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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Q&A 게시판

이해는 누구 좋으라고

작성자자연|작성시간23.09.06|조회수11 목록 댓글 0

독일에 이민을 와서 학교 적응이 힘듭니다

“저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중국에서 다녔고, 고등학생이 된 다음 독일로 이민을 왔습니다. 엄마에게 계속 끌려다니다 보니까 한국에 너무 가고 싶고, 학교도 다니기 싫고, 적응도 안 되고, 언어도 다시 배워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맨날 쫓기는 악몽을 꿉니다. 너무 힘들어서 오늘 스님께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어떡하면 좋을까요?”

“질문자는 몇 살이에요?”

“만 열일곱 살이에요.”

“독일에서는 성년이 몇 살부터예요?”

“만 열여덟부터예요.”


“그러면 질문자가 성년이 되려면 아직 1년이 남았네요. 1년 동안은 찍소리 하지 말고 엄마가 하자는 대로 따라 하고, 1년 뒤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됩니다. 내년부터는 성년이 되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어떻게 생각해요? 1년도 못 견디겠어요?”

“...”

“앞으로 90살까지 산다고 생각하면 이제 남은 70년 동안은 자유롭게 내 마음대로 하고 살 수 있는데, 앞으로 1년 동안만 엄마 말을 들으면 됩니다. 만약 1년도 못 견디겠다 싶으면 지금이라도 엄마로부터의 모든 지원을 끊고 독립을 선언하면 돼요.”

“네, 감사합니다.”

“어떻게 할 거예요? 1년 있다가 독립을 선언할 거예요, 지금 당장 독립을 선언할 거예요?”

“사실 저는 엄마와의 관계 때문에 고민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학교생활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이 고민입니다.”

“학교생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뭐가 있어요?”

“적응이 안 돼요.”

“왜 적응이 안 돼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응이 안 되는지 이야기를 해봐요.”

“일단 언어 때문에 어려워요.”

“이 나라에 처음 왔는데 어떻게 말을 잘할 수가 있습니까. 못하는 게 너무 당연하죠.”

“너무 당연한데도 불구하고 학교에서는 이런 저를 이해해주지 않아요.”

“이해를 안 해주면 어때요?”

“그래서 힘듭니다.”


“상대방이 이해를 못 하면 상대방이 힘들지 질문자가 힘들 게 뭐가 있어요? 제가 앞니가 조금 튀어나왔잖아요. 예전에 법문을 들으러 온 사람이 제 앞니가 보기 싫었는지 ‘스님, 이빨 교정을 조금 하셔야겠어요’ 하고 말하기에 제가 ‘누구 좋으라고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웃음)

저한테는 저의 앞니가 안 보입니다. 그런데 왜 제가 교정을 해요? 저한테는 앞니가 어떻게 생겼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음식을 잘 씹을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음식을 씹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으면 저한테는 앞니가 문제가 안 돼요. 그런데 그걸 보는 상대방이 불편한 거잖아요. 그래서 제가 ‘당신이 보기 싫으면 당신이 돈을 내라’ 이랬더니 자기가 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빨을 교정하는 데 기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물어보니까 1년 동안은 철사로 묶어놓고 지내야 된대요. 그렇게 지내는 게 얼마나 불편한 일입니까? 그래서 제가 그 불편을 감수하는 보상비도 내라고 했더니 그건 안 준대요. 결국 교정을 안 하게 되었거든요. (웃음)


그것처럼 학교에서 누가 질문자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 사람이 답답하지 질문자가 답답할 일이 없어요. 답답함을 느낄 때 어떤지 가만히 살펴보세요. ‘저 사람은 왜 저래?’, ‘어떻게 저런 사람이 다 있어?’ 이렇게 내가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면 내가 답답해요, 상대방이 답답해요?”

“내가 답답해요.”

“내가 답답합니다. 그런데 ‘아, 그 사람이 그래서 그랬구나’ 이렇게 상대방을 이해하고 나면 누구 가슴이 시원해요?”

“내 가슴이 시원해요.”

“남을 이해하지 못하면 내가 답답하고, 남을 이해하면 내가 좋은 거예요. 나에게 좋기 때문에 남을 이해하라고 하는 겁니다. 지금 제가 하는 이 말도 누구 좋으라고 하는 겁니까?”

“나 좋으라고요.”

“다 나 좋으라고 하는 얘기예요. 여기 꽃 한 송이가 있습니다. 꽃을 보면서 ‘이야! 꽃이 참 예쁘네’ 이러면 꽃이 좋아요, 내가 좋아요?”

“꽃이 좋아요.”

“정말 그렇습니까? 다시 질문해 볼게요. 바다에 가서 ‘이야! 바다가 참 예쁘네’ 이러면 바다가 좋아요, 내가 좋아요?”

“내가 좋아요.”

“산을 보고 ‘이야! 산이 진짜 예쁘다’ 이러면 산이 좋아요, 내가 좋아요?”

“내가 좋습니다.”


“꽃을 보고 ‘이야, 꽃이 참 예쁘다’ 이러면 꽃이 좋아요, 내가 좋아요?”

“그때는 꽃이 좋을 것 같아요.” (모두 웃음)

“대답하는 걸 보니 수준이 좀 모자라서 자립을 하기는 어렵겠어요. (웃음) 내가 꽃이 예쁘다고 말한다고 해서 그걸 꽃이 어떻게 알아들어요? 그러니 꽃을 좋아하는 마음을 내는 내가 좋은 거예요. ‘당신 사랑해’ 하면 상대방이 좋을까요, 내가 좋을까요?”

“내가 좋아요.”

“방금 법륜 스님이 들어올 때 박수를 치면 법륜 스님이 좋을까요, 여러분이 좋을까요?”

“저희가 좋아요.”

“여러분이 좋은 거예요. 좋아하는 마음을 내면 결국 내가 좋은 거예요. 예를 들어, ‘당신 사랑해’ 하면서 상대를 껴안았다고 합시다. 상대방을 사랑하면 내가 좋은 것이지, 상대방도 좋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상대가 나를 안 좋아할 때, 내가 좋다고 무턱대고 상대를 껴안으면 오히려 상대방한테 고통이 됩니다. 그게 곧 성추행이에요. 내가 상대를 사랑하는 것은 나에게 좋은 일이지, 상대방도 좋을 것이라는 아무런 보장이 없습니다. 실제로 상대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는 행동은 상대에게 고통으로 다가갈 때가 많아요.

예수님이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세상 사람들을 위해 살라는 뜻일까요? 나에게 좋은 삶을 살라는 뜻일까요? 나에게 좋은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나에게 좋은 삶을 살려면 내가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내가 속 편안하게 살려면 내가 세상 사람들을 이해해야지, 세상 사람들이 나를 이해해야 하는 게 아닙니다.


선생님이나 학교 친구들이 질문자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들이 답답할 일이지, 질문자 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에요. 자기들이 답답해서 죽든지 말든지 그건 그들의 일이에요. 그냥 나는 내 입장에서 ‘내가 말을 잘 못하니까 저런 반응을 보이는구나’ 하고 그들을 이해하면 됩니다. 그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입니다.

질문자가 ‘나를 이해해 주세요’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은 노예근성이에요. 상대의 이해를 구걸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에게 돈 좀 주세요’ 하는 것이나 ‘나 좀 잘 봐주세요’ 하는 것이나 모두 상대방에게 구걸하는 행위예요. 뭐가 부족해서 인생을 구걸하면서 살아요? 내가 먼저 사랑하고, 내가 먼저 도와주고, 내가 먼저 베풀어주고, 내가 먼저 이해해 주는 것이 주인의 삶입니다.

독일에 온 지 1년밖에 안 됐으면 독일어를 잘 못하는 것이 너무 당연해요. 그러니 아는 만큼 말하고,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다른 건 또 뭐가 문제예요?”

“그것 말고는 다 괜찮아요. 고민이 해결됐어요. 이제 내일부터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열심히 하면 안 돼요. 게임을 집중해서 하고 있을 때 옆에서 사람들이 그걸 보고 게임을 열심히 한다는 말을 할까요?”

“그런 말을 안 해요.”

“그런데 하기 싫은 공부를 앉아서 계속하고 있으면, 옆에서 사람들이 그걸 보고 ‘열심히 한다’ 이렇게 말해요.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는 열심히 한다는 말을 안 하고 집중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열심히 하면 안 돼요. 열심히 한다는 것은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힘든 이유는 열심히 하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인생이 힘들지 않은 이유가 여러분처럼 열심히 안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무슨 일을 해도 놀기 삼아 합니다. 강연도 이렇게 놀기 삼아 하기 때문에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지금도 저는 여기서 여러분과 노는 거예요.

그것처럼 질문자도 학교 가서 그냥 놀아요. 학교 가서 놀라는 말은 공부를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공부도 놀이 삼아서 하고, 운동도 놀이 삼아서 하고, 독일어를 배우는 것도 놀이 삼아서 하는 겁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됩니다. 그것도 모르냐고 핀잔을 주면 ‘여기에 처음 왔는데 그걸 어떻게 아냐? 너는 처음부터 다 잘했냐?’ 하고 말하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지금 독립할 거예요, 1년 후에 독립할 거예요?”

“1년 후에 독립하겠습니다.”

“그러면 1년 동안은 딴소리를 하면 안 돼요. 1년 후에는 성인이 되니까 엄마 말을 들을지 말지 내가 선택하면 됩니다. 1년 후에는 엄마와 계약 관계를 맺게 되는 거예요. 엄마로부터 지원을 받으면 지원받은 것에 대해서는 간섭을 받아야 합니다. 회사에 취직을 하면 월급을 받는 대신 회사의 지시 사항을 따라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엄마이기 때문에 말을 듣는 게 아닙니다. 1년 후부터는 성인과 성인 사이의 계약 관계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밥을 얻어먹거나, 방을 얻어서 지내거나, 학비를 지원받게 되거나 하면, 그에 상응하는 엄마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엄마의 말을 들어야 할 의무가 있어서 듣는 게 아니라 계약 관계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지원을 받으려면 말을 좀 들어야 하고, 말을 안 들을 거면 지원을 받지 않고 집에서 나가면 됩니다. 만약 스님이 질문자한테 장학금을 주면 장학금을 받는 만큼 스님의 눈치를 보면서 공부를 해야 될까요, 공부를 안 해도 될까요?”

“공부를 해야 됩니다.”

“그래요. 이런 관계를 계약 관계라고 합니다. 지금은 엄마가 미성년자인 질문자를 돌봐야 할 책임이 있고, 대신 질문자는 보호자의 말을 들어야 할 의무가 있는 거예요. 그러나 1년이 지나면 그 관계는 끝이 나고, 이제는 성인과 성인 사이의 계약 관계가 됩니다.

내년에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려면 그 대신 먹고 입고 자는 것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독립을 해야 합니다. 엄마로부터 후원을 받으면 후원을 받는 만큼은 간섭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하고 싶으면 아무런 후원을 받지 말아야 해요. 후원해 주는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 기대가 있어서 후원해 주는 겁니다. 그러니 후원을 받을 때는 그만큼 그 사람의 말을 들어야 해요.”

“네, 감사합니다.”


“질문자는 어릴 때 중국에서 지냈고, 지금은 독일에서 지내니까, 아직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한국말, 중국말, 독일말은 할 줄 알겠네요. 3개 국어를 하는 사람이 독일에서 태어나서 평생 독일어만 한 사람만큼 독일어를 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어요.”

“3개 국어를 하는 사람이 중국에서 평생 중국어만 한 사람만큼 중국어를 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없어요.”

“그리고 질문자는 한국에서 평생 한국어만 한 친구들보다는 한국어가 부족할 겁니다. 한 개의 우물을 파면 조금 깊이 팔 수 있습니다. 대신 여러 개의 우물을 파면 한 개의 우물을 파는 것보다 얕게 팔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진실이에요. 그런 것처럼 내가 한국말도 한국 사람보다 못하고, 중국말도 중국 사람보다 못하고, 독일말도 독일 사람보다 못한다고 열등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나는 여러 가지 언어를 하기 때문에 한 가지 언어만 하는 사람보다는 깊이가 약할 수밖에 없어요. 이걸 사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니 독일어를 잘 못하는 걸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건 당연한 거예요. 그러나 앞으로 독일에서 10년, 20년 지내면 독일 사람들만큼은 아니어도 비슷한 수준이 될 겁니다. 시간이 좀 필요한 겁니다. 자전거를 처음 타는 사람이 어떻게 한 번에 잘 탈 수 있겠어요. 처음에는 넘어지면서 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넘어지는 것이 곧 타지는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지금 서투른 것이 곧 익숙해지는 길입니다. 서투름을 거쳐서 익숙해지는 것이지 어떤 사람도 서투름을 거치지 않고 익숙해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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