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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Q&A 게시판

고액 사기에 교통사고까지 당한 딸, 애가 탑니다.

작성자자연|작성시간23.02.06|조회수18 목록 댓글 0


“28살 딸이 있습니다. 사기를 당해 지인들로부터 빌린 1억 5천만 원이란 거액을 갚지도 못한 상태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5개월째 재활 중입니다.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친구는 딸이 4500만 원을 갚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교통사고로 크게 다친 딸을 버림과 동시에 하루가 멀다 하고 돈을 갚으라고 협박을 해대더니, 급기야 저한테까지 협박을 하고 있습니다. 딸은 여기저기 시달리다 자포자기한 상태로 무기력하게 집에서 유튜브만 봅니다. 아픈 아이를 내쫓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같이 생활하려니 점점 힘이 듭니다. 답답한 마음에 딸과 함께 죽고 싶지만 장애를 가진 남동생과 이제 고3이 되는 막내가 있어 차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딸이 저지른 일인데 정작 본인은 수습할 생각조차 없는 것 같아 저만 애가 타서 녹아내립니다. 물론 딸은 성인이 되었으니 죽든 살든 자기가 알아서 할 일이고 저는 제 삶을 살아야 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매일 24시간을 한 공간에서 같이 지내다 보니 그러기가 쉽지 않습니다. 혼자 나가서 살 형편도 안 되고, 이제는 혼자 스스로 결정내리며 사는 것에 지쳤습니다. 누군가에게 묻고 듣고 나누어서 슬기롭게 극복하고 싶습니다.”

“질문자가 생각하는 ‘슬기롭게 극복한다’는 건 뭘까요? 딸이 알아서 나가주든지 누가 1억 5천만 원을 줘서 해결이 되든지, 딸이 돈은 못 갚더라도 유튜브만 보지 말고 명랑하게 사는 것이 질문자 생각에는 ‘슬기롭게 극복하는 법’일 겁니다. 그런데 그건 모두 내가 변하는 게 아니라 딸이 변해줘야 하고, 다른 사람이 변해줘야 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건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날씨가 추우면 옷을 더 입는 건 내가 할 수 있고, 날씨가 더우면 옷 하나 벗는 건 내가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내가 입은 옷 상태는 그대로 놔둔 채 날씨더러 ‘따뜻해져라’, ‘서늘해져라’ 명령해 봤자 그건 내 마음대로 될 수가 없는 것과 같아요.

질문자가 지금 딸이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딸의 남자친구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빚쟁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건 내가 입은 옷은 그냥 둔 채 날씨가 내 옷차림에 맞춰주길 바라는 것과 같아요. 내가 춥다고 느낄 때는 날씨가 따뜻해지고, 덥다고 느낄 때는 날씨가 서늘해지면 좋겠다고 바라는 셈입니다. 요행히 질문자의 바람이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될 확률은 아주 낮습니다. 질문자가 볼 때는 슬기로운 해결책, 현명한 해결책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건 결국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됐으면 좋겠다’ 하는 욕망일 뿐이에요.

그러니 정말 슬기롭고 현명한 해결책은 날씨를 탓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날씨에 맞춰 대응하는 거예요. 날씨가 추우면 방 안에 있든지, 그래도 외출하고 싶으면 옷을 좀 두껍게 입고 나가면 됩니다. 날씨가 더우면 방 안에 있든지, 그래도 외출해야 한다면 가볍게 입고 양산을 쓰고 나가든지 할 수 있겠죠. 이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거잖아요. 지금 질문자가 딸을 탓하는 건 춥거나 덥다고 날씨를 탓하는 것과 같아요. 질문자는 스스로 결정하는 게 지쳤다고 말했지만, 사실 지금 자기 삶의 주인으로 스스로 결정하고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딸을 지금 내쫓을 수는 없어요. 지금 내쫓는다면 딸이 자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자살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현실을 감당하기가 어려우니까 그럴 위험도 있다는 거예요. 그러나 만에 하나 그렇게 되면 질문자는 ‘그때 그냥 집에 있도록 놔둘 걸’ 이렇게 또 후회할 거예요. 지금은 답답하니까 나가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정말로 딸이 죽어버리면 ‘아이고, 내가 딸을 죽였구나’ 이렇게 또 후회할 일이 됩니다. 내가 나가라고 얘기하면 책임이 나한테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그런 문제는 아예 입을 다무는 게 좋아요. (웃음) 자기가 원해서 나갔다가 자기가 죽는다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 책임은 아니잖아요. 그러나 안 나가겠다는데도 내가 내보냈다면 나중에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마치 내 책임인 것 같이 느껴집니다. 딸이 죽겠다고 할 때 ‘그래도 죽지 마라’ 이렇게 말했는데 딸이 죽었다면, 죽은 건 안타깝지만 내 책임은 아니에요. 그런데 딸이 죽겠다고 할 때 ‘그래, 죽어라’ 이렇게 말했는데 딸이 정말 죽었다면, 마치 내가 죽인 것처럼 또 오랜 세월을 후회하면서 살게 됩니다. 이것은 내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데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딸이 빚진 돈을 갚아줄 수 있으면 물론 좋겠죠. 그런데 질문자는 경제적 능력이 그 돈을 갚아줄 만큼은 안 되잖아요.


제 말의 요지는 안 되는 걸 걱정한다고 해결책이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딸이 질문자와 한집에 계속 살든 집을 나가든, 딸이 돈을 갚든 안 갚든, 질문자가 관여하지 않아야 합니다. 날씨가 추운 건 관여를 안 해야 해요. 옷을 껴입거나 외출을 하지 않거나 내 필요에 따라 내가 맞추면 됩니다.

딸의 남자친구가 딸을 떠나든 안 떠나든 그것도 관여하지 마세요. 질문자도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질문자에게 아들이 있는데 여자친구한테 돈을 4500만 원이나 떼였다면 부모 입장에서 결혼하라고 하겠어요? 결혼하지 말라고 하고, 떼인 돈도 당연히 받으라고 하겠죠. 이처럼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딸의 남자친구는 하등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지금처럼 행동하는 게 당연한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질문자가 거기에 관여할 필요가 없습니다. 남자친구에게서 전화가 오면 ‘아이고, 그랬구나. 우리 딸이 문제구나’ 그냥 이러고 말면 돼요. 대신 갚으라는 요구를 받아도 질문자가 갚아야 할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 ‘왜 그걸 내가 갚냐!’ 이렇게 악을 쓸 필요가 없어요. 가만히 있으면서 그냥 질문자가 안 갚으면 돼요. 싸워봤자 질문자만 힘들어요. 그러니 그냥 딸의 남자친구에게는 ‘아이고, 그랬구나. 안 됐다. 안 그랬으면 참 좋을 텐데 얘가 그러네. 내가 얘를 잘못 키웠나 보다’ 이 정도로 말하면 돼요. 더 이상 이렇고 저렇고 할 필요 없어요. ‘내가 대신 갚아주겠다’ 이런 말 할 필요도 없고, ‘나는 못 갚는다’ 이런 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웃음) 그건 원래 나하고 관계없는 일, 그 두 사람 사이의 일이니까요. 이렇게 그냥 편안하게 대응하면 됩니다.

그리고 딸의 입장에서 한번 보세요. 1억 5천만 원이라는 돈을 날리고 교통사고까지 당했는데 자기로서는 지금 그 돈을 갚을 길이 없어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그러니 지금 이 상태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건 유튜브를 보거나 술을 마시면서 하루하루 견디거나, 안 그러면 죽는 길밖에 없잖아요. 딸이 죽는 게 나아요, 유튜브 보는 게 나아요?”

“유튜브 보는 거요.” (웃음)


“그래요. 지금 상황이 질문자에게는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그게 좋은 일이에요. 나쁜 일이 아닙니다. 유튜브를 보고 술을 마시더라도 딸이 안 죽고 살아있는 게 좋은 일이잖아요. 유튜브를 보지 말고 나가서 돈을 벌든지 가족들에게 더 잘했으면 좋겠다는 건 질문자의 바람일 뿐이에요. 사람이 어려움에 처하면 보통은 그렇게 잘 안 됩니다. 지금 질문자는 딸의 상황이 안 좋은 걸 보는 것만으로도 본인까지 덩달아 죽네 사네하고 있잖아요. 지금 본인의 수준이 그런데, 질문자를 닮아서 자란 딸이 질문자보다 더 뛰어날 수 있을까요? 1억 5천만 원을 떼이고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도 떠나버렸는데 생글생글 웃으면서 나가서 직장 다니고 돈을 벌 수준이 될까요?”

“아니요...”

“그래요. 지금 자기 수준을 모르고 바라는 게 너무 큽니다. 그러니 우선 질문자가 자기 수준을 높여야 돼요. 딸이 어떻게 살든 성인이잖아요. 그건 딸의 인생이니 그냥 두세요. 죽어도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부모 입장에서는 딸이 안 죽는 게 나으니까 종일 유튜브만 보고 있더라도 그냥 두시고요.

그리고 돈이 하나도 없으면 아무리 갚고 싶어도 갚을 방법이 없잖아요. 돈이 있으면서 안 갚으면 문제가 되지만, 정말로 없어서 못 갚는 건 문제가 안 됩니다. 옛날에는 그런 사람을 두들겨 패거나 노예로 삼기도 했어요. 그러나 오늘날에는 때리면 폭행죄가 되니까 때릴 수도 없고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있으면서 안 주면 압수를 하지만, 없어서 못 주는 건 방법이 없어요. 그러니 그건 질문자가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딸이 그냥 신용불량자가 될 뿐이에요. 또 앞으로 딸이 취직을 하면 그 급여에서 돈이 조금씩 나갈 거예요. 요즘은 취직을 해도 급여가 다 빠져나가지는 않습니다. 월급을 200만 원 받는다면 생활비 150만 원은 놔두고 50만 원만 나가게 되는 식이에요. 기본 생존에 필요한 것은 법에서 보호해 주고 있어요.

그러니 큰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그저 ‘그래도 안 죽고 살아 있으니 다행이다’ 이렇게 얘기해 주세요. 그런 딸은 놓아두고, 장애가 있는 동생과 고3 아이를 돌봐야 집안에 평화가 오지 않을까요? 질문자까지 딸에게 매몰돼서 죽네 사네 하면 장애가 있는 동생은 어떡하고 고3인 아이는 어떡해요? 그건 어리석은 짓입니다. 이런 걸 두고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제1의 화살을 맞을지언정 제2의 화살은 맞지 말라.’


딸의 문제가 제1의 화살이라면, 질문자가 거기에 덩달아서 같이 죽네 사네 하면 그게 제2의 화살인 거예요. 또 질문자가 그런 상태이기 때문에 나머지 아이들이 학교 공부도 못하고 불안에 떨거나 영향을 받으면 그건 제3의 화살이 됩니다. 지금 질문자는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어요. 문제가 있어도 그 문제 전부가 딸 탓은 아니에요. 딸에게 문제가 생긴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에 내가 대응을 잘못했기 때문에 제2, 제3의 문제가 생겨난 거예요.

그러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할 때 ‘아이고, 그래도 안 죽고 살아있는 것만도 다행이다’ 이렇게 기도하세요. 세상 사람들은 딸을 비난할지 몰라도, 부모의 입장에서는 어쨌든 안 죽고 살아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잖아요. 그 생각만 하지, 다른 건 아예 신경을 끄세요. 딸 대신 갚아주겠다는 생각도 하지 말고,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거나 나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지 말고, 유튜브를 보라거나 보지 말라는 생각도 하지 마세요. 딸은 그냥 내버려 두고 나는 ‘그저 딸이 살아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이렇게만 기도하는 거예요. 이렇게 질문자가 자기 할 일을 하고 다른 아이들을 돌보면 제1의 화살은 맞았을지언정 제2, 3, 4의 화살은 맞지 않게 됩니다. 관점을 이렇게 가지면 좋겠어요.

물론 실천하기는 어렵죠. 딸의 상황과 모습이 뻔히 보이는데도 그냥 있으려면 질문자 말처럼 어려운 건 맞아요. (웃음) 그런데 가만있기 어렵다고 해서 같이 끼어들면 같이 빠져 죽게 됩니다. 딸은 지금 1억 5천만 원을 사기당하고 남자친구도 잃고 교통사고로 심하게 다치기까지 했으니 지금 얼마나 힘들겠어요? 물론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일어날 수 있다면 질문자 입장에서는 정말 기쁘겠죠. 그런데 지금 힘들어하는 딸을 보고 한심해하는 한편으로 같이 빠져들고 있는 질문자를 또 다른 가족이 보면 얼마나 한심하겠어요? 딸이 한심하다고 말하면서 정작 본인도 딸과 똑같은 행동을 지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딸은 어떻게 되든 그냥 놔두세요. 살아있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질문자 본인의 삶을 잘 살면 지금의 고통이 더 이상 확산되지는 않습니다. 딸의 문제는 해결 못 하더라도 그것이 더 이상 번지지는 않아요. 이것이 슬기롭고 현명한 관점입니다. ‘한 집에 살면서 어떻게 부모가 가만히 있습니까!’ 그러면 같이 빠져 죽는 거예요. (웃음) 그런 딸을 보면서도 ‘살아있어서 고맙다’ 이렇게만 생각할 수 있다면, 설령 빠져 죽는다 해도 하나만 빠져 죽지, 다른 사람은 빠지지 않습니다. 이런 것을 슬기롭다고 말해요. 질문자가 나서서 해결하려 들면 같이 빠져 죽게 돼요. 나하고 관계없다고 좀 선을 긋고 편안하게 있으면 어렵다 해도 한 명만 어려운 것으로 그쳐요. 딸이야 빠져 죽든지 기어 나오든지 자기가 알아서 할 테고, 질문자를 포함한 나머지 가족들은 괜찮은 거예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감사합니다. 제가 어리석은 줄은 알고 있었지만 정신 차리도록 하겠습니다.” (웃음)


“네. 이제야 얼굴에 좀 웃음기가 도네요. 아까는 방송에 얼굴이 다 비치는데도 멍하니 입을 벌리고 하늘을 쳐다보는 모습이 생기도 없고 정신도 없어 보였어요. (웃음) 지금이라도 정신 차려야 질문자도 살고 나머지 아이도 삽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갖고 신경 쓰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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