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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중의 자랑거리

경주최씨가 최고의 명문가 양반으로 대우받는 이유.

작성자최 건|작성시간26.06.16|조회수18 목록 댓글 0

득성조 소벌도리공은 신라
이전의 6부촌 중 돌산고허촌장
이었는데 신라 시조 박혁거세를
집으로 데리고 와 길러서
왕으로 세웠으며

24세손 경주최씨 시조 문창공
고운 최치원은 당나라에 유학을
가서 과거에 급제하여 문명을
중국천하에 떨치고 신라에
귀국하여 수많은 업적과 뛰어난
글과 글씨를 남겨 우리나라
학문의 조종으로 추앙받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왕명으로
고운선생의 직계 후손은 군역과
잡역을 면제하라는 문서가 명종,
선조, 정조, 순조 때 4차례에
있었는데 이를 예부등급
이라고 한다.
현재 순조 때 예부등급은 경주
충의당 유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자료)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며 많은 훌륭한 후손들이 중시조로 이름을 남기고 있으며 사성공파의 파조
최예의 6세손 정무공 최진립은 정무공파 파조로서 임진왜란에
의병을 일으켜 많은 공을 세워 선무원종 2등공신으로 공신록에 올랐으며 병자호란에는 공주영장으로 부임하여 69세의 노령이라 후방을 지켜달라는 주위의 만류에도 싸우다 죽지도 못하겠는가! 라고 하며 남한산성에 포위뒨 임금을 구하러 말을 달려 용인 험천에서 청나라 철기군과 싸우다 장열하게 순절하였다.

정무공은 임진 병자 양란에서
활약하며 공을 세운 유일한
조선의 장군이며 일사보국한
충신으로 향리에는 나라에서 내린
정려비가 세워젔는데 중국의 충신
악비에 비견된다고 적고 있다.

또 정무공은 경주 최부자의
원조로도 이름을 남기고 있다.

경주 최씨가 명가로 대우받는
가장 큰 원인은 고운선생의 후예
라는데 있으며

그 다음으로는 양반가로서
전세계에 모범을 보인
경주최부자의 처세와, 명성,
그리고 일사보국하여 만고의
충신으로 이름을 남긴
정무공 최진립의 공적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며

동학의 창시자 정무공의 7세손
수운 최제우의 명성과 현대에
와서 학문과 글씨로 전국 유림에
명망이 높은 최병민 최채량
양대 종손의 노력과 업적도
일조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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