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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운명론에 대해

작성자자연|작성시간22.10.30|조회수24 목록 댓글 0

“오늘날 불교에서 말하는 ‘까르마’는 운명론이 되어 있습니다. 운명론은 인도의 전통적인 사상입니다. 인도뿐만 아니라 원시적인 모든 사회에서는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붓다의 가르침은 다릅니다. 까르마는 정해진 것이 아니고 형성된 것이라는 겁니다. 마치 습관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습관은 잘 바뀌지 않잖아요. 그래서 정해져 있다고 믿게 된 겁니다. 그러나 붓다는 까르마가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변한다고 말했습니다. 운명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겁니다.

운명론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인간의 운명은 신이 정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인간의 운명은 전생이 정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인간의 운명은 태어난 연월일시가 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붓다는 운명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에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내가 어떤 사람을 칼로 죽여도 죄가 안 된다. 신의 뜻이기 때문에, 전생 때문에, 태어난 연월일시 때문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운명론은 인간의 어떤 행위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을 수가 없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불교에는 타인의 운명을 점치지 말라는 계율이 있습니다. 관상을 보든, 손금을 보든, 어떤 행위를 하든 그 사람의 운명을 점치는 행위는 모두 계율에 어긋납니다. 한국 사람들은 승려가 되면 손금을 보든 관상을 보든 운명을 점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얼마나 모순입니까. 이것은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문제가 아니라 부처님 법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만약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것에 동조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차별을 합리화하게 됩니다. 2600여 년 전에 이미 붓다는 계급 차별을 부정했으며, 여성이 비구니가 되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붓다가 그 당시에 비구니 제도를 허용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지금 우리는 허용해야 합니다. 부처님 당시에 허용한 비구니 제도를 왜 지금은 허용하지 않을까요? 붓다는 계급 차별을 부정했습니다. 그런데 스리랑카에서는 승려 사회에도 카스트 제도가 적용됩니다. 이것을 불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지금 저는 어떤 종교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담마에 대해서 얘기하는 겁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너는 린포체이다’라고 하는 것과 어린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너는 왕자다’라고 하는 것이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왜 3,000명의 린포체 중에 여성은 한 명도 없을까요? 여성은 환생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담마가 아닙니다. 물론 문화는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담마는 객관적 사실입니다. 서로 다른 종교는 존중해야 합니다.

담마는 문화와 다릅니다. 운명론은 불교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초기 불교를 계승한다고 하는 태국에서 비구니 제도를 왜 허용하지 않는지 저는 이해가 됩니다. 비구니 제도는 AD 1세기와 2세기 사이에 없어졌습니다. 인도에서는 1세기에서 5세기까지 굽타 시대입니다. 이때는 성차별과 계급 차별이 확고했던 때입니다. 불교가 살아남으려면 이 시스템에 순응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테라밧다의 모든 경전이 그 시스템에 맞게끔 편집이 되어 있습니다. 특히 아비달마는 더 심합니다.


태국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4세기 또는 5세기경입니다. 최초로 불교가 전래된 것은 그 이전이지만 불교가 발달한 시대는 그때였습니다. 비구니 제도가 없을 때이니까 왜 비구니 제도를 허용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태국에서는 비구니가 있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비구니 제도를 인정하는 않는 자세를 고수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대화가 되어야 합니다.

또 다른 문제는 ‘억압에 대해서 저항할 때 무력을 쓸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붓다는 무력을 사용하지 않았고 전쟁을 외면하지도 않았습니다. 사카족과 꼴리족이 로히니 강물을 가지고 싸울 때 붓다는 강 가운데로 가서 말렸습니다. 또 마가다국의 아자타 사투 왕이 밧지족을 침공할 때도 붓다는 일곱 가지 예를 들어서 전쟁의 무익함을 말했습니다. 이렇게 평화를 옹호한 붓다는 코살라국이 석가족을 멸망시키려고 했을 때 세 번이나 평화적으로 군대를 막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막무가내로 나오자 무력으로 저항하지 않았고 결국 석가족은 전멸해야 했습니다.

석가족의 일부가 도망을 간 덕분에 인도 상카시아 근방에는 지금도 석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그럼 한국은 어떨까요? 400년 전에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습니다. 그때 일본의 요구는 중국을 침공하러 가는 길을 내놓으라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전쟁할 이유가 없었는데 너무나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한국의 왕이 도망가면서 승려들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승려들은 무장을 해서 일본군을 막았습니다. 일본군이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 하였고, 왕의 요청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일본군은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절을 불태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어느 절을 가더라도 ‘400년 전에 임진왜란으로 불태워져서 새로 지어졌다’ 하는 안내 문구를 볼 수 있습니다. 승려들이 일본군에 저항해서 싸웠기 때문에 결국 일본군은 절에 불을 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100년 전에 한국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습니다. 저의 스승인 용성조사님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3.1 독립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당시 인구가 2천만 명이었는데 그중 2백만 명이 참여했습니다. ‘대한독립 만세’ 하고 부르는 비폭력 투쟁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일본군은 총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죽은 사람이 수 만 명이고, 다친 사람은 수십 만 명이었어요. 결국 1년 만에 진압이 됐습니다.

그 후 무장 투쟁이 일어났습니다. 용성조사님은 무장 투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하고, 상해 임시정부를 재정적으로 후원했습니다. 용성조사님의 제자 중에는 아예 승복을 벗고 무장 투쟁에 참여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는 독립운동을 했다고 굉장히 탄압을 받았지만, 지금은 국가에서 존경하는 애국자가 되었습니다.

억압에 대한 무력투쟁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는 많은 토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호랑이가 내 어머니를 물어 죽인 것 때문에 호랑이를 죽였다면 살인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그 호랑이가 또 다른 이웃집 할머니를 또 물어 죽이려고 해서 호랑이를 죽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면, 원한에 의해서 죽인 것이 아닙니다.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서 죽인 것입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이것을 수용합니다. 그렇다고 과보가 없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어떤 이유로든 살생을 하면 과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보를 기꺼이 자신이 받고 이웃집 할머니를 살린다는 거죠. 대답이 길어졌습니다. 여러분들이 더 많은 대화를 이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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