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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Q&A 게시판

내가 했던 일을 모두 부정하는 후임자가 밉습니다

작성자자연|작성시간23.04.30|조회수51 목록 댓글 0


“화내지 않고, 방긋 웃고,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고, 이해하며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직장에서 대표직을 오랫동안 했습니다. 한 달 전에 후임자에게 17년을 해온 대표직을 인계해 주었습니다. 저는 법과 절차에 따라 하등의 하자 없이 꾸준히 일해왔습니다. 새로 대표가 되신 분은 제가 데리고 있던 직원이었습니다. 평소에 애정을 주었던 사람이라서 제가 출마하지 않고 그 사람을 밀어줬는데, 한 달 사이에 제가 이루었던 공과 적법하게 했던 일들을 전부 부정하고 틀렸다고 말합니다. 전임자가 했던 것을 거부함으로써 본인이 두각을 나타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하나의 인연으로 생각해서 미워하지 말고 사랑해야 할까요? 지금 그 사람이 보기도 싫고 상대하기도 싫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것을 사회에서는 ‘배신’이라고 표현합니다. 질문자는 지금 배신을 당한 거예요. (웃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이렇게도 말하죠. 그러나 인간의 심리를 분석해 보면 이 상황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상부의 명령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곳이 어디입니까?”

“군대입니다.”

“상하 관계가 명확해서 명령과 복종으로 운영되는 곳이 군대입니다. 그런데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쳐내는 쿠데타는 어디에서 많이 일어납니까?”

“군대입니다.”

“쿠데타는 군대에서 가장 많이 일어납니다. 명령과 복종이 있는 곳에는 인간의 심리가 억압이 되기 때문입니다. 북한 같은 나라에서 정권 교체가 일어난다면 쿠데타로 인한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쿠데타는 가장 가까운 심복 중에서 일으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죽을 때도 심복한테 죽지 않았습니까? 쿠데타를 일으킨 사람을 향해 많은 사람들이 ‘나쁜 놈이다’라고 비난하는데 그것이 일반적인 인간의 심리입니다. 가까이 있으면서 심리가 억압되면 저항을 하게 됩니다.

내 말을 가장 잘 듣고 따라서 믿고 일을 맡겼는데 갑자기 배신을 했다면, 나에게 잘 보이려고 ‘아니다’ 싶은 것까지 무조건 ‘예’ 하고 살다가 그 불만이 터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로서는 그 사람의 잘못이라고 생각이 될 수밖에 없고, 세상 윤리로 보면 나쁜 놈이라고 볼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심리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저 사람이 나하고 있을 때 심리가 좀 억압이 됐구나’ 이렇게 봐야 합니다.

옛날에도 새로 왕이 되면 전 왕인 아버지가 한 일에 대해 전부 부정하고 신하도 싹 바꿔버리곤 했습니다. 전 왕을 따르던 신하들은 새 왕을 아이 때부터 봐왔기 때문에 왕으로서 추앙을 안 합니다. 같이 맞먹으려고 하거나 어린애로 봅니다. 그래서 전 왕의 신하 중에서 자기를 도와줄 한두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숙청을 합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역사가 그랬습니다.

질문자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배신을 당한 것 같겠지만, 대표직을 17년 동안 했다면 너무 오래 한 거예요. (웃음) 새로 대표가 된 사람이 전임자가 했던 일을 계속 따라 하면 그 사람은 전임자의 아바타 또는 대리인에 불과해지는 겁니다. 전임자의 그늘을 먼저 걷어내야 실질적인 대표가 되는 거예요. 이것이 권력의 속성입니다. 이런 심리를 알면 하나도 억울할 게 없어요. 이것이 인간 세상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과거의 흔적을 지워야 자신의 입지를 굳힐 수 있습니다. 지금 정치도 한번 보세요. 과거 정부의 성과를 모두 부정해 버리기가 쉽습니다. 굳이 정쟁으로 싸워서 앙숙이 된 사람들이 아니라고 해도 과거 정부의 성과를 쳐내야 자신의 당 내에 지지 기반을 확보할 수가 있거든요. 인간적으로 보면 문제라고 볼 수 있지만 권력의 속성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보통 친구지간에는 친구가 시장을 하다가 다음 선거에서 떨어졌다 해도 친구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부조도 합니다. 그런데 내가 경찰서장으로 있을 때 복종했던 사람들은 내가 경찰서장을 그만두게 되면 내 아들이 결혼할 때 아무도 안 옵니다. 그러면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게 되죠. 그런데 그게 당연한 것입니다. 그들이 나에게 복종한 것은 내가 아니라 직위였기 때문에 직위가 없으니 당연히 따르지 않지요.

그러니 질문자의 상황은 하나도 억울한 일이 아니에요. 그렇다고 잘했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게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인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도 자기가 대표가 됐으니까 자신의 자리를 잡으려고 저러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좋아요.

또한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대표가 됐으니까 그 사람 마음대로 할 권리가 있습니다. 법에 어긋나지 않으면 됩니다. 질문자는 대표직을 떠났으니까 그가 어떻게 하든 관여를 하지 말아야 해요. ‘내가 일군 성과를 다 부정해 버리네’ 이렇게 생각하면 질문자만 잠을 못 자게 되는 겁니다.

정토회도 마찬가지예요. 스님이 죽고 다른 사람이 대표가 되면, 그 사람이 스님의 성과를 이어갈 수도 있고, 많은 부분을 바꿔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의 성과가 자신한테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어갈 것이고, 그동안의 성과를 바꿔버리는 게 자신한테 유리하다고 생각하면 바꿉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했던 일이라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신임 대표는 예전에 질문자가 이룩한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겁니다. 17년을 하셨으면 정말 많이 했어요. 그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이 자신의 성과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특별히 질문자를 미워하거나 나쁘게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첫째, 질문자는 ‘내가 너무 오래 했구나’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둘째, ‘내가 대표를 할 때 저 친구가 내 눈치를 보고 일을 했구나’ 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뭐든지 의논하고 친구처럼 합의해서 일을 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항상 명령하고 복종하는 식으로 일을 하면 이런 일이 생깁니다. 그런데 지금 억울해하면 질문자만 손해입니다. 질문자만 잠 못 자고 괴롭습니다. 그것은 아무런 해결책도 안 되고 도움도 안 됩니다. 오히려 ‘인간 심리의 속성이 그렇구나’, ‘내가 너무 오래 했구나’ 이렇게 이해해야 합니다.

어떤 일도 오래 하면 항상 이런 일이 생깁니다. 질문자가 4년을 하다가 그만뒀으면 이런 일이 안 생깁니다. 새로운 사람은 전임자의 그늘을 걷어낼 필요가 별로 없으니까요. 권력이라는 게 원래 그렇습니다. 그러니 섭섭해하지 마시고 ‘인간 세상이 이렇구나’ 하고 이해하는 경험으로 삼으시면 좋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꾸준히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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