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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Q&A 게시판

AI(인공지능) 시대, 아이에게 어떤 교육을 시켜야 할까요?

작성자자연|작성시간24.03.17|조회수44 목록 댓글 0

AI(인공지능) 시대, 아이에게 어떤 교육을 시켜야 할까요?

“저는 4살 된 딸아이가 하나 있는데 한국의 여느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양육과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AI(인공지능)가 큰 시대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데 앞으로의 사회가 어떻게 변화할지 감히 상상조차 안 갑니다. 앞으로 30년 뒤에 저희 아이가 사회에 나가게 되었을 때 현재 직업의 대부분이 소멸하거나 AI로 대체되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현재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미래를 위해 어떤 교육을 시켜야 하고, 어떤 관점으로 양육해야 할까요?”


“질문자가 보기에 현재 우리나라에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인구가 얼마 정도 된다고 생각합니까?”

“퍼센트로 봤을 때 약 10퍼센트가 채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인 조선시대 말엽쯤 대부분의 사람이 주업으로 삼던 일이 무엇이었을 것 같습니까?”

“농업이었습니다.”

“질문자의 말대로라면 200년 전에 주업으로 삼던 농업 인구의 90퍼센트가 현재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 생각할 때 ‘주업으로 삼던 농업이 사라지면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걱정을 했을 것 같아요, 안 했을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살고 있잖아요.”

“그렇긴 하죠. 하지만 저는 AI시대가 도래했을 때 우리 딸이 어떤 직업을 가지는 것이 좋을지 부모로서 걱정되는 마음입니다.”


“조선 시대에 미래 산업 사회가 올 것을 대비해서 아이들한테 어떤 교육을 시킬 것인지 고민하고 살았을 것 같아요? 그 시대의 사람들이 아무리 머리를 굴려본들 요즘 시대의 여러 직업과 기술력에 대해 상상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 태어나면 다들 잘 적응해서 살아갑니다. 특별히 이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신출귀몰하거나 특수한 교육을 받아서 잘 적응하고 사는 게 아닙니다. 그 시대에 태어나면 그 시대에 맞게 살아지는 거예요. 일본에 태어나면 다 일본말을 하게 되고, 한국에서 자라면 한국말을 하게 되고, 베트남에서 살면 베트남말을 하면서 살게 되는 거예요. 꼭 누가 가르쳐서라기보다 스스로 적응해서 사는 겁니다.

조선 시대 사람들이 보기에 포클레인 같은 중장비로 땅 파고 집 짓고, 자동차가 먼 길까지 데려다 주고, 기계로 농사짓는 모습을 본다면, 사람이 할 일이 아무것도 없겠다고 여기겠죠. 산업혁명이 일어나던 초반에는 어땠어요? 방직 공장에서 더 이상 사람의 힘이 아닌 기계의 힘으로 모든 생산물을 만들게 되니 기계에 저항하는 러다이트 운동(Luddite運動)이 벌어졌죠. 그랬는데 지금 어떤가요? 산업 사회 초기보다 월등하게 효율적인 기계가 나왔음에도 우리는 이렇게 잘 살고 있지 않습니까? 손톱에 색칠해 주고 먹고사는 사람, 마사지해주고 먹고사는 사람, 머리카락 다듬어 주고 먹고사는 사람 등 다들 무언가를 하며 잘 살고 있습니다. 미래에 뭘 해서 어떻게 먹고살지에 대해서는 지금 알 수도 없을뿐더러 그때가 되면 다 적응해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스마트폰이 생긴 지가 10년도 훨씬 지났는데 저를 비롯한 나이 많은 사람들 중에는 사용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요즘 태어난 아이들은 세 살만 되어도 스마트폰을 사용할 줄 알아요. 인간의 적응력이란 게 그런 거예요. 태어난 시대 상황에 맞게 살아지는 겁니다. 만약 현대 사회에 태어난 아이를 뉴기니 원시림에서 살게 한다면 원시 사람으로 살게 될 겁니다. 원시림에서 태어난 아이를 현대 사회에 데려와서 살게 하면 현대인으로 살게 되고요. 인간은 환경에 적응해서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미래에 대해서는 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를 키울 때 미리 걱정하고 예측해서 교육의 방향을 잡겠다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한 거예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들한테 어떤 교육을 시켜야 미래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에게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제가 어릴 때는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방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동생이 태어나면 갓난아기도 키우고 했습니다. 이렇게 자라면 전천후가 되는데, 요즘은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오로지 공부만 하라고 가르칩니다. 공부만 하면서 자라난 아이들은 할 줄 아는 것이 자신이 공부한 부문에만 한정되어 있어요. 만약에 운전하는 방법만 공부해서 운전밖에 못 한다면 나중에 자율 주행 자동차가 나타났을 때 낭패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미래를 위한 교육이라면 특정한 기술을 가르치기보다 오히려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예전처럼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는 등 뭐든지 할 줄 아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학교 교육은 미래 사회에 적응해서 살아가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모든 교육 내용을 세분화해서 오직 전공 분야에만 특출 나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은 마치 사람을 기계 부속품과 같이 교육시키는 일과도 같습니다. 미래 사회는 어떻게 변화할지 모르기에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걸림 없이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을 한정적인 교육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집에서건 밖에서건 뭐든 할 수 있도록 교육했을 때 미래 사회에 더 잘 적응해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스님이 되어서 많은 경험을 하며 살았습니다. 제가 해 온 공부는 시험을 보기 위해서나 학위를 따기 위한 공부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에 필요한 것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그때그때 필요한 공부를 했습니다. 만약에 제가 대학에서 전공 분야를 공부하거나 유학을 다녀오는 방식으로 공부를 했다면 지금처럼 즉문즉설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것처럼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 변화하는 사회에 잘 적응하고 살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교육시키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자꾸 특수한 교육을 시키려고 하지 말고 생활 속에서 이것저것 경험하게 하는 것이 미래 사회를 준비하는 가장 좋은 교육입니다.”

“예, 감사합니다.”


“지금 학교 교육이 무너져가고 있는데 여러분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조선조 말엽에 과거 제도가 없어져서 서당이 다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평민들이 다녔던 선교사들이 세운 소학교는 현대에 와서 교육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교육도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여러분들은 학교에서 공부 1등 하고, 박사 학위를 받고, 유학을 보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런 교육들은 더 이상 창의성이 없습니다. 그리고 요즘 웬만한 정보는 인터넷에 검색하면 다 나오기 때문에 이런 교육으로는 앞으로 미래 사회에 대응하기가 어려워요.

앞으로는 의료인과 법조인의 역할도 점점 줄어드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계 하나만 차고 있으면 인공지능이 실시간으로 진찰해서 약 먹을 시간을 알려주고, 혈압을 체크해서 조심해야 할 음식도 알려주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지금 판사들이 판결문을 쓸 때 초안을 인공지능에 맡겨서 법률적으로 잘못되었는지 먼저 확인한다고 합니다. 아직은 의사나 판사 같은 직업들이 사회적인 권위가 있어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점점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의사를 많이 양성하겠다고 난리인데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의사를 양성하는 게 과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의사가 부족한 것보다 의사들이 돈 많이 벌리는 곳으로 몰려서 생긴 문제가 더 큽니다.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것은 돈을 많이 벌 수 없으니까 성형이나 미용 등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쪽으로 의사들이 많이 몰려있는 거예요. 이런 불균형 때문에 의료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의사 양성이 꼭 필요하다고 해도 한 번에 그렇게 많은 수를 교육해 낼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은 상황이고요. 그렇다면 조금씩 양보해서 올해는 500명 내년에는 1,000명 이렇게 점진적으로 양성하는 쪽으로 서로 타협을 해야 하는데, 한쪽은 무조건 밀어붙이고, 한쪽은 무조건 안 된다고 하니 결국 피해는 국민만 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혼란이 반드시 나쁜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옛날에는 의사가 자기 역할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부족하니 간호사한테 그 역할을 좀 맡기게 되거든요. 실제로 미국은 수간호사가 되면 어느 정도 의사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의사들이 독점하고 있는 영역들이 현재와 같은 혼란 시기를 계기로 간호사들에게 일부 넘어가게 되겠죠. 이처럼 모든 문제는 꼭 나쁘다고만 볼 수 없습니다. 합의를 하면 좋겠지만 합의를 못해도 또 그 속에 있던 다른 불합리한 문제가 해결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부분은 아주 나빠지거나 어떤 부분은 그 덕택에 좋아지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세상을 너무 단기간으로 보지 말고 넓은 눈으로 길게 봐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제일 좋다고 여기는 직업인 의료인과 법조인 관련 직업의 인기가 얼마나 오래갈까요? 앞으로 10년이 갈지 20년이 갈지 아무도 모릅니다. 20년 후에 그 직업들이 지금과 같은 사회적 권위를 갖고 있을지에 대해서도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거기에 매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물론 그렇다고 당장 내일 그런 직업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아이가 그 직업을 좋아하면 괜찮은데, 안 좋아하는 걸 억지로 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부모의 마음이 좀 열려 있어야 합니다. 부모들은 자신이 학교 다닐 때 주변에서 공부 열심히 해서 의사가 되거나 변호사가 되어서 돈 많이 버는 모습 밖에 보고 들은 게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아이도 무조건 그렇게 공부시키는 것밖에 모르는 거예요. 여러분 중에 20년을 내다볼 줄 아는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 병드는 건 학생들입니다. 시대가 바뀌는데 기성세대가 과거에만 꽉 사로잡혀 있으니까 아이들만 힘들어지는 거예요. 이런 현상이 갈수록 더 심해질 겁니다. 그러니 어른들이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요즘도 한문을 열심히 공부하면 그 나름대로 직업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모든 직업이 다 없어지는 건 아니에요. 아직도 서당이 필요합니다. 고전을 연구하려면 한문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처럼 필요는 하지만 전체적인 수요는 줄어들 것입니다. 어떤 미래가 되더라도 농사짓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옛날 농법과는 다르게 농사를 짓게 되겠죠. 그래서 농사가 어쩌면 다른 직업보다 더 좋아질 수도 있어요. 그러니 너무 아이들에게 짜인 틀만 고집하지 마세요. 부모가 너무 강제로 공부를 시키니까 오히려 공부가 더 하기 싫어지는 겁니다. 안 그래도 공부가 하기 싫은데 옆에서 누가 게임을 하면 그게 얼마나 재미있어 보이겠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자꾸 게임과 SNS 쪽으로 빠져드는 거예요. 만약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서 함께 놀기도 하고 공부도 재밌게 한다면 아이들은 공부에 흥미를 갖게 될 겁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학교 갔다 와서 숙제한다고 앉아 있으면 저희 아버님이 작대기를 가져와서 마룻장을 때리면서 ‘야, 이놈의 자식아. 공부하면 돈이 생기나? 밥이 생기나? 당장 일하러 가라’ 고 야단을 치셨어요. 그래서 제가 불평을 하면 아버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일하고 싶은데도 지게가 없어서 일을 못 했다. 삽이 없어서 일을 못 했다. 낫이 없어서 일을 못 했다. 땅이 없어서 일을 못 했다. 야 이놈아, 그런데 너는 땅도 있고 낫도 있고 다 있는데 왜 일을 안 하느냐?’

이처럼 옛날 어른들은 공부하는 걸 보면 논다고 생각하셔서 몰래 숨어서 공부해야 했어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공부가 제가 어릴 때 강제로 해야 했던 일과 똑같은 것 같아요. 부모들이 ‘야, 이놈아 책이 없나? 방이 없나? 선생이 없나? 다 제공해 주는데 왜 공부를 안 하느냐?’ 이렇게 야단을 치니까 아이 입장에서는 공부가 중노동인 거예요. 이해가 되세요? 제가 어릴 때 노동과 똑같은 것이 요즘 아이들에게는 공부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도망가려고 하는 거예요.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 는 속담처럼 여러분들도 학교 다닐 때는 남학생을 쳐다보거나 여학생을 쳐다보며 놀러 다녔잖아요. 그래 놓고는 지금 자녀가 남자친구를 만나거나 여자친구를 만나면 막 야단을 치거든요. 마치 자기는 어릴 때 안 그랬던 것처럼요. 이처럼 요즘 교육이 너무 아이들을 규격화시켜서 가두어 놓는 방식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저항하는 겁니다. 아이들이 인형도 아니고 사람인데 어떻게 저항을 안 하겠어요? 아이들이라고 공부하면 좋은 것을 왜 모르겠어요? 사춘기가 되면 남자가 눈에 들어오거나 여자가 눈에 들어오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여러분도 다 경험해 봤잖아요.

학교 다닐 때 착실한 아이들이 교직에 가니까 대부분의 교사들이 ‘학생은 착실해야 한다’ 이런 생각만 하게 되는 겁니다. 학교 다닐 때 사고도 좀 치고 이런저런 경험도 많이 해본 사람이 교사가 되면 아이들이 사고를 치거나 말썽을 피워도 다 감안을 해줄 수가 있는데 본인도 착실했고 친구들도 착실했고 동료 교사들도 다 착실하니까 아이들이 공부를 안 하거나 농땡이를 부리면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아니 학생이 왜 저래?’ 이렇게만 생각하니까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너무 좁게만 보지 말고 생각의 틀을 조금 더 넓게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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