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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Q&A 게시판

좋은 직장과 성공에 대한 집착이 놓아지지 않습니다

작성자우야꼬|작성시간20.05.19|조회수82 목록 댓글 0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에 보면 선혜(善慧) 행자 이야기가 있어요. 선혜 행자는 아버지가 아주 고귀한 신분의 엄청난 부자인 데다 지위도 높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갑자기 탁 죽어버렸어요. 그런데 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의 죽음이 슬프긴 하지만 자기에게는 행운이에요. 그 지위며 재물이며 명예를 모두 자기가 차지하게 되니까요. 왕과 왕자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가족이라는 관점에서는 아버지가 죽는 건 슬픔이지만, 아버지가 죽어야 왕자가 왕이 될 수 있는 거예요. 아버지가 안 죽고 건재하면 왕이 못 돼요. 그래서 옛날에는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는 일이 많이 벌어졌습니다. 이처럼 아버지의 죽음은 잠깐 슬프기는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자기가 다 가지게 된다는 뜻이에요. 전에는 아버지 것이었지만 지금은 자기 것이 된 거죠.

그런데 이 젊은이는 아버지가 그렇게도 소중하게 여기던 것이 부질없다는 사실을 그때 본 거예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돈도 한 푼 못 가져가고, 명예도 하나 못 가져가고, 지위도 못 가져갔잖아요. 이게 정말 자기 것이라면 죽을 때도 가져가야 할 텐데, 자기 것이 아니니까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 아니냐는 거죠. 그게 허망한 줄을 탁 꿰뚫어 알아버리니까 거기에 집착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지위도 왕한테 반납하고, 재물도 왕에게 위탁해서 가난한 사람한테 나눠주도록 청하고 출가를 한 거예요.

이게 부처님의 전생인 선혜 행자가 발심하는 첫 이야기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그렇고, 야사(耶舍) 비구도 그렇고, 출가의 계기가 비슷해요. 저녁에 아름다운 무희들과 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고 즐기다가 술에 취해 쓰러져 잠들었어요. 아침에 눈을 떠보니까 보니까 간밤에 흥겹게 놀던 사람들이 술이 취한 채 이리 자빠지고 저리 자빠져 자고 있는 모습이 마치 시타림(屍陀林)처럼 보였습니다. 시타림은 당시 인도에서 사람이 죽으면 쓰레기처럼 갖다 버리던 숲이에요. 그렇게 여기저기 엎어지고 자빠져 있는 시체나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자기들이나 그 꼴이 순간적으로 똑같이 보였다는 겁니다. 즐거움이 곧 괴로움이라는 것을 깨달은 거죠. 다시 말해 락(樂)이 곧 고(苦)임을 체험한 거예요.

‘도솔천의 칫타라 궁전 같이 아름답던 내 연회장과 궁전이 어찌 이리 무덤과 같은가?’

이걸 한순간에 자각하게 되니까 세상의 모든 즐거움이 아무 의미가 없어진 거예요.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가지고 있다가 요즘 주가가 폭락하는 것 같은 사건이 일어나 일순간에 다 잃었다고 해 봅시다. 100억을 호가하던 증권이 일순간에 휴지조각이 됐어요. 그럴 때 아까워하며 더 애걸복걸하다 보면 급기야 자살하는 일도 벌어집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아, 그게 머릿속에 있는 숫자에 불과했구나’, ‘종이와 글자에 불과했구나’ 이렇게 자각할 수 있다면, 자각하는 순간 오히려 다른 문제까지 다 해결돼버려요.

이걸 탁 자각하면 삶이 편안해집니다. 그렇게 편안해진 상태에서 필요하다면 지위를 가질 수도 있고, 필요하다면 재물도 가질 수가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재물에 집착되어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저 필요하기 때문에 가지는 거예요. 은행 직원이 항상 돈을 세지만 자기 돈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거기에 집착이 안 생기는 것과 같아요. 돈을 만지지 않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아무리 만져도 그냥 종이조각으로 보고 자기 직업이니까 그냥 헤아리는 거예요. 우리도 이 세상에서 필요하다고 하니까 그런 지위나 돈도 필요하면 쓸 뿐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거기에 매여 있으면 고통이 따릅니다.


출처 스님의 하루 https://www.jungto.org/pomnyun/view/82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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