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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을 아홉 번째 걸 때 깨달은 구지선사 이야기

작성자우야꼬|작성시간20.06.26|조회수81 목록 댓글 0

옛날에 도를 구하러 한 스승을 찾아간 수행자가 있었어요. 스승은 ‘네까짓 게 무슨 도를 구한다고 그래’하고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수행자는 자기는 ‘죽어라’ 그러면 죽을 수도 있는 각오로 수행할 테니 지도해달라고 애원을 했어요. 그러자 스승이 ‘그래, 솥을 걸어라’ 이렇게 말했어요. 즉, 부엌을 만들라고 한 겁니다. 그래서 제자가 솥을 자기 나름대로 잘 만들어 놓았는데, 스승이 보고 ‘뭐 이렇게 만들었어?’ 하고 발로 팍 밟아버렸어요. 이때는 아직 스승에 대한 신뢰와 믿음, 그리고 이 스승 밑에서 공부해야 한다는 자기 욕구가 있으니깐 ‘죄송합니다’ 하고 다시 쌓았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만들 때도 잘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두 번째로 쌓아보니깐 앞에 보다 확실히 잘 만들어졌어요. 그래서 스스로 ‘이래서 문제가 있다고 하셨구나’ 하고 반성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만들어서 스승에게 보여주니 스승이 또 솥을 밟아 버렸습니다.

이번에는 속에서 조금 불만이 생겼겠죠. 그러나 그 불만보다는 여기서 내가 어쨌든 이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강하니까 ‘알겠습니다’ 하고 또 새로 쌓았어요. 또 정성을 들여 쌓으니깐 확실히 아까보다 잘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러셨구나. 이번에는 합격이겠지’ 하고 기대했는데 스승이 또 밟아버렸어요. 그러니 화가 푹 올라왔습니다. 이때는 화가 푹 올라와도 참았습니다. 푹 올라오는 감정을 성질대로 표현하면 스승 밑에서 배울 수가 없으니까 참고 또 다시 쌓았습니다. 배우겠다는 이익이 손실보다 더 크기 때문에 참을 수가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스승이 아홉 번째로 솥을 밟았을 때는 더 이상 참지를 못했습니다. 못 참았다는 것은 현재의 불만이 배우고 싶은 욕구를 넘어서 버린 겁니다. ‘여기 아니면 공부할 데가 없나?’ 이런 생각이 든 거예요. ‘이게 뭐하는 짓이냐?’ 하면서 확 뒤집어지려는 찰나에 이 제자가 깨달았습니다. 스승이 죽으라고 시키면 죽을 각오까지 하면서 공부를 하겠다고 했으면서, 고작 솥을 아홉 번 밟는다고 성질이 확 나서 뒤집어지는 그때 자기를 본 겁니다.

최선을 다하되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이기

수행은 이렇게 자기 마음을 보는 것입니다. 마음이 이런 식으로 작용하는 것을 탁 보는 순간 찬물을 끼얹듯이 마음이 가라앉는 겁니다. 그때 스승이 ‘이제 공부할 만하다’라고 하면서 제자로 받아들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쌓았다가 다시 쌓으라니 쌓고, 무너지면 또 쌓고, 어차피 무너트릴 건데 하는 식이면, 그건 마음이 게으른 것입니다. 반대로, 집중을 해서 애를 썼는데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마음이 확 뒤집어집니다. 그런데 수행은 집중해서 하되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제자가 스승을 찾아갔을 때 맹세를 했잖아요. 처음에 스승이 안 받아 준다고 하니까 ‘제가 죽으라면 죽겠습니다’ 하고 약속까지 했는데, 솥을 아홉 번 밟는 순간 마음이 뒤집어진 겁니다. 솥을 아홉 번 밟았다고 해서 그게 죽을 일은 아니잖아요.

수행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이 이렇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겸손한 것 같지만 건드리면 탁 에고가 작동합니다. 그걸 딱 봐야 하는데, 우리는 그것이 잘 안 보입니다. 감정이 확 일어날수록 그걸 잘 지켜봐야 되는데, 감정이 확 일어나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집니다.

아무리 스승이니 제자니 법사니 해도, 이런 상황이 한 번 거치고, 두 번 거치고, 세 번 거치고,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집니다. 그때는 스승도 없고,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이, 감정이 그대로 표출되어 버립니다. 그런 감정들이 우리 마음속에 다 묵혀 있습니다. 그래서 수행을 한다고 하면서도 상황에 부딪히면 무용지물이 되는 겁니다.

요즘은 아무리 스승과 제자의 관계라 하더라도 그런 부분까지 건드리면 같이 못 삽니다. 그것까지 건드리면 다 집에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런 부분을 건드리지 않고 개선을 해나가려고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거예요. 옛날에는 제자가 찾아오면 오자마자 그것부터 건드려서 마음이 확 뒤집어지게 하고 그랬습니다.

출처 스님의 하루 https://www.jungto.org/pomnyun/view/82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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