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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Q&A 게시판

일이 안 풀려 괴로워하는 남편을 보면 마음이 답답해요.

작성자자연|작성시간23.02.27|조회수91 목록 댓글 0


“남편이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화가로 전업한 지 12년째입니다. 시어머니의 연금과 제 그림 수입으로 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어요. 그런데 남편이 늘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전시에 초대받지 못하다 보니 괴로움과 병고가 끊이질 않습니다. 작년엔 제가 우울증에 걸렸지만 지금은 회복하는 중입니다. 남편을 볼 때마다 답답하고 괴로운 마음이 쌓이는데 어떻게 남편과 제 마음을 위로하면 좋을까요?”

“제가 질문자에게 이렇게 되물으면 질문자는 뭐라고 대답할래요?

‘질문자가 지금 답답하고 괴로운 마음을 저에게 얘기하니까 질문자를 보는 내 마음도 답답하고 괴롭습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남편이 전시회에 초대받지 못하고 자기 원하는 대로 안 된다고 괴로워하는 거나, 그걸 보고 질문자가 답답해서 괴로워하는 거나, 그런 괴로운 얘기를 듣고 답답해하는 나나 다 똑같아요. 남편은 생활에 책임을 안 져도 되니까 돈은 못 벌더라도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림이나 그리고 웃으면서 행복하게 집안일이나 거들어 주면 좋겠죠? 질문자도 남편이야 괴로워하든지 말든지 내버려 두고 웃으면서 살면 되는 거예요. 또 질문자야 저한테 괴롭다고 하소연을 하든지 말든지 그냥 좀 들어주고 나는 나대로 행복하게 살면 됩니다. 무슨 말인지 말귀를 알아들었어요?”

“네, 알아들었어요.”


“그래요. 괴롭게 사는 남편이나 그걸 보고 괴로워하는 질문자나 아무 차이가 없다는 말이에요. 질문자는 이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니, 돈은 안 벌고 그림 그리는 것도 마음에 안 들지만 그것까지 내가 이해해 주겠다. 내 수입하고 시어머니 연금으로 사니까 최소한 인상은 찡그리지 말아야지. 전시회는 초대받고 싶다고 초대받는 게 아니잖아. 그림은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리고 할 일 없으면 집안일이나 돕고 살면 좋지 않으냐?'

질문자가 이런 마음이 있다면 자기 자신에게도 물어봐야 돼요. 남편이 남편 마음대로 일이 잘 안 풀리는 것처럼 질문자 입장에서는 남편이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거예요. '남편이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 들 수는 있지만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남편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면 좋지만 안 돼도 내가 사는 데 지장이 없어요.

'남편이 요새 좀 우울하구나, 요새 좀 방황하는구나, 괴로워하는구나'

그러고 질문자는 자기 인생을 살면 됩니다. 수행이란 내가 원하는 대로 대상을 바꾸는 게 아니에요. 내가 원하는 대로 되면 좋을 것 같죠? 예를 들어 농사짓는 사람은 내일 비가 오면 좋겠다고 하고, 소풍을 가려고 하는 사람은 내일 비가 안 오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어요. 비가 오고 말고를 하나님이 정한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골치가 아프겠어요. 여기는 비를 오게 하고 저기는 안 오게 하고, 이 사람한테는 비가 오게 하고 저 사람한테는 안 오게 하는 방법이 없잖아요. 농사를 짓는데 땅이 가물면 비가 와야 좋지만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대책을 세우면 됩니다. 소풍을 갈 때 비가 안 오면 좋지만 오면 오는 대로 대책을 세우면 돼요. 비를 맞으면서 일하는 게 쉬워요, 놀러 가는 게 쉬워요?”

“노는 게 쉬워요.”

“그래요. 비를 맞고 농사도 짓는데 소풍 갈 때 비 오는 게 뭐가 큰 문제겠어요. 또 비 맞으면서까지 소풍을 안 가도 되잖아요.”

“그림을 안 그려도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게 앞서 가지 말고요.(웃음) 농부는 비가 와도 일을 할 수밖에 없잖아요. 소풍은 비를 맞으면서까지 갈 필요는 없죠. 비를 맞으면서 소풍을 가더라도 일하는 사람보다는 쉽습니다. 소풍 가는 사람은 비를 맞으면서 가든지, 비가 오니까 안 가든지 그게 괴로울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소풍 가는 날 비가 오면 짜증을 내죠. 인생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다 될 수가 없어요.


남편은 직장을 다니다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퇴사를 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 그림을 사람들이 다 알아주면 좋겠고, 그 분야에 최고가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잖아요. 정치하는 사람은 다 자기가 대통령이 되고 싶고, 연기하는 사람은 다 자기가 최고 인기 연예인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잖아요. 그렇게 안 되면 실패한 걸까요? 아니에요. 남편이 아무리 그림을 그리고 싶어도 아내도 수입이 없고, 부모님도 수입이 없으면 자기는 그림을 그려야 돼요, 막노동이라도 해야 돼요?”

“막노동이라도 해야겠죠.”

“세상에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도 못 그리는 처지에 있는 사람도 있는데, 남편은 하고 싶은 대로 직장을 그만두고 그림만 그려도 되니까 엄청나게 좋은 조건에 있는 거예요. 거기에 더해서 본인이 그림을 그리면 세상이 다 알아주고 전시회에 초대도 받고 그림도 비싸게 팔리기를 원하는 겁니다. 이런 욕망은 끝이 없어요. 남편이 그림을 그려서 초대를 받으면 다행이고, 초대를 못 받아도 그만이에요. 이렇게 생각해 보면 괴로울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건 내 문제가 아니고 누구 문제예요? 남편 문제잖아요.

'우리 남편은 진짜 팔자 좋은 사람이다. 돈도 안 벌고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그림을 그리고, 놀고 싶으면 놀고, 저 인간이 뭐가 괴롭나. 웃기는 인간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괴로워한다면 남이 보기에는 질문자도 마찬가지예요. 남편은 그림을 그려도 아무도 안 알아주는데, 질문자는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돈을 벌잖아요. 남편보다 질문자의 처지가 낫습니다. 남편이 그림을 안 그리면 질문자 하고 비교를 안 할 텐데 그림을 그리다 보니까 자꾸 비교가 될 거 아니에요. 아내는 그림을 그려서 돈을 버는데 자기는 그림을 그려도 돈을 못 버는 거예요. 그러면 남편한테 열등의식이 생길까요, 안 생길까요?”

“분야가 달라서 그건 괜찮은 거 같아요.”

“분야가 달라도 남편 역시 성공하고 인정받고 싶을 거잖아요. 그게 마음대로 안 되니까 괴로운 거예요. 남편이 괴로워하는 게 이해가 돼요, 안 돼요?”

“너무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요.”

“그래요. ‘남편이 자기 뜻대로 안 돼서 괴로워하는구나’ 이렇게 이해하고 나는 내 인생을 살면 돼요. 그런 남편을 보고 또 내가 괴로워서 우울증에 걸리면 이건 남편 문제예요? 질문자 문제예요?”

“제 문제예요. 그런데 남편이 너무 오랫동안 반복해서 힘들어해요.”


“죽을 때까지 반복한다 한들 그게 뭐가 문제예요? 한 달이 오래예요, 1년이 오래예요, 10년이 오래예요, 100년이 오래예요? 아무리 길어도 100년은 반복을 못 할 거 아니에요? 100년 안에는 다 죽습니다. 긴 역사로 보면 100년은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남편이 이러면 이런 대로 저러면 저런 대로 두고, 남편을 고치려고 하지 마세요. 고쳐질 수가 없습니다. 남의 인생을 우리가 고쳐줄 수가 없어요. 저도 질문자한테 이렇게 말은 하지만 제가 질문자의 병을 고쳐줄 수는 없어요. 고치는 건 스스로 해야 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남편이 괴로우니까 나도 따라 계속 괴로워하면서 우울증 걸려서 사는 거예요. 지혜로운 사람은 남편이 괴로운 건 남편 문제고 나는 그런 남편을 두고도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왜 소풍 가는 날 비가 오냐고 짜증 내고 난리를 피우는 게 낫겠어요, 비가 오든 말든 소풍 갈지 안 갈지를 내가 결정하는 게 낫겠어요? 비 맞고 소풍을 가도 괜찮고, '노는데 비 맞아가면서 놀 게 뭐 있나? 취소!' 이래도 괜찮잖아요. 지금은 큰일이지만 10년쯤 지나서 돌아보면 그게 큰일이에요, 별일 아니에요?”

“별일 아니에요.”

“별일 아니죠. 10년 전에 제주도에 가려는데 아침에 공항에 도착하니 여권을 안 가지고 와서 비행기 못 탔어요. 지금 돌아보면 그게 뭐 큰일이에요? 10년 전에 제주도 갔으면 어떻고, 안 갔으면 뭐 어떻겠어요? 늘 순간순간은 문제입니다. 그런데 그 어떤 것도 지나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니에요. 바다에 파도 하나하나를 보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 같지만, 바다 전체로 보면 파도는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물이 출렁출렁할 뿐입니다.

남편이 죽었다고 해도 한 30년쯤 지나 보면 남편이 살았든 죽었든 별일 아니에요. 오히려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생겨서 잘 된 일일 수도 있어요. 그 처럼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그림을 그리는데 돈이 벌리든 안 벌리든 그게 별일이 아니에요. 나중에 남편이 잘 돼서 돈을 벌었다 해도 더 오래 보면 별일이 아닙니다. 안 됐다 해도 별일 아니에요. 이 세상에 큰일이 뭐가 있겠어요? 지금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전쟁 나면 처음엔 못 살 것 같지만 지금 전쟁 중에도 살아요, 안 살아요?”

“살고 있어요.”

“전쟁 중에도 젊은 사람들은 결혼을 할까요, 안 할까요?

“해요.”

“전쟁이 나기 전보다는 어려워도 전쟁이 나면 사람은 또 그런대로 살까요, 못 살까요?”

“그런대로 살아요.”

“북한에 지금 식량이 부족해서 사람이 굶어 죽기도 한다는 얘기 들었어요?”

“들었어요.”

“그런 중에도 아이들은 학교를 안 갈까요, 갈까요?”

“가요.”

“결혼도 할까요, 안 할까요?”

“해요.”

“장사를 못하게 해도 숨어서라도 장사를 할까요, 안 할까요?”

“하고 삽니다.”

“그러니까 어떤 상황 속에서도 사람은 다 살게 돼 있어요. 그런 처지에 놓인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자기 일이 큰일이에요, 작은 일이에요?”

“별일 아니에요.”

“아무 일도 아닌 걸로 애를 쓰고 우울증 약을 먹으면 제약회사랑 의사만 돈을 벌겠네요. 그러니 큰일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도박을 해서 재산을 탕진하고, 마약을 하고, 남을 두들겨 패고 이렇지는 않잖아요?”

“네.”


“질문자 집안에서 지금 일어나는 일은 별일은 아니에요. 다만 남편은 자기 원하는 대로 안 돼서 괴롭고, 질문자는 남편이 내 원하는 대로 안 돼서 괴로운 거예요. 여러분이 얘기할 때 제가 같이 울거나 찡그리지 않잖아요. 죽는다고 해도 저는 빙긋이 웃죠. 앞으로 한 4-50년 지나고 죽을 때가 됐을 때, 40년 전에 우리 남편이 어느 전시회 초대를 받았나, 안 받았나 그게 중요한 일이겠어요?”

“아닐 것 같아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별일 아니에요. 질문자가 남편을 고쳐서 편해지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남편이 돈은 못 벌어 오지만 집안에 해악은 안 끼치잖아요. 그 정도면 아주 우수한 남편이에요. 다른 사람 질문하는 것 좀 들어봐요. 집안에 돈을 탕진하는 사람도 많아요. 그것도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닌데 질문자 얘기는 더 별일 아닙니다. 핵심은 남편은 남편의 인생을 살고, 질문자는 그런 가운데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네, 스님 말씀을 듣고 이제는 남편이 그러거나 말거나 내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다짐을 하면 힘들어요. 다짐한 대로 안 되면 이제 본인을 또 문제 삼거든요. 그냥 '스님 말 듣고 보니 별 거 아니네' 그러고 탁 놓아버려야 해요. 이렇게 아무런 결심을 안 해야 인생이 편안해집니다. 제 말을 듣고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별일 아니네!' 그냥 이러고 말아요. 기억할 것도 없고 결심할 것도 없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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