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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하면서 남편 생각에 자꾸 눈물이 납니다.

작성자자연|작성시간24.02.02|조회수5 목록 댓글 0

순례하면서 남편 생각에 자꾸 눈물이 납니다.

“제가 이번 성지순례에 와서 세 번 정도 눈물을 흘렸는데요. 눈물 속에서 저희 신랑이 자꾸 나타났습니다. 신랑을 생각하면 ‘참 안타깝다. 어떻게 그렇게 괴로운 삶을 살고 있느냐?’ 하는 생각이 계속 올라옵니다. ‘나는 그래도 불교를 만나 자유로운 삶을 찾아가고 있는데, 괴로움 속에 있는 당신을 내가 어떻게 품어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신랑을 마주치게 되면 또 가슴이 답답할 것 같습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실제로 신랑을 봤을 때 올라오는 답답한 마음 때문에 제가 깨달은 것이 제대로 실천이 안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집에 가서 저희 남편을 봤을 때 어떻게 하면 지금 깨달은 이 마음을 놓치지 않고 남편을 대할 수 있을까요?”


“깨달음이라는 용어만 쓰면 깨달아진 줄 아세요? 남편하고 떨어지면 남편이 불쌍해 보이고, 막상 실제로 남편을 보면 답답하고, 두 가지 마음은 다 똑같은 마음이에요. 모두 경계 따라 일어나는 내 마음일 뿐입니다. 남편과 떨어져 있을 때 남편을 생각하니 ‘남편이 참 불쌍하다.’, ‘남편을 잘 돌봐줘야 하겠다.’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을 세속에서는 선심이라고 합니다. 남편만 보면 미워지고 답답해지는 것을 세상에서는 악심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악심과 선심은 다 경계 따라 일어나는 거예요. 내 마음이 한 번은 이렇게 일어났다가 한 번은 저렇게 일어났다가 하는 것은 망념일 뿐입니다. 그래서 육조단경에서 혜능대사가 ‘전심은 무엇이고 후심은 무엇이냐? 어떤 것이 너의 본래 면목인가?’ 하고 말했잖아요.

선심이니 악심이니 이런 걸 논하는 것은 깨달음 하고는 거리가 먼 그냥 세속놀음에 불과합니다. 이럴 때는 선심이 일어나고 저럴 때는 악심이 일어나는 것은 그냥 경계 따라 일어나는 중생심이에요. 이 세상의 모든 중생이 제 아들을 보거나 할 때는 선심이 일어나고, 또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악심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선심이 일어났다가 악심이 일어났다가 하는 것이 중생심의 본질이에요. 그러니 ‘선심과 악심 너머 본래 면목은 무엇인가?’ 이것을 탐구 과제로 삼아야 합니다. ‘본래 마음이 그렇다.’ 이렇게 전제를 하면 그것은 탐구가 아니에요. 믿음이고 배움이지요. ‘왜 마음이 이래도 일어나고 저래도 일어났느냐’고 탐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남편이 불쌍하게 여겨지는 마음을 탐구해서 마음이 이렇게 일어나도 저렇게 일어나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경지에 이르러야 합니다. 남편과 떨어져 있어도 불쌍한 마음이 전혀 안 일어나야 함께 있을 때도 전혀 미운 마음이 안 일어납니다. 그래야 털끝만큼이라도 깨달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편하고 떨어져 있으면 질문자만 그런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에요. 여기에 순례를 온 사람 대부분이 남편과 떨어져 있으면서 고생을 하다 보니까 집이 그리워지고 집에 빨리 가고 싶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막상 집에 가서 문만 열고 들어서면 벌써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그것은 깨달음 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얘기입니다. 그냥 ‘경계 따라 마음이 이렇게 일어나는구나!’, ‘남편의 얼굴을 보면 미움이 일어나고, 남편과 떨어져 있으면 연민이 일어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 마음이 있어서 붙어사는 것입니다. 얼굴만 보아도 싫은 마음이 일관되게 일어난다면 벌써 헤어졌겠지요. 반대로 항상 연민만 일어나면 벌써 번뇌가 없어졌을 겁니다. 인연 따라 마음이 이렇게 되었다 저렇게 되었다 하는 것이 바로 중생심입니다.

이것은 남편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니 남편 걱정하지 말고 질문자나 잘하면 좋겠어요. 결론을 말씀드린다면 ‘자신의 마음이나 잘 관찰하고 단속을 잘해라’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일한 마음이란 것은 마음이 항상 똑같은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마음이란 이렇게도 일어나고 저렇게도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관심무상’이라고 합니다. 마음이란 것은 늘 죽 끓듯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마음이 일어나든 저렇게 마음이 일어나든 거기에 별 의미를 안 둔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이럴 때 마음이 ‘일심’이 됩니다. 예를 들어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면 좋아하는 그 마음이 계속 쭉 유지되는 것이 일심이 아닙니다.

마음이란 원래 경계 따라 늘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든 저렇든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음이란 원래 무상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편의 얼굴을 볼 때마다 마음이 이렇게도 일어나고 저렇게도 일어나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마음에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이러한 상태의 마음을 ‘일심’이라고 이름 붙인 겁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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