯 내어 걸다 허공중 붉은 칠을

닦다가 멈출 일이면 천만번도 울겠다 

 

한가을 볕살같이 별안간 달궈지는 

떨굴 잎 가늠하다 무서리 닥쳐온 날 

숨죽여 쏟아놓기엔 마음 하마 비워진  

 

 

 

 

자전의 일부분

 

 

억새의 질컥함이 숲 하나 완성하고 

새에게 배운 말을 바람에 전하는 날 

갈대는 강자락 자락 촘촘히 엮고 있다 

 

비밀한 대화겠지 구절초 진 자리에

잎들이 모여든다 탈색된 아우성들 

아무도 길을 모른 채 터벅대는 비현실 

 

숲은 또 긴 호흡에 무덤덤하니 지내듣고 

바람은 억새 잡고 사는 법 전하지만 

변색의 상위 포식자 포만감을 모른다 

 

초식의 무리에겐 소용없는 울이어서 

음악도 없는 밭에 들꽃을 가꾼다지 

어울릴 제 깜냥으로 그만한 게 없다고  

 

 

 

- 시집 『모티브의 전향』 책만드는집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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