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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Q&A 게시판

상사가 저를 종 부리듯이 대해서 모욕감을 느낍니다

작성자자연|작성시간22.11.06|조회수17 목록 댓글 0


“최근 회사에서 상사가 외국인으로 바뀌고, 그분이 한국에 방문해서 일주일 동안 회의도 하고 출장을 같이 다녔습니다. 그분이 거짓말을 좀 많이 하고, 다른 사람의 흉을 보면서 같이 동조해 주기를 바라고, 본인이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내용을 과장해서 나쁘게 보고를 합니다. 제 생각은 좀 다르다고 하니까 화를 내고, 저를 종 부리듯이 해서 불쾌감과 모욕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며 예약을 했다가 취소하기를 수십 번 반복하고, 자기가 한 말 중에 불리한 말은 기억을 못 한다고 하고, 하지도 않은 말을 제가 했다고 우깁니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화내지 않고 상대할 수 있을까요?”

“첫째, 질문자가 볼 때 그 사람의 행위가 법규에 어긋나는 행동이에요? 둘째, 사내 규칙을 기준으로 했을 때 징계에 해당되는 행위예요? 아니면 기분은 나쁘지만 그런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이걸 먼저 질문자가 판단해야겠죠. 어떻게 생각해요?”


“좀 고민을 해봤어요. 사규에는 분명히 위반되는 행동들이 굉장히 많았고, 우리나라 노동법 중에도 하나 정도는 걸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걸 공식적으로 문제화하려니 저도 그 일에 매달려서 시간을 써야 하니까 좀 불편한 마음이 들어서 그렇게는 진행을 안 하려고 해요. 그런데 계속 밉고 화나는 마음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자는 사회적 정의감이 없는 사람이에요. 상대가 법규를 어겼는데도 개선할 생각이 없잖아요. 아예 잘못된 법이라면 모르겠지만, 법이 정당한데 그 법규를 어긴 사람을 바로잡을 생각이 없다면 질문자는 사회 정의감이 없는 거죠. 사규를 명백하게 어겼다고 한다면 누군가 문제 제기를 해서 바로잡도록 해야 회사 안의 정의가 실현되는 거잖아요. 그걸 외면했다면 질문자는 정의감이 없는 거예요.

둘째, 문제 제기를 하려니 귀찮고 복잡해서 안 하겠다면 이것은 그 사람이 나쁜 게 아니라 내가 귀찮아서 안 하는 거예요. 내가 귀찮아서 안 하는 것을 자각했다면 그 사람을 미워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문제 제기를 안 하는 건 내가 귀찮아서 안 하는 거니까요. 그 사람을 위해서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정의 실현을 위해서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귀찮아서 안 하는 거예요. 내가 귀찮아서 안 하는 행위를 그 사람 탓으로 돌려 미워한다면 이치적으로 맞지가 않습니다.

자기를 좀 직시해보면 좋겠어요. ‘좀 부정의하지만 내 이익을 위해서 이건 그냥 문제 제기를 안 하는 게 낫겠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기를 직시하는 거예요. 귀찮음을 감수하지 않는 것도 내 이익을 위하는 것이잖아요. 아니면 ‘내가 좀 힘이 들고 손실이 생기고 어려움을 겪더라도 이것은 사회 정의를 위해서 문제 제기를 해야겠다’ 이렇게 하든지요.

어느 쪽이든 그 사람을 미워하는 건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사회 정의가 실현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편안한 것도 아니에요. 내 마음은 마음대로 괴롭고, 회사에도 아무 도움이 안 되고, 사회에도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거예요. 이것은 마치 날이 덥다고 해서 불평을 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불평한다고 날이 선선해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시원한 에어컨을 달거나, 선풍기를 켜는 것도 아니고, 나만 괴로워하는 겁니다. 이런 행위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하기 때문에 범부중생(凡夫衆生), 즉 어리석은 중생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상사가 새로 회사에 왔는데 그걸 보고 질문자가 괴로워하기만 한다면 범부중생이에요. 불교적으로 말하면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코에 냄새 맡아지는 것, 혀에 맛보는 것, 손의 감촉, 그리고 생각에 끄달려서 괴로워하는 범부중생에 불과합니다.

상대의 행동이 나한테 기분은 나쁘지만 법규에 어긋나거나 사규에 어긋난 행동이 아니라면 그럴 때는 수행 삼아 일단은 지켜보는 게 좋습니다.

‘함께 지낸 시간이 일주일밖에 안 됐고, 그 사람도 아직 한국 사회를 잘 모르고, 나도 일주일 본 걸로 그 사람이 어떻다 저떻다 하기는 좀 곤란하지 않을까? 그러니 조금 더 지켜보자.’

내가 보기에는 첫인상이 별로 안 좋긴 하지만, 그래도 수행자인 우리는 선입관을 갖고 사람을 보지 말라고 늘 배우잖아요. 그러니 한 달이라도 지켜보는 거예요. 물론 첫인상이 6개월을 지켜보고 1년을 지켜봐도 똑같이 이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1년 뒤에도 ‘그 인간, 그럴 줄 알았다’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어요. 그렇지만 ‘어, 처음 볼 때 하고 사람이 다르네?’ 이런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섣불리 단정하지 마세요. 조금 더 질문자가 지켜보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한 달은 지켜봐야 해요. 저는 석 달 정도는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하고 안 맞는 건 사실이고, 내가 보기에는 별로 안 좋지만, 그래도 석 달은 지켜보자’ 이런 관점을 가져보면 좋겠어요.

‘이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저렇게 반응하는구나.’
‘이 사람은 자기를 조금 과장하는구나.’

그걸 두고 좋다 나쁘다는 가치 판단을 하지 말고 사실을 사실대로 점검을 해보고, 그러고 나서 평가를 하는 게 좋습니다. 상대가 법규나 사규를 어겼을 때도 그걸 어겼다고 곧바로 상대를 고발해 버리면 ‘성질이 좀 더럽다’ 하는 소리를 듣기가 쉽습니다. 정의로운 측면이 있는 반면에 인간관계에서는 성질이 좀 더럽다는 평가를 받게 되는 거죠. 세상이 어떻게 다 법대로 살아지겠어요. 누구나 처음에는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가볍게 문제 제기를 하는 게 좋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사규에 어긋납니다’ 혹은 ‘이렇게 하는 것은 법규에 어긋납니다’ 하고 부드럽게 문제 제기를 해보는 거예요. 고발을 하더라도 이렇게 적어도 한두 번 혹은 세 번 정도 문제를 제기한 뒤에 고발을 하는 게 좋습니다. 그러면 그 고발이 회사에서나 법정에서나 신빙성을 갖게 되고, 본인이 성질 더럽다는 소리도 안 들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부드럽게 문제 제기를 했는데, 화를 벌컥 내고 안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다 두 번째로 같은 행동을 해서 제가 이건 사규에 어긋나고 법규에 어긋난다고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세 번째에도 같은 행동을 또 해서 건의를 했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회 정의를 위해서도 제가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어서 고발합니다.’

이렇게 증거를 갖고 말하면 제삼자가 보기에 신뢰가 생기게 됩니다. 법적인 판정을 내리는 사람에게 신뢰를 획득할 만한 자료를 축적한 뒤에 문제를 제기해야 해요. 그러나 감정이 개입되면 단 한 번으로도 바로 고발을 해버리든지, 반대로 혼자 울면서 참고 참다가 고발도 못 하고 자기만 괴로워하게 됩니다. 일단 불편하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혀줘야 해요. 침묵하면 상대가 나의 불편을 모를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노, 땡큐’라고 말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만 저는 싫습니다’ 하고 거부 의사를 분명하게 얘기를 해줬는데도 또 그렇게 행동하면 ‘이것은 법규에 어긋납니다’라고 명확하게 얘기해야 합니다. 이렇게 증거를 몇 번 축적해서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 실제로 문제를 개선하는 데 용이합니다.

수행의 관점에서 상대를 바라보면, 서로 문화가 다르거나 생각이 다를 수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특히 외국인이기 때문에 우리와는 가치관이 다릅니다. 나하고 다른 걸 가지고 ‘틀렸다’ 이렇게 접근하는 건 너무 경솔한 태도예요. ‘아, 저 사람은 저런 측면이 있구나’ 이렇게 가치판단 없이 바라보는 게 좋습니다. ‘이해는 되지만 그런 행동은 법규에 어긋난다. 그래서 문제 제기를 해서 개선을 하는 게 좋겠다’ 이렇게 해도 되고, 문제 제기를 하려면 귀찮으니까 ‘그냥 본인이 알아서 하도록 놔두자’ 이렇게 해도 됩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본인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너무 내 감정에 치우치게 되면 개선도 못하고 괴로워지기만 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오늘 좋은 말씀 너무 감사드립니다.”

“취향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버릇이 다르고 온갖 것이 다 다른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에 사람은 동일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조금 관찰하는 게 필요해요. 기분은 나쁠 수 있습니다. 감정은 바로 일어나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감정에 휘말리면 안 돼요. 기분이 딱 부정적으로 일어나더라도 약간 평정심을 유지하고 ‘아, 저분은 이런 버릇이 있구나’, ‘저분은 이런 생각을 했구나’ 이렇게 바라보는 게 좋습니다. 그걸 좋다 나쁘다, 맞다 틀렸다고 판단하면 안 돼요. 나하고 다른 것은 일단 조금 더 지켜보세요.


지켜보다가 ‘이건 개선을 해야겠다’ 하는 판단이 들면 반드시 증거를 남기는 게 필요합니다. ‘노 땡큐, 이런 행위는 법규에 어긋납니다’ 이런 내용을 이메일로 보내 두는 것도 좋겠죠. 이런 증거가 있어야 나중에 문제를 제기할 때 신뢰가 생깁니다. 증거가 없어도 이런 경과를 보여주는 사례를 두세 개 정도 모아 두고요. 항상 법적인 판정을 받기 위해서는 이런 물적 증거나 정황적인 증거가 필요합니다. 제삼자인 판사나 다른 사람이 들을 때 양쪽의 말이 다르면 누가 옳은지를 알기 어렵잖아요. 처음에 얘기를 들어보면 이 사람 말이 옳은 것 같지만, 저쪽 사람 말까지 들어보면 누가 옳은지를 판단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이런 과정을 두세 번은 거친 다음에 문제 제기를 해야 해요. 그래야 신뢰를 높일 수 있습니다. 이 점을 꼭 명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스님 말씀대로 제가 불쾌하고 모욕감을 느꼈다는 것에 너무 사로잡혀서 현상을 제대로 못 봤던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해 주신 대로 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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