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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Q&A 게시판

스스로 자기의 삶에 주인이 되는 법문

작성자자연|작성시간24.03.11|조회수14 목록 댓글 0

참고 살다가 할 말을 했더니 남편이 이혼하자고 합니다

"저는 결혼한 지 22년이 된 주부입니다. 저희 부부는 어린 나이에 결혼했지만 둘 다 워낙 성실하고 책임감이 있어서 사회에서 일찍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제 아이들도 다 장성했습니다. 그런데 작은 문제가 생겼어요. 저희 남편은 원래 성격이 급하고 막말을 많이 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런 남편에게 20대 때는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30대 때는 남편을 이해도 해보고 속으로 욕도 하면서 그럭저럭 잘 지냈습니다. 그런데 이제 40대 중반이 되니까 그런 소리가 듣기 싫어졌어요. 그래서 저도 같이 막말을 했더니 제 속은 편해졌는데 남편이 이혼하자고 해요. 남편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제가 남편의 막말을 참고 이해하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요? 저도 곧 며느리를 봐야 하는데 그냥 참고 살아야 하는지, 아니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이혼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 됩니다. “


“질문자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됩니다. 자식들이 다 컸기 때문에 이혼을 해도 큰 문제가 없어요. 또 지금까지도 잘 살아왔으니까 계속 같이 살아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볼 때는 이혼이 큰 문제 같지만 별일 아니에요. 한 20년 같이 살았으면 지겨울 때도 됐으니 헤어지고 따로 살아도 됩니다. 또 젊은 시절에 더 힘들 때도 갈등을 극복하고 살았는데 자식들이 결혼할 나이가 돼서 새삼스럽게 못 살겠다고 할 이유도 없습니다.”

"제가 못 살겠다고 한 게 아니에요. 저희 남편이 제가 요새 대들어서 같이 못 살겠다고 합니다. “

"나이가 오십이 다 돼 가는데 아직도 할 말을 못 하고 살면 좋은 건 아니에요. 할 말은 하고 사세요.”

"감사합니다. 남편한테 이 영상을 꼭 보여주겠습니다. “


“제 말을 오해하시면 안 돼요. 막말을 하라는 게 아닙니다. 할 말을 하라는 거예요. 할 말과 막말은 다르잖아요. 할 말을 하되 화를 내지는 마세요. 할 말은 하되 욕설은 하지 마세요. 그것 빼고 할 말은 다 하고 사세요."

"그런데 제가 한동안 말을 예쁘게 해 봤지만 남편이 들은 척 만척하고 지냈어요."

“상대가 내 말을 듣고 안 듣고는 그의 마음입니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질문자가 저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도 되냐, 하지 말아야 되냐’라고 물었기 때문에 ‘그건 질문자의 자유니까 하고 싶은 말을 해도 된다’라고 얘기한 겁니다. 상대가 내 말을 다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독재자처럼 사고하는 거예요."

"제가 부드럽게 말해도 가끔 남편이 화를 안 풀 때가 있습니다."


"부드럽게 말하거나 예쁘게 말하라는 게 아니에요. 화내거나 욕설을 하지 말라는 거예요. 질문자가 대단한 인격자도 아닌데 뭘 그렇게 부드럽게 말하고 예쁘게 말하려고 그래요? 인위적으로 말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내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하세요. 그런데 화를 내거나, 막말을 하거나, 욕설을 하면 상대도 그 말을 받아쳐서 막말을 합니다. 그러면 나만 손해잖아요. 꼭 욕설을 하거나 화를 내야 내 뜻이 전해지는 건 아니에요. 내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하고 싶으면 하면 됩니다. 남편이 그 말을 듣고 안 듣고는 그의 자유예요. 내가 그의 자유를 구속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관점에 서야 합니다. 남편에게 ‘스님이 나보고 할 말을 다 하라고 하더라’ 하고 말할 거면, ‘남편이 아내의 말을 듣든지 안 듣든지는 남편의 자유라고 하더라’라는 말도 같이 해주세요. 남편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살면 됩니다.

근데 그 말하는 방식이 욕설을 하거나 화를 내거나 막말을 하는 거라면, 안 한 것보다 못한 결과가 나타납니다. 그러면 질문자만 손해예요. 남편을 위해서 막말을 안 하고 욕설을 안 하고 화내지 않는 게 아니에요. 나를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겁니다. 막말을 하면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왜곡돼서 전달됩니다. 남편도 욕을 하거나 화내거나 막말을 하겠죠. 한마디로 본전을 못 건집니다. 본전을 못 건지고 밑지는 장사를 하는 사람은 현명하지 못한 사람이에요. 스스로 손해 날 행동을 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하고 싶으면 하면 됩니다. 다만 욕을 하거나 화를 내면 오히려 내가 손해를 입으니까 손실이 안 나도록 말을 하라는 거예요. 질문자가 화를 내고 욕을 해야 속이 시원하다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속이 시원한 대신에 남편에게 이혼을 당하거나 욕을 두 배로 들을 수 있겠죠. 또는 남편이 폭력을 쓸 수도 있습니다. 이런 손실을 감수하겠다면 아무 문제없습니다. 하지만 좀 더 현명한 관점에서 본다면, 굳이 이런 손해를 보는 행동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내 남편이나 내 인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말 어떤 것이 나를 위하는 현명한 선택인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하고 싶은 말을 못 하면 내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그건 나에게 손해지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화를 내면서 말하면 나에게 돌아오는 손해가 더 큽니다. 할 말은 하되, 화내지 않으면서 말하는 게 좋습니다. 욕하거나 막말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건 내 인격을 위한 것이 아니고 나에게 돌아오는 손해를 막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도 질문자가 화도 좀 내고 욕을 해서 속을 풀고 싶다면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우리가 여가생활을 할 때도 반드시 대가를 지불하잖습니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으면 음식값을 내야 하고, 여기저기 구경을 하고 싶으면 그 비용을 내야 합니다. 이처럼 내 속을 풀려면 반드시 그에 상응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욕하고 뺨을 한 대 얻어맞는 것도 방법입니다. 욕을 해야 속이 풀린다면, 뺨을 맞으면서도 '아, 속 시원하다!' 하고 빙긋이 웃어야 해요. 이런 건 괜찮습니다.

지금 질문자의 사례뿐 아니라 모든 일에는 항상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내게 뭔가 기쁨을 주거나 이익이 되는 것에도 반드시 대가가 따릅니다. 질문자가 욕을 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자세를 가지면 상대가 어떻게 해도 억울한 마음이 들지 않습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내가 괴롭지 않습니다.”

"저희 남편은 종종 남을 비난합니다. 그런데 본인은 그걸 잘 몰라요. 남편이 그걸 알아차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질문자부터 안 되는데 어떻게 남편을 알아차리게 할 수 있겠어요? 그건 다 남편을 고치고 싶다는 얘기예요. 남편을 고쳐서 내가 좀 편하게 살고 싶으면 다른 절이나 교회에 가서 부처님이나 하느님께 비셔야 합니다.


즉문즉설의 핵심은 '나를 어떻게 고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바꾸려는 시도는 수행이 아니라, 복을 구하는 거예요. 남편이 남을 비난하고 화를 내는 것은 그의 성격의 일부입니다. 그저 '남편의 성격은 저렇구나' 하고 받아들이면, 남편이 어떻게 행동하더라도 나는 괴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날씨가 춥거나 더울 때 '날씨를 어떻게 바꿀까?'라고 고민하는 것은 즉문즉설의 관점이 아닙니다. '날씨가 추운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물으면 '더 따뜻한 옷을 입으세요.'라고 답합니다. '날씨가 더울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물으면 '가벼운 옷을 입고, 양산을 쓰세요.'라고 말합니다. '비가 오고 바닥이 미끄러울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물으면 '우산을 쓰고, 장화를 신으세요.'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어떤 상황에서든 '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관점을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수행입니다. '외출하려는데 왜 비가 오지? 일을 해야 하는데 왜 해가 떴지?'라고 하는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사항에 대해 불평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고하기 때문에 신에게 비를 그쳐달라거나 날씨가 흐리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어리석은 행위를 하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네. 신에게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 하고 비는 사람은 주인이 누구일까요? 신이 주인입니다. 부처님께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하는 사람은 인생의 주인이 부처님입니다. 남편의 말과 행동에 따라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는 사람은 인생의 주인이 남편인 거예요. 인생의 주인이 남편도 아니고, 하느님도 아니고, 부처님도 아니고, 임금도 아니라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면 어떤 세상에도 맞추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남편이 술을 안 마시면 좋겠습니다.'라고 하는 사람은 남편이 인생의 주인인 거예요. 남편이 술을 안 마시면 기분이 좋고, 남편이 술을 마시면 기분이 나쁘니까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편이 술은 좀 마시지만 돈을 잘 번다.' 또는 '그 사람 성격은 좋다.' 하고 남편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같이 사는 길이 있습니다. 아무리 돈을 잘 벌고, 평소에 잘해줘도 술만 먹으면 행패를 피워서 이 사람과 못살겠다면 헤어지는 길도 있습니다. 결정은 누가 할까요? 내가 합니다. 이게 바로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입니다. 인생의 주인이 되었다고 해서 세상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니에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 선택을 하고 책임지는 사람이 주인입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데 누군가 총을 들고 나타나서 ‘오토바이를 내놓아라.’ 하고 위협을 한다고 합시다. 오토바이를 정말 아끼지만 목숨이 더 중요하다면 오토바이를 줘야 합니다. 이 결정은 강도가 아니라 내가 한 거예요. 강도 때문에 오토바이를 뺏겼다면서 화를 낼 필요가 없습니다.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오토바이를 지켜야겠다면 총 맞을 각오를 하고 오토바이를 지키는 거예요. 목숨보다 중요한 게 있으면 사람은 그걸 선택하기도 합니다. 목숨을 버리면서 나라를 지킨 애국자들이 있잖아요. 자기 목숨을 버리는 대신 아내를 지키고 자식을 지킨 경우도 많습니다. 이렇게 자기 목숨도 내놓을 때가 있어요.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살기 위한 어떤 선택을 했다면 그걸 문제 삼으면 안 됩니다. 현명한 선택을 하고 목숨을 지킨 거예요. 그런데 목숨보다도 정조를 선택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조를 잃을 바에야 나는 죽겠다.'라면서 기꺼이 죽기도 했어요. 그것도 다 누구 선택입니까? 자기 선택이에요.


이렇게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이 바로 붓다입니다. 붓다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하다’라고 했습니다. 신도, 왕도 세상의 어느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결정해 줄 수는 없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어떤 일이든 내가 한 선택이라는 관점이 분명해야 해요.

질문자처럼 늘 남편의 말과 행동에 따라 기분이 좋거나 나쁘다면 인생의 주인이 자기 자신이 아닌 거예요. 남편이 일찍 들어오면 좋고 늦게 들어오면 싫고, 나만 보면 좋고 딴 여자를 보면 싫고, 술을 안 마시면 좋고, 술을 마시면 싫고 이렇게 남편의 행동 하나하나에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한다면 남편의 노예입니다. 개가 산책을 할 때 자기 마음대로 걷는 것 같지만 결국은 개목걸이를 쥐고 있는 주인을 따라다녀야 합니다. 주인 앞으로 갔다가 주인 뒤로도 갔다가 하지만 결국 주인이 가는 대로 따라다녀야 하잖아요. 사람도 순간순간은 자기가 주인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주인으로 살려면 그 목걸이를 잘라야 해요. 여러분은 그 목걸이를 스스로 자기 목에 걸고 '나를 끌고 다니십시오.' 하고 그 끈을 남편한테, 아내한테, 자식한테 줍니다. 심지어는 하느님한테, 부처님한테 주고 '나의 주인이 되십시오.'라고 해요. 이게 바로 종의 처지가 되는 거예요.

부처님은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수행은 모든 일을 ‘어떻게 내가 주인으로 살아갈 것인가’의 관점으로 보는 것입니다. 종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불교 용어로 ‘중생’이라고 해요. 주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붓다, 또는 부처’라고 합니다. 부처는 어떤 특별한 존재가 아니에요. 어떤 상황에 처하든, 그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선택하고,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는 사람입니다."

"많이 혼난 기분입니다. 말씀해 주신 것처럼 사소한 것에 흔들리지 않고 제 삶의 주인이 되어 열심히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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