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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Q&A 게시판

남편은 자살하고, 아들은 백혈병으로 죽고, 저는 어떻게 살아야죠?

작성자자연|작성시간23.12.18|조회수33 목록 댓글 0

남편은 자살하고, 아들은 백혈병으로 죽고, 저는 어떻게 살아야죠?

“제가 최근 3년 동안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가족의 아픔과 슬픔을 한꺼번에 겪게 되면서 너무도 참담합니다. 남편이 스스로 목숨을 내려놓은 후 아이들 셋을 잘 키우면서 지내 보내겠다고 열심히 달려왔지만 그 생활도 잠시였습니다. 아들이 갑자기 급성 백혈병을 진단받아서 하루도 채 안 되어 의식을 잃어서 17일 동안 투병을 한 뒤 제 곁을 떠났습니다. 이로 인한 상실감과 억울함은 이루 말할 수 없고요. 너무나 이 세상이 억울합니다. 현재 남은 두 딸을 어떻게 키우면서 견뎌야 할까요? 제가 어떻게 두 딸에게 좋은 에너지를 줄 수 있을까요?”


“남편을 잃고 나서 자식까지 죽고,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마음의 상처가 매우 큰 상태인 것 같아요. 지금은 누가 어떤 말로 위로한다고 해서 그 아픔이 해소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왕 질문을 하셨으니 경전에 있는 옛날 얘기를 하나 해보겠습니다.

옛날에 아주 부잣집 처녀가 있었는데 경제적으로 가난한 것만 문제가 아니라 신분이 낮은 집 총각과 눈이 맞아 연애를 하게 됐습니다. 그 당시 사회적 조건에서는 결혼을 할 수가 없었어요. 부모님이 결코 결혼을 승낙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서로가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몰래 집을 떠나서 먼 곳으로 가서 결혼해 살았습니다. 그러다 아이를 하나 낳고, 아이가 세 살이 될 무렵 또 아이를 하나 갖게 되었어요. 그러나 나라에 흉년이 심해지고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다 보니 기반도 없어 한 끼의 끼니도 잇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굶어 죽느니 친정은 잘 사니까 친정으로 가서 부모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숲 속에서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인도는 날씨가 따뜻하니까 숲 속에서 바로 해산을 했어요. 남편이 도와 해산을 했는데 남편이 뱀에 물려 갑자기 죽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아기를 낳으니까 피 냄새가 나서 주위에 있던 코브라가 남편을 물어 버린 겁니다. 부인은 갑자기 남편을 잃어버리게 되었죠. 그래도 사람이 살아야 하니까 핏덩이 아기를 안고, 한 아이는 손을 잡고, 친정으로 가다가 강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두 아이를 다 안고는 강을 건널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큰 아이에게 내가 아기랑 먼저 건너고 올 테니 기다리라고 했어요. 그렇게 큰 아이는 놔두고 작은 아이를 안고 강을 건너가서 건너편에 아기를 두고 큰 애를 데리러 왔는데, 큰 애가 조급해서 혼자서 강을 건너다가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말았어요. 기가 막히죠. 그래서 넋을 잠시 잃었다가 그래도 강기슭에 있는 갓난아기라도 돌봐야 되니까 다시 물살을 헤치고 건너왔는데 늑대 무리가 그 핏덩이 갓난아기를 물고 가버렸어요. 졸지에 아이 둘을 다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다시 넋이 빠진 상태로 있다가 그래도 사람이 어떡합니까. 겨우 친정으로 와 봤더니 그 해가 흉년이라서 도적떼가 그 마을을 습격해서 집에 불을 질러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집은 잿더미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을 겪은 여인이 넋을 잃고 헤매고 있으니까 사람들이 너무 불쌍해서 부처님을 찾아가 보라고 얘기했어요. 그래서 부처님을 찾아가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고통을 받아야 됩니까?’ 하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정신을 차리고 깨달음을 얻어 출가를 했고 나중에 훌륭한 비구니 스님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어떤 재난이 한 번 일어나고 끝날 때가 있고, 두 개가 연달아 일어날 수도 있고, 때로는 세 개가 연달아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은 확률적으로는 매우 낮지만 가끔은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어요. 세월호의 죽은 아이를 부모가 볼 때는 날벼락이죠. 이태원에 놀러 갔던 아이의 죽음을 겪은 부모도 날벼락이지 않겠습니까? 그것처럼 확률은 매우 낮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질문자처럼 남편이 자살했다든지, 또는 자식이 자살했다든지 하는 경우는 우리 사회에도 이제 굉장히 많이 일어나고 있어요. 자살률이 세계에서 제일 높다 보니 주위에 자살한 사람이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급성백혈병 같은 희귀병으로 갑자기 죽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긴 하죠. 드문 일이긴 하지만 주위에서 가끔 그런 경우를 보게 됩니다.

코로나 백신을 맞고 갑자기 죽은 사람도 있고, 코로나에 걸려서 죽은 사람도 있고, 연세 드신 분이 아니더라도 젊은 사람 중에 죽은 사람도 있고요. 그럴 확률이 매우 낮지만 그런 일이 우리 주위에서는 일어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구가 5천만 명이기 때문에 그중에는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이 늘 있는 거죠. 그럴 때 그 한 사람만 생각하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나?’, ‘하나님이 나에게 벌을 주시나?’, ‘이게 나의 운명인가?’ 이렇게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확률적으로 보면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이 낮지만 사람이 많다 보니까 누군가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어요. 장애인일 확률이 1%라면 우리 아이가 장애인일 확률은 매우 낮지만, 천 명의 사람을 만나보면 그런 아이가 태어나는 경우는 이 집에도 있고 저 집에도 있는 거예요.

그것처럼 지금 질문자는 그런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서 굉장한 충격에 휩싸여 있는데,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냐는 얘기예요. 만약 두 딸을 두고 내가 생을 마친다면 질문자가 살아 있을 때 보다 두 딸에게 더 큰 충격이 되잖아요. 질문자도 이 충격을 감당하기 어려운데 두 딸들이 이 충격을 어떻게 감당하겠어요. 그것은 올바른 길이 아닙니다.


이러한 불행으로 질문자가 계속 울고 있고 제정신을 못 차린다면 두 딸은 어떻겠어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남동생이 갑자기 죽고 엄마는 제정신이 없는 것이 낫겠습니까? 이미 일은 일어나 버렸지만 내가 정신을 차리고 있어서 두 딸이 ‘그래도 엄마가 우리와 함께 하기 때문에 그나마 다행이다’ 하는 마음이 들도록 하는 게 낫겠습니까?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자꾸 과거 이야기하지 말고 바로 지금 나의 인생을 위해서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도 엄마가 정신을 차리고 살아가는 길이 바른 길이 아닐까요?

그런 일이 안 일어나면 좋았겠지만 이미 일어났고 지금 돌이킬 수가 없잖아요. 억울해한다고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을 원망한다고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고, 전생 탓을 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사주팔자를 논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사주팔자를 보는 곳에 가서 내 사주팔자가 그렇다는 얘기를 듣는다고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또 교회나 절에 간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결국은 모든 것은 내가 정신을 차리고 지금 주어진 조건에서 나도 행복하게 살고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길을 가는 것 말고 다른 무엇이 있겠어요? 점을 쳐서 당신의 운명이 이렇다고 안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뭐가 있겠어요? 돈만 들지요. 자칫하면 두 딸에게 또 이런 위험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다시 돈 쓸 일만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러니 제가 생각할 때는 지나간 일을 자꾸 붙들고 이야기해 봐야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지금 그래도 두 딸은 남아 있잖아요? 부처님 당시의 이야기처럼 다 잃어버린 것은 아니잖아요. 두 딸이라도 있으니 다행이잖아요. 주어진 이 조건에서 ‘나라도 건강해서 다행이다’ 하고 관점을 바꾸면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것을 자꾸 생각하면 내가 행복할 수 없어요, 그러나 좋은 점을 자꾸 생각하면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남편이 너무 불쌍한데 남편이 자살을 한 이유를 시댁에서는 제 탓으로 돌립니다. 하지만 저는 열심히 당당하게 살아왔고, 저희 아이들도 엄마만 아니면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제3자인 사람들이 엄마에게 어떠한 말을 하더라도 가족인 저희들이 엄마를 응원하고 있으니 그것으로라도 만족하라고 말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마저 이렇게 되고 나니 저는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날 뿐입니다. 스님 말씀대로 저는 정말 보란 듯이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었는데 왜 저에게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지, 자신감이 조금 없어지는 상황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옛날에는 남편이 죽은 것을 다 아내 탓을 했잖아요. 그래서 여자가 남자를 잡아먹었다고도 했고요. 옛날에는 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또 아들까지 이런 일이 생기니까 일부에서는 ‘봐라, 여자가 독하니 그렇게 되지 않느냐?’ 이렇게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사회에서도 어떤 일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이 전 정부, 전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모두가 다 현 정부가 문제다 현 대통령이 문제라고 합니다. 또 어떤 문제가 생기면 어떤 사람들은 야당이 문제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여당이 문제라고 말합니다. 누구나 다 말할 수는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하겠어요?

질문자의 입장에서는 남편이 어렸을 때 시댁 쪽 가족들이 잘 좀 돌봤으면 이런 일이 없지 않았겠느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마찬가지로 시댁 쪽에서는 질문자가 잘 돌봤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고,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일부 사실일 수도 있어요. 내가 남편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빨리 데려가서 병원 치료를 받게 했으면 이런 일을 연기시켰거나 막았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나 나도 그만큼의 성인도 아니고 내 살기도 바쁜 사람이었고, 그들 또한 그들 살기도 바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렇게 받아들이면 좋겠어요. 억울해하면 질문자만 괴롭잖아요.”

“제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우리 두 딸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요? 어떻게 하면 두 딸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요?”


“질문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첫째, 질문자가 안 죽는 것입니다. 둘째, 질문자가 정신을 놓고 살아서 딸들이 질문자를 걱정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내가 정신을 놓고 살아서 딸들이 할 일도 바쁜데 늘 엄마 걱정을 한다면 부모로서의 할 일은 아니지요. 제가 보기에 질문자가 딸을 위해서 무엇을 한다는 것은 질문자의 능력에는 안 맞는 것 같아요. 지금은 딸들에게 걱정거리가 되지 않는 정도가 질문자가 딸들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닌가 싶습니다.

질문자가 죽는 것이 딸들에게는 가장 큰 충격입니다. 질문자가 너무 우울해하거나 해서 늘 엄마 걱정을 하게 하는 것도 딸들에게는 안 좋은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딸들이 엄마 걱정을 안 하도록 늘 밝게 웃으면서 살아주는 것이 딸들을 위해서 질문자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상 질문자가 딸들에게 무언가를 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과욕입니다. 자기 삶도 못살아 제정신도 못 차리는 사람이 어떻게 남한테 무엇을 해줄 수 있겠습니까? 본인만 그런 생각을 할 뿐이지 실제로는 딸들에게 걱정거리가 되고 있잖아요?

질문자의 불행을 자꾸 딸들의 삶에 결부시키지 마세요. 적어도 딸들이 나를 걱정하지 않도록 내 몸 하나 내 삶 하나 제대로 건사하는 것이 우선 필요합니다.”

“또 다른 화살을 맞지 않기 위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저희 아이들에게 걱정거리가 안 되는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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