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가 세상 법정에 성도를 고소하는 것이 성경적인가?
고전 6:1-11
본문은 세상 문제로 성도간에 생긴 분쟁을 세상 법정에 제기한 것을 안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책망하는 내용입니다.
1] 성도간에 분쟁이 생김
1절에서 누가 다른이로 더불어 란 말에서 당사자가 누구인지 불명확하나 6절에서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 뿐더러 에서 당사자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형제와 형제 사이에 일어난 일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형제란 성도를 말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기 때문에(롬8:15-16) 믿는 우리들은 모두 형제요 자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음은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다 씻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의 피를 나눈 자입니다. 육적으로 피를 나눈 사람을 형제라고 하듯이 성도는 예수님의 피를 나누었으므로 형제가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와 성도사이에 생긴 법정 문제입니다.
2] 세상일로 인한 문제입니다.
문제의 성격에 대하여 지극히 작은 일(2) 이란 표현과 세상일이랴(3) 는 표현에서 볼 때 이는 영적 일이 아니라 세상의 육과 관련된 일입니다. 즉 교회의 본질적인 문제-구원, 교리등-가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길 수 있는 일-금전 대차 등- 입니다.
3] 바울이 책망하는 내용
바울은 3가지를 책망합니다.
1. 성도가 성도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6-7)
7절에서 너희가 피차 송사하므로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7) 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또 8절에서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라고 바울은 말하므로 세상 법정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불의요 속이는 일이 된다고 말합니다.
결국 바울은 세상 법정에 소송을 제기하는 그 자체를 죄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차라리 피해를 당한 자가 불의를 당하거나 속는 편이 낫다고 바울은 말합니다.(7)
2. 성도간에 문제가 있는데 왜 세상 법정에 소송을 제기 하느냐? 는 것입니다.(6)
1절에서는 불의한 자 앞이라고 하였고 6절에는 믿지 아니하는 자 앞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믿지 않는 자가 재판장으로 앉아있는 세상 법정을 말합니다.
세상 법정에 소송을 제기하지 말아야할 이유에 대하여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1)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2)
2)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권세와 자격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3)
성도는 하나님의 지혜로운 성령이 거하시므로 세상과 영적인 일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판단의 기준인 하나님의 법인 성경을 갖고 있습니다. 즉 법전을 우리는 갖고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 성도는 성경을 배우고 알므로 세상에 생기는 문제는 성경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세상과 천사를 판단할(재판) 권세와 자격과 능력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는 불의한 자 앞에서 소송을 제기하느냐고 바울은 책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법을 만드신 입법자이십니다. 세상의 사법인들은 하나님의 법을 위임받아 처리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세상 법이 모두 하나님의 법과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드신 법의 정신과 어긋나게 판결되는 것이 많기 때문에 성도는 불신 재판관들에게 분쟁을 맡기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이런 경우는 우리 현실에서 많이 나타나므로 구태여 예를 들지 않겠습니다.
3. 교회는 왜 이런 문제를 방임하느냐? 는 것입니다.(5)
교회 내에서 해결하라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이런 문제로 세상 법정에 가도록 무엇을 했느냐는 책망입니다. 교회 내에 이런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가진 자가 하나도 없느냐고 바울은 일부러 부끄럽게 하려고 묻고 있습니다.(5)
교회내의 문제는 교회에서 해결을 해야합니다.
이것이 어려우면 교단 내에서 하라는 의미입니다. 교회나 교단은 이런 문제의 해결에 적극 나서야합니다. 특히 영적 지도자들은 이문제의 총대를 맡아야합니다. 눈치를 보아서는 안됩니다.
4] 성경에 기록된 성도간에 생긴 세상 문제의 조치 원칙
1. 신약에서
1) 교회 공의회에서 해결(행15장)
이는 교회의 본질적인 문제였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하느냐? 이들에게 할례를 행해야 하는냐 의 문제였습니다. 이를 예루살렘 교회에서 결정을 했습니다. 여기에는 많은 사도와 장로가 참석을 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현재의 경우 모든 교회의 대표 기관이라고 할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 이런 기관이 없으므로 편의상 각 교단의 총회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고린도 교회에서 해결하라고 명령하는 것이 있습니다.(고전6장)
이 것은 지금 앞에서 살펴보았습니다.
2. 구약에서
구약은 신약보다 더 구체적이고 확실한 사례가 나옵니다. 지면상 근본적인 원칙만 서술하겠습니다.
1) 모세 시대
모세는 지도자로 모든 백성의 재판에 관여했습니다. 그는 초기에 하나님에 대한 제사 문제뿐만 아니라 백성사이에 생기는 제 문제를 홀로 판단했습니다. 그후 장인의 권유로 천부장 오십부장 십부장 등을 만들어 그들에게 위임을 했습니다.(출18:17-26)
아론과 그 후손을 제사장으로 세워 위임식을 한 후에는 하나님에 대한 일과 성소에 대한 일의 권한은 제사장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론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론과 그 자손은 성소에 대한 죄를 담당한다고 명령하셨습니다.(민18:1,5) 하나님에 대한 일은 왕도 맘대로 할수 없는 제사장 고유의 권한이었습니다. 이를 어긴 사울 왕은 자신의 왕조가 끝나는 비극을 맞이했고 (삼상13:8-15) 웃시야는 제사장이 해야할 고유권한인 분향을 하다가 문둥병이 발해 평생 별궁에 거하다 죽었습니다.(대하26:16-21)
모세를 이은 후계자 여호수아를 세울 때 하나님은 제사장과 지도자의 직무를 분담해서 명하셨습니다.(민27:18-21) 즉 여호수아는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다. 그러나 엘르아살은 여호수아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법으로 하나님께 물어 알려주며 엘르아살의 말에 따라 백성과 여호수아가 나가고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두가지 직분 즉 정치 지도자와 종교 지도자의 위상과 임무를 분명히 구분 지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명령은 다윗 시대의 제도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2) 다윗 시대
이스라엘 국가의 틀을 갖추고 제도를 잘 정비한 시대는 다윗 시대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에 의거하여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먼저 성소의 일을 다스리는 것과 하나님의 일을 다스리는 일은 철저히 제사장의 권한으로 다윗은 정했습니다.(대상24:3-5) 이는 율법에 따른 조치였습니다.
다윗은 레위인에게는 여호와에 관련된 일과 왕에 관련된 일을 담당케 했습니다.(대상27:30, 32) 다윗 당시 레위족은 30세 이상으로 38000명인데 그중 24000은 성전의 사무를 맡았고 6000명은 유사와 재판관이였고 ...(대상23:1-6) 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유사는 행정관이며 재판관은 사법의 일을 하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레위인들은 성소에서 제사와 관련된 일(대상23:27-32), 악기연주와 음악에 관련된 일(대상25:1), 성전 문을 지키는 일(대상26;1-), 성전 창고와 성물 창고를 관리하는 일(대상26;20-28)을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왕을 섬기는 유사가 있었습니다.(대상27:1) 이들의 임무는 대상27장에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유사는 하나님의 일에 관련된 행정적인 일을 하는 자와 왕과 관련된 행정적인 일을 하는 자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3. 요약
하나님은 율법 부여의 초창기부터 하나님에 관한 일과 사람 사이에 관한 일은 구별하여 임무를 분담하게 모세에게 명했습니다. 이를 모세는 잘 지켜 제사장을 세운 후 그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성소에 관한 권한을 부여하고 모세는 정치적인 일을 주도했습니다. 레위인은 제사장을 섬기며 할당받은 일을 했습니다.
다윗도 이 원칙을 충실히 지켰습니다. 하나님 일을 맡는 제사장과 레위인을 두었고 왕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백성을 통치하기 위해 레위인 유사를 두어 일을 맡겼습니다.
신약의 교회는 신정 국가가 아니므로 교회가 성도내에 생기는 모든 일을 관장했습니다. 신령한 문제는 교회 공의회에서 결정했습니다. 영적이 아닌 성도간의 문제는 교회 내에서 해결을 하게 바울은 명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특수성 즉 신정 국가인데도 이렇게 임무를 구별한 것에 주목을 해야합니다. 즉 모든 나라는 국가와 교회가 구분 되야한다는 하나님의 듯을 찾아야합니다. 우리나라는 신정 국가가 아닙니다. 즉 기독교 국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교회내에서 즉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생긴 제 문제들은 모두 교회가 처리를 해야 성경적입니다. 그러나 성도와 이방인 즉 불신자와 관련된 문제는 세상 법정으로 가는 것은 가능합니다.
5] 사도의 말씀의 권위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구약 말씀을 분석하면 주로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하신 말씀, 선지자를 통해 대언한 말씀, 예수님이 하신 말씀, 사도가 명령한 말씀입니다.
1. 하나님이 직접하신 말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이 세상에서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빛이 있으라면 빛이 있습니다. 별이 있으라면 있는 권능의 말씀입니다.
2. 선지자가 전한 하나님 말씀
이는 선지자의 입에 하나님이 자신이 전할 말씀을 준 것입니다.
(렘1:9) "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암3:6-7) "성읍에서 나팔을 불게 되고야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겠으며 여호와의 시키심이 아니고야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그래서 선지자가 한말은 반드시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겔6:10) "그 때에야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내가 이런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겠다 한 말이 헛되지 아니하니라"
(겔33:33)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 있었던 줄을 알리라"
(합2: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찌라도 기다리라 지체(遲滯)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그러므로 선지자는 백성에게 선지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고 외칩니다.
(슥7:7) "여호와가 이전 선지자로 외친 말을 너희가 청종할 것이 아니냐 그 때에는 예루살 렘과 사면 읍에 백성이 거하여 형통하였고 남방과 평원에도 사람이 거하였었느니라"
선지자가 한말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3. 사도가 전한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마태는 예수님이 승천 전 제자에게 주님이 분부한 것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것은 4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주님이 제자에게 분부한 것, 모든 것, 가르침, 지키게 함입니다. 12사도가 할 일은 주님이 자기들에게 명령하거나 가르친 것으로 제한한다는 의미입니다. 그 것은 3년 동안 분부한 모든 내용을 말합니다. 가르침이란 수단을 사용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배운 후대 제자들이 지키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결국 12사도는 후대 제자에게 주님의 말씀을 모두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요한도 주님이 계시한 것을 지키면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바울도 자기가 한 명령은 주님으로부터 유래됐음을 밝힙니다.
(살전4:1-6) "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2)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3)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을 준 것은 마28:20의 의미와 상통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이 명한 명령을 엄히 지킬 것을 당부합니다.
(딤전6:13-14)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1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딤후1:13)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바 바른 말을 본 받아 지키고
바울이 이렇게 자기가 가르친 것을 지키라는 이유는 자신이 전한 말씀이 예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구약의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로 받아 자기가 전한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지키라는 것과 같습니다.
아울러 바울의 명을 디모데에게 후대 제자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고 명합니다.
(딤후2:1-2)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우리는 여기서 마28:20에서 마태가 이것을 기록한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마태나 모든 사도는 이 말씀을 사도가 지켜야할 금과옥조의 명령으로 여기고 실천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이 사도에게 명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 편지를 쓴다고 밝힙니다.
(벧후3:1-2)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 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향하여(2)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유다도 사도가 한말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유1:17)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미리한 말을 기억하 라"
이 모든 사도나 성경기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겼습니다. 12사도는 주님의 명령을 직접 들었기에 이를 실천했습니다. 이 자리에 있지 않은 바울도 계시로 알고(갈1:9-12) 실천했습니다.
4.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자기에게 분부하신 모든 말씀을 증거했는데 이는 예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각을 히브리 기자는 요약하여 잘 말합니다.
(히1:1-2)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後嗣 ) 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즉 하나님이 마지막에 에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에게 전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눅11:28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말씀은 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래서 그 이유를 사도 요한이 기록을 했습니다.
(요7:1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즉 주님이 하신 교훈은 성부의 교훈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또 주님이 하신 말씀은 성부로부터 들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8:26) "내가 너희를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 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게 말하노라 하시되"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에 내가 한 말이 성부의 말인 줄 알게 될 것이라고 예언도 하셨습니다.
(요8:28)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 인줄을 알고 또 내가 스 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 라"
그러므로 주님이 하신 말씀은 반드시 성취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눅21:33) "천지(天地)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이 모든 구절은 예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다는 것을 증명해 줍니다.
5. 요약
하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든 선지자를 통해 대언한 말씀이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든 사도가 명령한 말씀이든 모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두는 동일한 효력과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들은 성도가 지켜야할 신앙과 행위의 유일한 법칙이 됩니다.
사도 바울이 명령을 내린다고 해서 사도 개인이 생각해낸 규칙을 고린도 교회에 전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합니다. 이는 마28:20에 있는 것처럼 주님의 말씀을 바울이 간접 명령의 방법으로 표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런 법칙을 순종하며 따라야 합니다.
6] 결론
성도간에 세상일로 분쟁이 생길 경우 어떻게 해결해야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바울을 통해 성도에게 교훈하시는 주님의 명령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세상문제로 생긴 성도간의 분쟁은 결코 세상 법정으로 가서는 안됩니다.(1)
2. 하물며 신령한 문제를 세상 법정으로 끌고 가는 것은 죄악입니다.(7)
3. 교회는 성도간에 생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5) 교회 내가 아니면 상급 치리기관에서 공정하게 해결해야합니다. 이를 방임하는 것은 직무 태만입니다.
4. 소송을 하지 않고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다고 말합니다.(7) 이는 문제의 시비가 가려지지 않더라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5. 성경의 법에 따르지 않고 불의를 행하는 자는 각오를 하라고 명하십니다.(8-10)
바울이 불의를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는 경고를 무시하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성도가 교회내 문제로 세상 법정에 소송을 제기한 일이 있으면 제기한 소송을 취하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세상과 교회 앞에 정중히 사과를 해야합니다.
교회문제로 세상을 시끄럽게 법정 사건으로 비화될 때 교회와 성도와 세상에는 어떤 영향이 미치는지 생각을 해 보셨습니까? 저도 인터넷을 보고 알았습니다. 네티즌의 글을 읽어보십시오.
수많은 사람이 신앙을 멀리하고 교회를 욕하고 떠나는 엄청난 일이 여러분의 밖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 글을 기고하려고 신문사를 몰라 모 교단의 교회 목사님에게 물어보니 정치에 관심이 있으면 혼자 알아보라는 등 그 반응이 보통 심각하고 냉소적이지 않습니다. 세상 법정에서 시비를 밝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세우며 의를 세운다고 생각하면 이는 정말 착각입니다. 하나님이 금하신 명령을 어기며 세상 법정에 소를 제기하는 그 자체가 불의를 행하는 것임을 명심해야합니다.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지만 실족케 하는 자에게 화가 있다는 주님의 명령을 소홀히 여기지 마십시오.
이런 일로 수많은 영혼이 교회를 주님을 떠나는 책임을 누가 져야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의 날에 우리의 죄를 나의 혀로 고백할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필자는 목사편도 성도편도 아닙니다 주님 편입니다. 필자는 문제가 발생한 교회에 속하지 않았고 이해관계가 없습니다. 진실로 이런 교회 분쟁 문제가 주님의 말씀대로 해결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아울러 이 땅에 다시는 교회의 문제로, 성도간의 세상 문제로 세상 법정에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떨어지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랍니다. 이런 일을 성도가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