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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Q&A 게시판

어떻게 하면 긴장하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작성자자연|작성시간23.06.13|조회수5 목록 댓글 0

어떻게 하면 긴장하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In my job, I speak to many many people and I struggle a bit with the mind and body connection in practice. I find myself making judgments of others or, when anticipating difficulties, tension builds in my body. I then intellectualise that tension through an internal monologue and, in doing so, I am criticising myself. The tension in the body results in agitation and unskillful expressions. In your book, A taste of Enlightenment, it is written that Enlightenment means living without making anything into a problem no matter what happens. Is this a learned intellectual process or a felt experience? Thank you.”
(저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직업을 가지고 있고, 실생활에서 몸과 마음을 연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타인에 대해 판단하거나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몸에 긴장감이 생기는 걸 느낍니다. 그럴 때는 제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내가 긴장하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데, 이 과정에서 저 자신을 비난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몸의 긴장은 감정의 동요로 나타나거나 서툰 표현으로 이어집니다. 스님의 책 ‘지금 여기 깨어 있기’에는 깨달음이란 무슨 일이 있어도 문제 삼지 않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것은 배워서 알게 되는 건가요, 아니면 직접 경험해야 하는 건가요?)

“그렇게 책을 보고 아는 것은 지적인 앎입니다. 아직 지적인 앎에 멈추어 있기 때문에 현실에서 체험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머릿속에서만 아는 게 아니라 그 내용을 자기가 직접 체험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런 긴장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 질문자는 ‘제가 긴장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이 긴장을 풀 수 있습니까?’ 이렇게 질문을 하고 있는데, 이런 관점을 갖지 말고 왜 긴장하는지 긴장의 원인을 찾는 게 필요합니다. 이미 긴장해 버린 뒤에 ‘어떻게 긴장을 풀 것인가’ 하고 접근하는 것은 병이 난 뒤에 치료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치료는 계속 재발하고, 또 치료도 잘 안 됩니다. 오히려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그 원인을 제거해야 병도 낫고 재발도 적게 합니다.

앞으로 긴장을 할 때마다 ‘지금 왜 이렇게 긴장하지?’ 이렇게 자기 자신한테 물어보세요. ‘긴장을 안 해야지!’ 이렇게 결심하지 말고 ‘왜 긴장하지?’ 하고 긴장하는 원인을 찾아보는 겁니다. 내가 긴장하는 것을 인정하되 왜 긴장을 하는지 자기한테 되물어봐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긴장해야 하는 법은 없습니다. 보통은 많은 사람들 앞에 서거나, 나보다 높은 사람과 이야기를 하거나, 내가 어떤 이익을 두고 브리핑을 하는 경우에 긴장을 많이 하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잘 보이고 싶기 때문입니다. 잘 보이고 싶은 욕구 때문에 긴장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나를 잘 봐주는 건 내가 하는 거예요, 상대편이 하는 거예요?”

“상대편이 하는 겁니다.”


“그러니 상대편에게 잘 보이는 것은 나의 권한이 아니에요. 그들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데 그걸 내가 좌지우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긴장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들의 권리는 그들에게 맡겨두세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하면 되지만, 나를 잘 봐주고 안 봐주는 것은 그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내가 그들에 의해 좌지우지됩니다. 그러니 나는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그들에게 맡겨야 합니다. 평가는 그들이 하는 것이니까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나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그냥 그들의 평가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설령 내가 원하는 결과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이면 돼요.

긴장을 할 때마다 ‘긴장을 안 해야지!’ 이렇게 힘주지 말고 ‘왜 긴장하지?’ 하고 자신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말하는데 왜 긴장하지?’, ‘사람들 앞에 섰는데 왜 긴장하지?’ 이렇게 자신한테 되물어야 해요. 긴장을 할 때는 뭔가 원인이 있어서 긴장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되물어보는 관점을 가지면 훨씬 좋아질 거예요.

이렇게 자기 스스로 탐구를 해서 ‘잘 보이려고 긴장을 하는구나’ 하고 알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잘 보여서 뭐 할래?’ 하고 또다시 자신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우선은 ‘나를 잘 봐주세요’ 요구한다고 해서 상대가 나를 잘 봐주는지 살펴봐야 해요. 그걸 내가 결정하는지 상대방이 결정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결국 그들이 결정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면 그들의 일에 대해 내가 관여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원인을 규명해서 내가 관여할 수 없는 일을 내려놓으면 훨씬 좋아집니다.


굳이 참거나 긴장하지 않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어요. ‘명상만이 방법인가?’ 이런 생각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항상 이런 긴장감이 일어날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원인을 규명해 나가야 합니다. 감정을 알아차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원인을 발견하는 것을 꾸준히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입니다. 붓다가 깨달음을 얻고 가장 먼저 설법한 내용도 바로 이것입니다. 고집멸도(苦集滅道)라고 하는 사성제에 대해 배웠죠?

긴장할 때는 먼저 이것이 괴로움인 줄 알아야 합니다(苦). 그런 후 ‘왜 긴장하지?’ 하고 괴로움의 원인을 규명해야 합니다(集). 원인을 규명해 보면 ‘긴장할 일이 아니네’ 하고 알게 됩니다. 그것이 괴로움의 소멸입니다(滅). 원인을 규명해서 괴로움이 소멸했다고 해도 다음에 또 괴로움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늘 자기에게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괴로움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길입니다(道). 이렇게 사성제를 실제 생활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첫째, ‘긴장하네’ 하고 아는 것이 고성제입니다.
둘째, ‘왜 긴장하지?’ 하고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집성제입니다. 이것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물어야 근본 원인을 규명할 수 있습니다.
셋째, 그러다 보면 ‘긴장할 일이 아니네’ 하고 멸성제를 발견하게 됩니다.
넷째, 다음에 재발하지 않으려면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이 도성제입니다. 재발하지 않도록 하려면 여덟 가지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팔정도(八正道)입니다.


이처럼 붓다의 가르침은 삶에 바로 적용되는 것이지, 삶을 떠나서 별도로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붓다의 가르침을 중도, 사성제, 팔정도 이렇게 분류해서 그 의미를 아는 것은 지식에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이런 지식도 필요하지만, 지식을 쌓는 것이 수행은 아닙니다. 수행은 실제 삶에서 체험하는 것입니다. 긴장을 할 때마다 ‘내가 왜 긴장하지?’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이 한 가지만 해봐도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것입니다.”

“Thank you very much for that excellent insight, thank you.”
(훌륭한 통찰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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