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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막 질환으로 실명하게 될 것 같아요, 어떻게 살아가죠?

작성자자연|작성시간24.01.29|조회수6 목록 댓글 0

망막 질환으로 실명하게 될 것 같아요, 어떻게 살아가죠?

“저는 망막 질환으로 4년 전부터 왼쪽 눈이 안 보이게 됐습니다. 그래도 오른쪽 눈으로는 볼 수 있으니 크게 충격받지 않고 적응하여 일도 하고 여행도 다니며 즐겁게 살았습니다. 그러다 작년에 10년 전 수술했던 오른쪽 눈에도 질환이 재발했습니다. 수술 후 망막은 붙었지만 이번에는 각막에 문제가 생겨 수술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결과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30년 남짓 살았는데 망막 수술만 여섯 번 했습니다. 아무리 고쳐 쓴다고 해도 언젠가는 오른쪽 눈도 안 보이게 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안 보이는 삶보다는 차라리 죽음이 낫습니다. 사는 데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나름대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헤쳐나가고 있었는데, 이제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오감 중에 눈이 제일 중요하죠. 벌레의 경우는 감촉이 중요합니다. 벌레는 기어가다가 뭔가에 부딪쳐야 방향을 틀잖아요. 그런데 벌레보다 조금 더 진화를 한 물고기는 맛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먼 태평양에 가서 살다가 다시 같은 장소로 돌아옵니다. 동물들은 후각과 청각이 굉장히 발달되어 있어요. 그런데 사람은 시각이 굉장히 발달되어 있습니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정보의 90퍼센트를 시각으로 받아들입니다. 다른 감각기관이 있는데도 시각이 워낙 강하다 보니까 다른 감각 작용이 덜 중요하게 느껴지죠.

우리가 보통 ‘안다’ 하고 말할 때도 같은 의미로 ‘본다’ 하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보고 알고, 듣고 알고, 냄새 맡고 알고, 맛을 보고 알고, 감촉해서 아는 것인데, 그중에서 아는 것과 보는 것을 같다고 하잖아요. 안다는 말이 곧 본다는 말이 될 정도로 시각의 비중이 그만큼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경전에 나오는 ‘정견’이라는 말도 바르게 안다는 뜻이 되죠. 그래서 시각에 장애가 생기게 되면 다른 장애보다 더 답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정보를 수집하는 데에 많은 한계가 생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질문자의 걱정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눈이 안 보이면 불편하기는 합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알지 못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시각 장애가 생기면 대신 다른 감각들이 예민해집니다. 청각이나 촉각이 예민해지면 지팡이를 짚어 가면서 손으로 느껴지는 촉각으로도 물체를 식별하게 되고, 청각으로도 계단인지 평지인지 구별하게 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지압사들 중에는 시각 장애인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손의 감각이 굉장히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눈이 안 보이면 다른 신체기관으로 감각이 이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불편한 것은 맞지만 시각이 안 보인다고 못 사는 것은 아닙니다. 눈이 보일 때에 비해서 불편한 건 말할 것도 없죠. 하지만 두 눈이 없다고 못 사는 것은 아니잖아요?

인생에 있어서 행복과 불행이 따로 없습니다. 두 손 모두 쓰다가 한 손을 못 쓰게 되면 불행이라고 생각하지만, 두 손을 못 쓰다가 한 손을 쓰게 되면 행운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행복과 불행은 무엇과 비교하느냐에 따라 생기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시각 장애가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질문자가 지금 한쪽 눈이라도 보이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설령 나중에 두 눈이 다 안 보인다 하더라도 옛날에는 보이기라도 했던 것이 다행인 거예요. 그래서 비록 안 보이지만 ‘어떤 색깔이다’, ‘어떤 모양이다’ 하고 말해주면 옛날에 봤었던 경험을 토대로 감이라도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태어날 때부터 시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그런 감도 잡기가 어렵습니다. 가령 부자로 살다가 가난해지면 굉장히 불행해진 것 같지만, 처음부터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한때 잘 살아본 경험이 있는 게 낫잖아요. 그러나 현실에서는 과거의 경험 때문에 현재를 더 비관적으로 보게 됩니다. 눈이 잘 보일 때와 비교하면 앞으로의 인생이 매우 불편할 것이라고 예상이 됩니다. 하지만 눈이 안 보인다고 해서 못 사는 건 아니에요, 좀 불편할 뿐이죠.

앞으로 과학이 자꾸 발달하면 인공 눈이 개발될 겁니다. 인공 귀도 생길 수 있고, 여러 가지 신체기관이 인공적으로 만들어질 수가 있어요. 요즘은 인공 지능도 개발되고 있지 않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인공 눈 개발도 예상보다 어렵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불편한 것이야 말해 뭐 하겠어요. 그러나 ‘그럴 바에야 죽는 게 낫다’ 하는 생각은 좀 극단적인 생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돈이 10억이 있었는데 주식을 해서 다 날리고 1억만 남게 되었다고 자살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런데 천만 원이 있었는데 1억을 갖게 된 사람은 부자가 됐다고 기뻐합니다. 행복과 불행은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볼 것들을 많이 봤으니까 이제 안 봐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도 시각 장애인은 밥은 스스로 먹을 수가 있잖아요. 음식의 맛도 느낄 수 있고, 냄새도 맡을 수가 있고, 음악도 들을 수가 있잖아요. 만약 맛을 못 느끼거나, 냄새를 못 맡거나, 소리를 못 듣는다면,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첫째, 좀 불편하지만 그래도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둘째, 앞으로 살다 보면 인공 눈이 나와서 보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저도 눈이 좀 안 보여서 얼마 전에 수술을 했거든요. 눈에서 검은 반점이 수천 개가 보여요. 마치 때가 많이 낀 창문을 통해서 보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질문자는 ‘그래도 스님은 보이잖아요’ 이렇게 얘기할 거예요. 그런데 저 역시 옛날에 잘 보일 때와 비교하기 때문에 불편한 겁니다. 그러니 항상 과거와 비교하지 마세요. 지금 한쪽 눈이라도 보이는 것에 만족해야 합니다. 앞으로 두 눈이 다 안 보이게 될지는 아직 잘 모르잖아요. 게다가 기술이 자꾸 발전하고 있고요.”

“나머지 한쪽 눈도 수술을 많이 해서 잘 안 보이는 상태입니다. 인공 눈도 많이 생각해 봤는데 아직은 먼 미래에 개발이 될 것 같아요. “

”그러면 질문자를 냉동 인간으로 만들어서 한 50년 후에 인공 눈을 달아 줄까요? (웃음) 그렇게 되면 질문자가 알고 있는 사람들은 다 죽었을 텐데, 그때 혼자 살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요? 저 같으면 안 보여도 지금 아는 사람들과 같이 사는 게 낫겠어요. 불편한 것은 맞아요. 그러나 못 살 정도는 아닙니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재미있게 살아봐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요.”

“지금 하고 있는 취미생활을 할 수가 없어요.”

“맛있는 것을 먹을 수도 있고, 냄새도 맡을 수가 있고, 음악도 들을 수가 있잖아요. 헬렌켈러는 눈도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리고 말도 못 했어도 훌륭한 일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보다 불편한 것은 이해가 되는데, 그래도 못 살 정도는 아니에요. 남은 인생은 눈 감고 살아보는 것도 한 번 연습해 봐요. 자식이 죽고도 사는데, 저 같으면 눈이 안 보여도 사는 게 낫겠어요. 저는 차라리 말을 못 하는 게 더 힘들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말을 못 하면 마치 쓸모없는 것처럼 느껴질 것 같거든요. 저는 눈이 안 보여도 여러분의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것은 다 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눈으로 하는 일이 많습니다. 눈이 안 보이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데, 남은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원래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벌레가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고, 다람쥐 한 마리가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인생의 의미를 찾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인생은 원래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냥 사는 것입니다.

눈이 보일 때까지 보다가, 눈이 안 보이면 귀로 들으면서 살고, 귀도 안 들리면 손으로 만져가면서 살고, 그렇게 살다 보면 일부러 안 죽어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죽어요.”

“돈을 벌고 살아야 되는데, 어떡하죠?”

“장애인이 되면 정부에서 다 지원을 해주기 때문에 걱정을 안 해도 돼요. 옛날에는 가족이 생계를 책임져 주었지만, 지금은 정부에서 다 지원을 해줍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아직 젊으니까 걱정하는 것은 이해가 돼요. 그래도 살아야지 어떻게 할 거예요.”

“스님께서 해주신 말씀 감사하게 잘 들었습니다.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아쉬워하지 않고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아쉽고, 친구와 헤어져도 아쉽고, 재물을 잃어도 아쉽고, 건강을 잃어도 아쉽잖아요. 아쉬운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누구나 다 아쉽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돌아가셔도 나는 살아야 합니다. 부부가 헤어져도 나는 살아야 합니다. 자식이 죽어도 나는 살아야 합니다. 발이 하나 없어도 나는 살아야 합니다. 눈이 안 보여도 나는 살아야 해요. 이런 이유로 못 살겠다고 생을 마감한다면 그것은 정신 질환에 속합니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눈 때문이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 때문입니다. 자신이 누리던 것을 조금이라도 잃는 것을 못 참는 극단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어요. 보이는 대까지 보고, 안 보이면 또 안 보이는 대로 살아간다는 관점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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