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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Q&A 게시판

빨리빨리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어떻게 없앨 수 있을까요?

작성자자연|작성시간23.07.20|조회수10 목록 댓글 0


“저는 지난 50년간 현장에서 일을 해왔습니다. 긴 시간 동안 현장 생활을 해서인지 무엇이든 빨리빨리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도 무의식적으로 빨리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일어납니다. 어떻게 하면 여유로운 마음으로 행복한 노년기를 보낼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냥 살던 모습 그대로 살아도 됩니다. 저도 일하는 속도가 빠른 편이에요. 동작을 빨리빨리 한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몸은 빠르게 움직이되 마음은 여유를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약 질문자가 자신의 속도를 기준으로 해서 다른 사람이 빠르지 않다고 짜증을 내거나 성질을 낸다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인이 빨리빨리 하는 것 자체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남방불교의 위빠사나(Vipassana) 수행법은 동작을 천천히 하면서 알아차림을 유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방불교 스님들 대부분이 동작을 천천히 합니다. 그런데 선불교의 참선(參禪) 수행법은 조금 다릅니다. 선불교는 칼과 칼이 부딪치는 전쟁터에서도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그래서 빨리빨리 움직이는 속에서도 마음이 조급해지지 않도록 수행합니다. 남방불교의 수행법 중에는 ‘포행(布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천천히 걸으면서 발의 감각과 몸의 동작을 알아차리는 수행법입니다. 선불교에서도 포행을 합니다. 그러나 선불교에서는 천천히 움직일 때뿐만 아니라 빨리빨리 움직이면서도 동작을 알아차리고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연습도 함께 합니다.

빨리빨리 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마음이 조급한 것은 문제예요. 동작이 빠른 것은 문제가 아니지만 마음이 늘 쫓기듯이 바쁘다면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은 동작이 빠른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욕심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동작보다 앞서가기 때문에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는 겁니다. 선불교에서는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자신의 발밑을 살피라는 뜻입니다. 절에서는 항상 자신의 발밑을 살펴서 신발을 가지런히 벗도록 되어 있습니다. 신발을 벗을 때 발의 동작에 깨어있어야 신발을 가지런하게 벗어 놓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발을 벗는 동작에 깨어있지 못하고 몸보다 마음이 먼저 방안에 가버리면 신발이 흐트러지게 됩니다. 사람들이 벗어 놓은 신발을 누군가가 모양이 좋게 가지런하게 놓는 것이 절의 규칙이 아닙니다. 신발을 벗을 때 발의 동작에 깨어있는 것이 핵심입니다.

정리 정돈을 하는 일도 마찬가지예요. 누군가가 모양이 좋게 물건을 배치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물건을 쓰고 제자리에 가져다 놓을 때 깨어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걸레를 사용했으면 빨아서 원래의 자리에 가져다 놓는 것이 중요해요. 항상 자신의 삶에 깨어있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조급하면 깨어있지 못하게 됩니다. 마음이 조급해지는 이유는 욕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동작을 빨리빨리 하면서도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으면 됩니다. 꼭 천천히 행동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에요. 빨리빨리 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조급하다면 마음을 살피라는 겁니다. 또한 질문자가 빠르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느리다고 짜증을 내서는 안 됩니다. 질문자가 천천히 여유 있게 살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살면 됩니다. 연세가 많으시니까 이제는 아무 일도 안 해도 됩니다. 그 말은 일을 새로 벌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아무 일도 벌이지 말고 그저 아내가 밥을 해주면 감사히 먹고, 아내가 밥을 안 해주면 내가 밥을 해서 먹고, 내 방은 내가 청소하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안 한다는 관점을 딱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관점을 가지면 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모든 걸 쉬어버리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명상이에요. 7월 말에 정토회에서 진행하는 명상수련이 있으니까 신청하셔서 명상을 한 번 해보세요. 4박 5일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수련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막상 명상을 해보면 지금까지 살아온 습관 때문에 계속 몸이 꼼지락꼼지락 움직이고, 자꾸 이 생각 저 생각이 일어납니다. 목표는 생각도 안 하고 움직이지도 않는 것인데, 현실은 계속 생각이 일어나고 움직임이 생깁니다. 그걸 경험하면 ‘내가 그동안 조급하게 살았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5일 동안 아무리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이지 않고, 온갖 생각이 일어나도 그것에 의미 부여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 보는 겁니다. 이런 연습을 자꾸 하면, 일이 있으면 있어서 좋고, 일이 없으면 없어서 좋은 경지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일이 없으면 심심하다고 불평하고, 일이 많으면 바쁘다고 불평하잖아요. 일이 있으면 운동 삼아 일해서 좋고, 일이 없으면 한가하게 놀수 있어서 좋습니다.

질문자는 놀 줄 모른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노래하고 춤추고 술 마시는 것을 뜻한다면 그런 것은 안 하는 게 건강에 더 좋습니다. 굳이 그렇게 놀 필요는 없어요. 그 말이 혹시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을 뜻한다면 가만히 있는 연습을 좀 해봐야 됩니다.

소가 목장에서 풀을 뜯을 때 바쁘게 풀을 뜯습니까? 천천히 풀을 뜯습니다. 소는 풀을 다 먹고 나면 배가 불러서 풀밭에 떠억 누워 있습니다. 파리가 날아오면 꼬리로 파리를 쫓으면서 한가하게 앉아있죠. 소가 게을러서 그런 겁니까? 소가 심심해 하고 있는 겁니까? 아니에요. 소는 아무리 누워있어도 심심하지 않습니다. 소는 풀을 뜯어도 바쁘지 않고, 누워있어도 게으르지도 않고, 그냥 배가 고프면 풀을 뜯고, 배가 부르면 누워있는 겁니다. 풀을 뜯을 때도 한가하고, 누워있을 때도 한가해요. 우리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런저런 일이 많이 닥쳐도 마음은 한가해야 합니다. 동작은 빠르더라도 마음은 쫓기지 않고 한가해야 돼요. 아무 할 일이 없어도 지루하지 않아야 합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잘 안 될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는 것을 목표로 한 번 지내보세요.

그리고 연세가 많으시니까 이제는 일을 쉬어야 됩니다. 자꾸 일을 만들면 안 돼요. 일이 쉬어지지 않는다면 쉬는 연습을 자꾸 해봐야 합니다. 안 쉬어지면 안 쉬어지는 대로 계속 일을 해도 되지만, 대신에 일을 하고 나서 힘들다는 불평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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