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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에 대한 불신으로 연애할 때마다 불안감이 커집니다

작성자자연|작성시간23.11.08|조회수29 목록 댓글 0

남자에 대한 불신으로 연애할 때마다 불안감이 커집니다

“My question is about relationships. I have a hard time trusting men because my dad had affairs when I was a child. As a result, I've become pretty certain that I don't want to get married, as I subconsciously think that marriage leads to misery. However, because I'm human, I still want to date and be in love. But whenever I get into relationships, I find that I become very anxious and worried about whether I can trust the person. Instead of enjoying the beginning and feeling like I'm in love, I just feel more anxious. I think this anxiety comes from wanting to protect myself and avoid getting hurt for any reason. I'm not sure if I can truly open up and enjoy relationships without feeling constantly on edge and anxious.”
(제 질문은 관계에 관한 질문입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바람을 피웠기 때문에 남자를 신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결혼은 불행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하지만 저는 인간이어서 여전히 데이트하고 사랑하고 싶어요. 하지만 연애를 할 때마다 그 사람을 믿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이 커지는 것을 느낍니다. 연애의 시작을 즐기고 사랑에 빠졌다는 기분이 들기보다는 불안감이 더 큽니다. 이런 불안은 어떤 이유에서든 상처받지 않고 스스로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 같아요. 제가 긴장하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진정으로 마음을 열고 관계를 즐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옳고 그름이라고 하는 것은 나의 기준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태어났을 때부터 한 남자와 여러 여자가 결혼하는 일부다처제 사회에서 자랐다면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반대로 여성이 한 명이고 남편이 여럿인 사회에서 자랐다면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또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자랐다면 그 사람에게는 여성이 남성에게 순종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또 남녀가 평등한 사회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한국말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영어를 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우리들의 정신 작용은 마치 컴퓨터의 소프트웨어와 같아서 어떤 정보를 입력하느냐, 어떤 앱을 까느냐에 따라서 그 작용이 달라집니다.


질문자가 ‘나를 만나는 남자는 나만 만나야 한다.’하는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꾸 불안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는 나만 만나야 돼’ 하고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을 만나도 상관없어’하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생각이지, 상대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안 줍니다. ‘나만 만나야 돼’라는 기준을 가지고 있을 때 나만 만나면 다행인데,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면 내가 그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만나도 상관없어’ 이렇게 기준을 두면 그 사람이 나만 만나도 괜찮고, 다른 사람을 만나도 괜찮습니다. 그러니 ‘나만 만나야 돼’ 하는 내 기준에 맞게 상대를 가두어 놓을 것인지, 아니면 내 기준을 버릴 것인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어떤 것이 나를 더 자유롭게 하는지 살펴보고 선택하면 돼요.

상대를 내 기준에 맞추려면 많은 힘이 듭니다. 선택하는 것에도 힘이 들고, 그 기준에 가두어 놓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또한 상대가 내 기준에서 벗어나게 되면 굉장히 상처받게 됩니다. 상처받지 않으려면 내가 내 기준을 놓아버리면 됩니다. ‘상대가 어떻게 하든 그의 자유이다.’ 이렇게 받아들이는 겁니다. 그의 행동에 따라 나도 선택을 하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 나는 아무런 애도 쓰지 않게 되고, 괴로울 일도 없습니다.

질문자가 어릴 때 엄마로부터 아빠가 부정한 행동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질문자에게는 어떤 트라우마가 자리를 잡게 된 겁니다. 그래서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내가 어떻게 정신적으로 자유로워지느냐에 대한 것이지,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버느냐, 지위가 높아지느냐, 이런 것을 논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어떤 마음 자세를 가질 때 괴로움 없이 살 수 있느냐를 논해야지 상대를 어떻게 하겠다고 논하는 것은 붓다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나를 위해서 상대가 어떻게 해야 된다고 말한다면 그는 아직 자립을 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나는 주인이고, 나는 자유인이고, 나는 붓다이기 때문에 내가 남을 위해서 배려해야 합니다. ‘배려받고 싶다’ 하는 생각은 어린애 같은 생각입니다. 그것은 수행자의 길이 아닙니다.


첫째, 질문자에게는 어릴 때 어머니가 입은 피해를 듣고 형성된 피해의식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둘째, 질문자는 아직 자유인이 되지 못하고 어린애처럼 누군가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마음이 근저에 깔려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상대가 나를 좋아할 때 나도 좋으면 같이 좋아하면 되고, 상대가 나를 좋아해도 내가 싫으면 싫다고 하면 되고, 상대가 나를 좋아하다가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의 자유니까 ‘오케이’ 하면 됩니다. 왜 자유를 원하면서 자꾸 자신과 남을 속박하려고 합니까?”

“I think I learned something valuable today about my value system and the trauma. I've realized that it's important to remind myself that there's no right or wrong, but it's just my own expectations. I learned something very valuable.”
(오늘 제 가치 체계와 트라우마에 대해 귀중한 것을 배운 것 같아요. 옳고 그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기대치일 뿐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매우 귀중한 것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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