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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Q&A 게시판

더러운 것이 싫지만 청소도 싫어요, 어떡하죠?

작성자자연|작성시간23.02.11|조회수7 목록 댓글 0


“생생한 인도 소식을 매일 올려주셔서 저도 함께 성지를 순례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모든 사물은 더럽고 깨끗함이 따로 없다고 하셨는데, 저는 더럽다는 것에 집착해서 분별심을 냅니다. 그렇다고 깨끗이 치우지도 않습니다. 한 집에서 30년이 넘게 살다 보니 집안 하나하나가 다 지저분한데, 치우기는 싫고, 더러운 것을 보면 분별심만 납니다. 이 마음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어떻게 하긴요? 괴로워하면서 살면 되죠. 방법이 없잖아요. 더럽고 깨끗한 걸 따지면서 치우지 않아서 지저분하다면 그걸 보면서 괴로울 수밖에 없죠. 더럽고 깨끗한 것이 본래 없다는 관점에서 더럽다는 생각을 안 하면 안 치워도 괴롭지 않을 수 있어요. 더럽고 깨끗하다는 분별을 냈으면 더러운 걸 치우고 깨끗하게 살면 괴롭지 않습니다. 그런데 분별심은 내면서 행동은 안 한다면 괴로울 수밖에 없죠. 여기 뜨거운 물이 있는데 먹고는 싶고 혀는 안 데고 싶다면 그건 불가능해요. 먹으면 혀를 데든지, 혀를 데기 싫으면 먹지 말든지, 둘 중에 하나는 해야 하잖아요. 질문자도 치우기 싫으면 분별을 내지 말든지, 분별을 냈으면 정리를 하든지 해야죠. 그런데 이것도 안 하고 저것도 안 하잖아요. 그러면 괴롭게 살 수밖에 없죠. 달리 방법이 없어요.


자연을 한번 보세요. 자연은 따로 치우는 사람이 없습니다. 낙엽이 떨어졌다고 비질을 하지도 않고, 썩은 가지가 떨어졌다고 치우지도 않아요. 강이 범람해서 돌이 튀어나왔다고 그걸 치우는 경우도 없습니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그것입니다. 더러운 것도 아니고 깨끗한 것도 아니고 그냥 있는 그대로예요. 그러니 낙엽이 떨어지면 썩어서 거름이 되고, 가지가 떨어져 엉켜 있어도 아무 상관이 없죠.

이처럼 우리가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본래 아름다운 것도 없고 추한 것도 없고 본래 깨끗한 것도 없고 더러운 것도 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어요. 그러나 사람이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 생각의 내용은 사람마다 다르겠죠. 내가 원하는 모양은 ‘아름답다’라고 하고, 내가 원하지 않는 모양은 ‘아름답지 못하다’라고 해요. 내가 원하는 건 ‘좋다’고 하고, 내가 싫어하는 건 ‘나쁘다’라고 합니다. 다 마음이 짓는 거예요. 모든 사람의 생각이나 마음이 똑같으면 평가도 다 똑같겠지만, 사람마다 생각이나 마음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거예요.

우주를 보세요. 사람이 목적에 따라 만들어서 사용하고 버린 인공물을 제외하면 우주에는 쓰레기가 없습니다. 그냥 그대로의 상태일 뿐이에요. 자연에도 쓰레기라는 게 없어요. 낙엽이 많이 썩어 있는 물을 두고 우리는 ‘더럽다’라고 하지만, 낙엽이 많이 썩어 있는 물일수록 식물은 그 물을 영양분으로 삼아 더 잘 자랍니다. 식수로 부적당하다는 것과 더럽다는 것은 개념이 달라요. ‘이 물은 먹는 물로서는 부적당하다. 그러나 식물을 키우기에는 오히려 더 낫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거죠.


사람이 집을 짓고 생활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아서 ‘습기가 많은 땅은 나쁘고 건조한 땅이 좋다’라고 말하지만 기준에 따라 다른 거예요. 농사의 관점에서 볼 경우 습기가 많으면 벼가 자라기에 좋은 땅이고, 건조한 땅은 초원으로서 좋은 땅이에요. 예를 들어 감자를 심을 때는 건조한 땅이 생육에 좋아요. 원래 좋고 나쁜 게 아니라 무엇을 심을 것인지에 따라 그에 맞는 땅과 맞지 않는 땅이 있을 뿐이에요. 그 용도에 맞는 땅을 ‘좋은 땅’, 맞지 않는 땅을 ‘나쁜 땅’이라고 표현할 뿐입니다. 곡식을 심을 때는 자갈이 많거나 바위가 많은 땅이 나쁜 땅이에요. 그런데 건축 자재를 구할 때는 기준이 달라집니다. 축대를 쌓으려는 사람에게는 돌이 많은 땅이 좋은 땅이죠. 목재를 필요로 할 때는 나무가 많은 산이 좋은 산이고요. 그런데 거기에 곡식을 심으려면 나무가 많은 산은 좋은 산이 아니고, 풀이 많은 산이 좋은 산입니다. 나무가 적고 풀이 많으면 개간하기가 쉬우니까요. 이처럼 우리의 필요와 관계에 의해서, 또는 자기가 선호하는 기호와 관계에서 좋다 나쁘다, 옳다 그르다, 맞다 틀렸다 이런 것이 생겨날 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은 또 이렇게 물을 거예요.

‘그러면 분별을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가 아니에요. 분별은 내가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라는 거예요. 본래부터 좋고 나쁜 건 없는데 나한테는 있어요. 내 기호, 내 취향, 내 관점, 내 가치관 등 내 기준에서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습니다. 다만 그걸 절대화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그건 내 기준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떤 음식을 ‘맛있다’라고 말할 때는 그 음식의 절대적인 맛을 논하는 게 아닙니다. 내 입맛에 맞을 때 나는 ‘맛있다’ 이렇게 표현하는 거예요.

동물들의 먹이 습성을 보세요. 어떤 동물은 꼭 살아있는 것만 먹지 죽은 건 안 먹습니다. 반면에 꼭 썩은 고기만 좋아하는 동물도 있어요. 이처럼 생물이 자라거나 동물이 살아가는 방식이 다릅니다. 어떤 동물은 고기만 먹어야 하고, 어떤 동물은 식물만 먹어야 해요. 이런 특성은 전생에 죄를 짓거나 하늘의 벌을 받는 것과는 관계가 없어요. 그 동물의 식성이 그렇게 되어 있을 뿐입니다.

이처럼 자연에서는 어떤 것도 옳고 그르고, 맞고 틀리고, 좋고 나쁘고, 깨끗하고 더럽고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각자 자기의 관점에서 그런 것을 다 가지고 있죠. 그것을 두고 괴로움이 생길 때, 이것이 환경 때문에 생긴 게 아니라 내 관점 때문에 생긴 것임을 알면 괴롭지 않게 살 수가 있습니다.

방 안에 있는 물건을 그냥 놔둔 채 정리 정돈의 개념을 내려놓고 살아도 괜찮아요. 외양간에 사는 소는 정리 정돈의 개념이 없지만 괴로워하지 않잖아요. 그런 것처럼, 질문자도 정리 정돈이라든지 깨끗하고 더럽다는 개념이 없이 그냥 살면 돼요. 그러면 괴롭지가 않습니다. 또 본인이 자기 관점에서 깔끔하게 해 놓고 살고 싶다면 정리를 하면 돼요. 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깨끗하고 더럽고를 분별하면서 정리 정돈이나 청소는 안 한다는 거잖아요. 그러면 그건 모순이기 때문에 괴로운 게 당연해요. 그래서 제가 ‘괴로울 수밖에 없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질문이 있으면 더 해보세요.”

“몸이 늘어져서 그런 것 같아요. ‘치워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이런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그러면 안 치우면 되죠. 치워야 한다는 생각을 놓든지, 일어나서 치우든지, 둘 중 하나를 하면 됩니다. ‘나는 몸이 아프니까 당분간 이렇게 살겠다’ 하든지, ‘치워야 한다’라고 정했으면 몸이 아프더라도 일어나서 치우든지 해야죠. 달리 방법이 없잖아요.

여기 있는 음식이 상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이 음식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에요. 그러면 먹고 싶어도 상했으니까 버리든지, 아니면 먹고 배탈을 앓든지 하는 거예요. 달리 길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먹고는 싶은데 음식은 상했고, 이걸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하면 괴롭다는 말입니다. ‘먹을까, 말까? 먹을까, 말까’ 이렇게 망설임이 생기면 괴로운 게 당연해요. 아무리 좋아도 상했으면 버리든지, 먹고 싶으면 먹고 설사를 하든지, 이 두 가지 길밖에 없어요.”

“스님 말씀을 들으니 제가 관점을 제대로 잡으려고 질문을 잘 드린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웃음)

“수행은 윤리와 달라요. 깨끗이 치워야 한다는 것은 윤리예요. 깨끗이 치워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은 세상이 만들어 낸 인위적인 기준이에요. 담마(Dhamma), 즉 법(法)이라는 것은 원래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취향, 취미, 가치 기준이 다르다 보니 옳고 그름이 생겨나는 거예요. 자기에게 어떤 옳고 그름의 기준이 있다면 그 기준대로 살면 돼요. 그것을 실현해 나가면 됩니다. 그런데 그 기준 때문에 괴로워하는 건 이치에 안 맞는 거예요. 자기가 가진 기준만큼 안 된다고 해서 괴로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원래는 안 해도 되는 일인데 내가 하는 것이니까요. 내가 하고 싶으면 그냥 하면 됩니다. 안 되면 다시 하고, 또 안 되면 또다시 하고, 연구해서 또 하면 돼요. 본래는 꼭 해야 하는 일이란 없지만, 내가 하고 싶으면 해도 돼요. 마찬가지로, ‘그러면 안 되는데요!’ 이렇게 생각한다면 안 해도 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뭘 하라 마라가 아닙니다. ‘괴로울 일이 없다’ 이게 핵심이에요.

하고 안 하는 것은 네가 알아서 해라.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고, 그건 너의 자유다. 그러나 어떤 선택을 하든 괴로울 일은 없다.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에요.”

“네, 원래 좋고 나쁜 게 없는데 제가 분별을 내서 괴롭다는 것을 명심하겠습니다. 스님 말씀에 힘입어서 좀 깨끗하게 치우면서 괴로워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청소도 너무 깨끗하게 하려고 하면 에너지가 많이 들어요. 그러니 너무 지저분하지 않으면 적절하게 사는 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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