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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Q&A 게시판

부처님의 법이 쉽게 다가오지 않는 까닭

작성자자연|작성시간23.02.04|조회수13 목록 댓글 0


요즘 사람도 못 깨닫는다면 부처님 당시 사람들은 어떻게 깨달았겠어요? 불가능하죠. 그래도 요즘 사람이 낫지 않을까요? 그런데 여러분에게 부처님의 법이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면 목표가 분명하지 않아서 그래요. 불교대학을 다니고 경전대학에서 공부해도 늘 ‘불교 믿으면 뭐가 좀 잘 되려나?’, ‘이 공부를 하면 장사가 잘 되려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러면 해탈과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수행의 목표는 천상에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죽어서 극락 가는 것도 아니에요. ‘그건 틀렸다’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수행의 목표는 해탈(解脫)과 열반(涅槃)이라는 겁니다.


해탈은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열반은 괴로움이 없는 상태입니다. 괴로움과 즐거움을 분리시켜서 괴로움을 없애기란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괴로움과 즐거움이라는 건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기 때문이에요. 둘 다 뿌리는 욕망입니다. 욕구가 이루어지면 즐겁고, 욕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괴롭습니다. 이렇게 반응이 양쪽으로 일어날 뿐이지 그 뿌리는 하나예요. 그래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괴로움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거예요. 즐거움을 행복으로 삼으면 필연적으로 괴로움이 따라옵니다. 그래서 고락은 계속 윤회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이 대목에서 귀 기울여 잘 들으셔야 합니다. ‘저는 설령 괴롭더라도 즐거운 게 좋습니다’ 이런 사람도 있죠? 그러면 그 사람에게는 그것도 하나의 공부예요. 다만 그럴 경우 즐거움을 추구하는 건 좋지만, 괴로울 때 불평하면 안 돼요. 괴로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돈을 빌려서라도 마음껏 쓰고 싶다면 써도 돼요. 그런데 그 돈을 갚을 때 고생하거나 미처 갚지 못해 감옥에 가도 마음이 편안해야 합니다. ‘야, 그래도 나는 실컷 원대로 놀아봤다. 그게 어디냐? 생각만 하다 죽는 것보다 옥살이를 하더라도 직접 놀아본 게 나는 훨씬 좋다’ 이러면 문제가 없다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괴로울 일이 실제로 없어요. 그런데 대부분 이럴 때 100% 후회합니다. ‘조금 참으면 될 걸 괜히 고생이다’ 이렇게 후회하는 게 문제라는 거예요.

즐거움으로 행복을 삼지 말아야 괴로움이란 불행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물론 기분이 좋고 기분이 나쁜 것은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동으로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니 기분이 좋은 것과 기분이 나쁜 것을 다만 알아차릴 뿐입니다. 좋을 때 집착하고 나쁠 때 싫어하는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순례를 하면서도 계속 연습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이곳에서 연습하기가 훨씬 좋아요. 괴롭고 즐겁고가 너무 자주 바뀌니까요. 만인공양을 시작할 때는 기분이 좋았는데, 뙤약볕에 조금 오래 서 있으니까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싶었죠. 사람들이 쌀을 잘 받아 가면 기분이 좋은데 방금 받아가 놓고 또 받으려고 오면 기분이 확 나빠지잖아요. (웃음)


이처럼 좋고 싫음이 너무 수시로 바뀌니까 조금만 관찰하면 알 수가 있습니다. 법문을 들으면서 성지순례의 거룩함을 찬탄하다가도, 오줌이 마려운데 법문이 빨리 안 끝나면 성질이 나기 시작합니다. 그런 사람은 일어나서 화장실 다녀오세요. 화장실은 저쪽에 있습니다. (웃음)

이처럼 환경이 열악할수록 마음이 더 민감하게 반응을 합니다. 수행을 할 때는 오히려 옆에 누군가 트레이너가 있는 게 좋습니다. 트레이너로 가장 좋은 사람은 남편이나 아내, 자식이나 부모입니다. 여기서는 제가 여러분에게 제일 좋은 트레이너예요. 막 이래라 했다가 저래라 하잖아요. 저를 존경한다고 했다가도 제가 팍 성질을 내면 ‘뭐 저런 게 다 있나’ 싶죠. 이렇게 마음이 자꾸 바뀌죠? (웃음)

그럴 때 ‘그러려니’ 하고 지켜보는 연습을 자꾸 해보세요. 여기서 연습을 한 뒤에 집에 가서 해보면 잘 될 테니까 여기에서 꾸준히 연습을 좀 해봐요. 특히 본인 남편은 나쁘다고 생각하고 스님은 좋게 생각하는 분들은 여기서 저하고 일주일만 같이 살아보세요. ‘우리 남편 같은 사람이 세상에 없구나. 스님 같은 사람과 살았으면 어쩔 뻔했나!’라고 하게 될 거예요. (웃음)

이런 원리를 알아야 수행이 됩니다. 기분이 좋다고 막 흥을 내면 수행자가 아니라는 뜻이 아니에요. 수행자는 흥을 내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 흥을 낼 때 내더라도 거기에 놀아나거나 집착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음식 맛도 모르고 살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맛있는 걸 먹었다고 다음에 맛있는 거 없다고 짜증 내면 안 된다는 거예요. 배고파서 음식을 먹어야 하는 상황인데 맛없다는 이유로 안 먹다가 몸을 해치면 안 되잖아요. 맛과 건강은 아무 관계가 없어요.

지금 라씨 먹고 설사해서 고생하는 사람이 있죠? 이처럼 입에는 달콤한 것이 위와 장에는 나쁜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 맛을 느끼기는 하되 맛보다는 건강이 중요하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많이 먹으면 기분은 좋지만 몸에는 나쁜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맛과 포만감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건강을 해치게 되죠.

부처님은 그런 원리를 깨달았기 때문에 마왕의 유혹을 이겨내고 부처님이 되실 수 있었어요. 마왕이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자재천왕(自在天王)이 될 기회를 줬는데도 부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바가 없다.’

그런데 저는 자재천왕의 유혹을 이기기 힘들 것 같아요. 그래서 가끔은 ‘내가 평화와 통일, 북한 동포에 너무 집착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좋게 말하면 자비심이지만, 그것도 지나치면 집착입니다. 그러면 감정이 자꾸 흔들리게 되고, 동참하지 않거나 반대하는 사람을 보면 짜증이 나는 거예요. 이처럼 좋은 일이라도 집착이 되면 괴로움이 따릅니다. 그건 수행자의 자세가 아니에요. 그래서 항상 자기를 살피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가 이곳에서 분명히 알아야 해요. 오늘 해결은 안 되더라도, 원리는 분명히 알고 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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