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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Q&A 게시판

저를 괴롭힌 사람이 출세하는 걸 보니 화가 나요(불러뻥 이야기)

작성자자연|작성시간24.02.23|조회수8 목록 댓글 0

저를 괴롭힌 사람이 출세하는 걸 보니 화가 나요

“회사에 다니면서 험하고 못 볼 꼴 많이 보면서 직장생활을 해왔는데, 20년 전에 힘든 일을 한 번 겪은 적이 있었어요. 2000년대 초반은 연예인들도 악성 댓글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럴 때였는데, 저는 연예인도 아닌데 악성 댓글에 엄청나게 시달린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제 선배였던 분이 회사의 명예를 들먹이며 일이 커지게 돼서 제가 그걸 다 뒤집어썼습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고통을 겪었어요. 그랬던 선배가 지지난 정부 때 출세를 했습니다. 예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라 억울한 생각에 그 선배를 찾아가 사과하라고 했는데 '내가 너한테 한 일 때문에 네가 겪은 상황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사과는 할 수 없다' 이렇게 대답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무슨 정치인처럼 얘기하느냐’ 이렇게 말했는데, 이후에 진짜 사표를 내고 정치를 하더라고요. 그 선배가 이번에 또 선거에 나옵니다. 관련 보도를 찾아보면서 '그 사람이 이번에 당선이 되면 4년 동안 뉴스에서 계속 봐야 해서 괴로울 텐데' 하는 마음이 계속 올라옵니다. 그 선배가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데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질문자는 그때 힘든 일을 겪으면서 상처를 입은 겁니다. 마음에 상처를 입은 것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서 그 사람의 얼굴을 보거나 얘기를 듣거나 하면 그 상처가 다시 일어나는 거예요.”

“그런데 정말 제가 그때 그 사람을 찾아가서 선배라고 부르면서 공손하게 얘기를 했는데, 그분은 저한테 반말을 했어요. 그때 제가 그 사람한테 쌍욕을 했으면 지금 화가 좀 누그러들었을 것 같아요.”

“그럼 화장실에 가서 그 사람 욕을 한번 하지 그랬어요. 그 사람 앞에 가서 욕을 하나 화장실에 가서 욕을 하나 마찬가지인데요.”

“제가 치료를 위해서 사람 없는 데 가서 막 ‘이 새끼, 저 새끼’ 해봤는데 잠깐만 후련하지, 근본적인 치유가 안 돼요. 대놓고 막 욕을 해야 했는데….”


“그 사람한테 가서 대놓고 욕을 한다면 조금은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크게 보면 마찬가지예요. 분노가 너무 심할 때는 정신과에서 응급 치료를 위해 쓰는 방법이 있습니다. 인형에 상대의 얼굴을 붙여 놓고 욕을 하면서 방망이로 때리게 하는 거예요. 이런 방법은 실제로 효과가 있습니다. 옛날에 여자들이 빨래터에서 빨래하면서 시어머니와 남편 욕을 많이 했잖아요. 남편이나 시어머니 욕을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빨랫방망이를 힘껏 내리치게 되는데 이게 바로 스트레스 해소에는 도움이 됩니다. 옛날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그런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생존해 온 거예요.

질문자가 겪는 문제는 일종의 트라우마입니다. 전문적인 트라우마 치료를 받는 게 좋겠습니다. 질문자가 그 사람한테 가서 욕을 한다든지, 아니면 그 사람이 선거에 떨어지든지 하면 질문자의 기분에는 조금 도움이 되겠지요. 하지만 그 사람이 다시 잘 되면 똑같이 괴로워질 겁니다.”

“제가 치료를 안 받은 것은 아닙니다. 아주 오래 받았어요. 그래서 그나마 이 정도가 된 거예요. 예전에는 아예 말도 못 꺼냈어요. 제가 저 자신을 보면 ‘이렇게 말을 꺼낼 수 있게 된 게 그나마 많이 치유된 거구나’ 싶어요.”

“네. 여기서 질문하는 것을 보면 벌써 어느 정도 치료가 된 거예요.”




“이제는 약간 남 얘기처럼 말을 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점점 잊고 살고 있었는데, 그 새끼가 또 선거 때가 되어 기어 나오니까 제 마음이 괴로워진 겁니다. 솔직히 ‘저 새끼가 제발 선거에 떨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확 올라오는데 제가 그걸 어떻게 통제할 수가 없잖아요. 그 새끼가 당선되어서 내 상태가 더 나빠지면 어떡하나 겁이 나는 겁니다.”

“시어머니한테 스트레스를 받아서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이 살림을 분리해 따로 살게 되면 모든 게 해결된 것처럼 잠잠해집니다. 시간이 흐르면 점점 시어머니가 생각나기도 하고요. 그러다가도 시어머니를 딱 만나서 그분의 말을 들으면 확 하고 트라우마가 다시 올라옵니다. 그런 게 트라우마입니다. 질문자는 지금 상당히 치료되었으니까 남 앞에서 이런 말도 할 수 있는 거예요.

스님과 즉문즉설을 하면서 자신의 어려움을 드러내면 벌써 치유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첫째, 어느 정도 치유가 되어야 자신의 어려움을 드러내서 질문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질문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어느 정도 치유가 됐다는 증거예요. 둘째, 대중이 있는 데서 그런 얘기를 꺼낸 것은 치유하고자 하는 자신의 갈망이 매우 크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또한 치유되어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질문자의 트라우마는 병원에서 어느 정도 치료를 받았다 해도 좀 더 시간이 걸릴 거예요. 치료를 안 받는 것보다는 치료받는 게 좋고, 치료받았다 하더라도 어두운 밤에 불을 켜듯이 단번에 탁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려면 면벽 수도를 해서 한 번에 탁 깨달아야 하는데, 질문자는 그런 수준이 아니니까 아마 점차 완화되어 갈 겁니다. 그러니 그 사람이 당선되든 떨어지든 그 결과가 실제로는 질문자의 상처 치료에 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선거에 당선이 될까 봐 무서워요.”

“괜찮아요. 당선되어도 질문자에게 별문제는 없을 것이고, 떨어졌다고 해도 별로 좋은 것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떨어지면 기쁠 것 같아요.”


“잠깐 기분이 좋을 뿐이에요. 그 사람이 당선되면 기분이 좀 나쁘고, 떨어지면 기분이 좀 좋고, 이럴 뿐이지 그게 질문자의 인생에 크게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아직 상처가 덜 나아서 그런 겁니다. 그 사람을 너무 논하지 말고 내 상처를 치료하는 게 좋아요. 내 상처를 치료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이 나타나느냐 안 나타나느냐에 따라서 내 삶이 이랬다 저랬다 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질문자는 그 사람한테 매여 있게 되는 겁니다. 질문자는 그 사람의 노예가 아니잖아요. 왜 그 사람한테 내 인생이 좌우되어야 해요? 그 사람이 당선되든 떨어지든 아무 상관이 없어야 내가 그로부터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질문자는 지금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 사람이 선거에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바로 그 사람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아직도 그 사람한테 매여 있는 거예요.

제 경험을 들려드리자면, 제가 젊었을 때 집시법 위반으로 구치소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옛날에는 경찰서에서 쓴 진술서가 검찰에 넘어가서는 증거가 되지 않곤 했습니다. 경찰들이 두들겨 패고 고문을 해서 ‘그렇게 했다.’ 하고 진술을 했지만, 검사 앞에 가서는 ‘나는 안 했다.’ 하고 말하니 검사들이 난감했겠지요. 그런데 검사는 경찰처럼 피의자를 두들겨 팰 수는 없었어요. 검사는 사람을 함부로 때리고 고문하지는 않았거든요. 몇 번 설득해도 원하는 진술을 받아내지 못하면 검사가 피의자에게 애를 먹이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방법 중에 ‘불러뻥’이란 게 있어요. 구치소에 있을 때는 자유롭게 있을 수가 있는데 검사한테 조사받으러 갈 때는 손을 다 뒤로 묶거나 앞으로 묶어서 수갑을 채우고 10명씩 포승줄로 굴비 엮듯이 묶습니다. 그렇게 차에 태워 가서 검찰청 뒤쪽에 내리면 지하로 들어가게 되는데, 거기에 ‘비둘기장’이라고 부르는 작은 방이 있습니다. 딱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인데 너무 작아서 ‘비둘기장’이라고 불렀어요. 거기 딱 데려가서 가두어 놓습니다. 검사가 피의자를 데려오라고 하면 그제야 누군가 지하로 내려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검사실로 데리고 올라갑니다. 아무리 구치소라도 방에 있으면 편하잖아요. 손에 수갑도 풀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검찰에서 아침 일찍 비둘기장으로 데려와서 점심때까지 찾지를 않습니다. 오후 3시가 될 때까지 검사가 안 부르면 비둘기장에서 종일 손을 묶은 상태로 있어야 합니다. 이게 사람 미치게 하는 거예요.


고문을 당하면 악을 쓰면서 버티면 되는데, 이런 경우는 사람을 불러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작정 기다리게만 해요. 그 당시 용어로 불러서 뻥을 시킨다고 해서 ‘불러뻥’이라고 했는데, 검사가 행하는 고문의 한 종류입니다. 세 번쯤 그렇게 불려 가서 손이 묶인 채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종일 있다 보면 너무나 괴로워서 대부분 막판에 가서 검사가 원하는 대로 진술을 하게 됩니다.

저도 처음에 검사에게 불려 가서 종일 작은 대기실에 있었는데 굉장히 답답한 거예요. 점심시간이 되어 수갑을 채운 채 밥을 먹어야 했어요. 식사하기가 굉장히 불편했습니다. 대충 손으로 집어 음식을 입에 넣는데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오는 거예요. 검사실에 들어가서 검사가 수갑을 푸는 순간 무엇부터 할지, 발로 책상을 차서 박살을 낼까, 아니면 다른 무엇을 해야 하나, 여러 가지 상상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떠올랐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내가 지금 검사한테 놀아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가 왜 불러뻥을 시켰겠습니까? 나보고 괴로워하라고 시키는 것 아니겠어요? 내 모습이 검사가 원하는 대로 괴로워해 주고 있는 거였어요. 그가 바라는 대로 화를 내고 있는데 나를 검사실로 부를 이유가 만무하잖아요. 그러다가 제풀에 꺼꾸러질 때쯤 저를 불러들이겠죠. 그 순간 제가 검사의 꼭두각시처럼 시킨 대로 잘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니까 소름이 확 끼쳤습니다. 그래서 올라오는 분노를 내려놓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법당에서 기도할 때 그 넓은 법당에 누구도 움직이지 말라고 하지 않는데도 혼자 바르게 서서 두세 시간도 넘게 목탁을 치면서 관세음보살을 부르잖아요. 우리는 그걸 수행이라고 합니다. 누가 손을 묶지 않았는데도 묶어 놓은 것보다 더 똑바로 서서 그렇게 기도를 하잖습니까. 그래서 저도 ‘그래, 이 순간에 기도하는 것이다’ 하고 마음을 다잡고 기도하는 자세를 가졌습니다. 그 순간 좁은 공간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당면한 문제가 저를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서너 번 불러 뻥을 받으면 너무 괴로워서 검사한테 가서 그가 시킨 대로 해줄 텐데 내가 괴롭지 않으니 그가 부르든 말든 제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었습니다. 아침에 불러뻥을 하러 갈 때마다 ‘기도하러 간다.’ 이렇게 생각하고 갔다 오니 그들이 원하는 것이 전혀 먹혀들지 않았어요.


깨달음이란 꼭 법당에서 참선하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고난에 처했을 때 자기를 돌아보고 자각하면 그것이 깨달음입니다. 이런 경험은 그 후에도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거나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그걸 극복하게 해주는 지혜로 작용하게 됩니다.

질문자는 여전히 자신을 괴롭힌 사람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20년 동안이나 아직도 그 사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한마디로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겁니다. 그 사람에 좌지우지되어 화를 내는 것이 꼭두각시 짓이 아니고 뭐겠어요? 그 사람이 정말 싫다면 질문자는 그로부터 독립을 해야 합니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아가든지 그것은 그의 인생이고 질문자는 거기에 구애를 받지 않아야 합니다. 그게 진정한 자유예요.

수행은 마음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잘 될 때 화가 올라오고,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기분이 좋아지고, 이렇게 마음이 올라올 때 그 마음을 알아차려야 해요. 그가 어떤 상황에 부닥치든지 계속해서 내 감정의 널뛰기를 잘 관찰해서 마음을 조금씩 진정시켜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갈수록 거센 파도처럼 크게 일어났던 감정이 서서히 잔잔한 파도처럼 고요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자기를 치료하면 좋겠습니다.”

“변명일 수 있겠지만, 왜 그런 인간들만 정치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그런 인간들만 정치를 하는 게 아니고 그런 사람들도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관점을 바꾸셔야 합니다. 그런 인간들이 이 세상에 어디 한두 명입니까? 그런 사람 중에도 정치하는 사람이 있고, 착한 사람 중에도 정치하는 사람이 있고, 도둑질하는 사람 중에도 정치하는 사람이 있다고 보셔야 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고 ‘왜 정치는 저런 인간들만 하냐?’ 하고 생각하면 안 되고, ‘아, 저런 인간도 정치를 하는 경우가 있구나’ 하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정치하는 인간은 다 그런 인간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인간이라고 다 정치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인간 중에는 스님도 될 수 있고, 목사도 될 수 있는 겁니다. 유명한 깡패가 목사가 된 사례도 있잖아요. 그런 사람이 목사나 스님이 못 되라는 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제 좀 해방이 되었어요?”

“좀 해방이 된 것 같습니다.”

“20년간 묶여 사셨는데 이제는 좀 자유로워지셔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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