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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Q&A 게시판

행복한 기분이 오래가지 않아요

작성자자연|작성시간24.04.14|조회수2 목록 댓글 0

행복한 기분이 오래가지 않아요

“작년 초에 유튜브로 스님의 즉문즉설을 계속 보다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가 많이 변하게 되었고 6개월을 정말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감사한 마음에 봉사를 해보고 싶어서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정토회 회원이 된 지 이제 한 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들뜨고 행복했던 기분이 오래갈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마음자리가 어지러워지면서 시비심도 자주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패턴을 세 번 정도 거치다 보니까 요즘은 기쁨도 없고 괴로움도 없고 너무 덤덤한 상태입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지금도 충분한데 굳이 봉사 활동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작년에 깨달은 것 같았는데 그게 망상이었을까요?”

”우선 즉문즉설을 듣고 좋아졌다니까 축하를 드립니다. 그런데 기분이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하는 것이 되풀이되는 것은 깨달음이 아니라 윤회입니다. 기분이 좋은 것은 어떤 상황이 바뀌면 곧 나빠질 수 있으므로 기분 좋음이 오래 유지될 수가 없습니다. 즉 지속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분 좋음을 행복으로 삼으면 반드시 기분 나쁨이라고 하는 괴로움이 따라옵니다. 즉 윤회하는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러니 기분이 좋아도 ‘지금 이 순간에 잠시 좋을 뿐이다’ 이렇게 편안하게 살펴야 합니다. 기분이 나쁠 때도 ‘지금 이 순간에 잠시 기분이 나쁠 뿐이다’ 하고 살펴야 해요.

기분이 좋고 나쁜 것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습관에 의한 하나의 반응입니다. 채를 갖고 북을 때리면 소리가 나고, 안 때리면 소리가 안 나듯이, 그냥 하나의 반응일 뿐이에요. 이런 반응에 놀아나게 되면 희로애락(喜怒哀樂)에 빠지게 됩니다. 반면에 이런 반응에 빠져들지 않고 ‘그냥 반응할 뿐이다’ 하고 살펴볼 수 있게 되면 윤회의 고통에서 점점 벗어날 수 있습니다.


법문을 자주 들어서 모든 게 다 해결되는 것 같고 깨달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아직 해탈의 길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는 반증입니다. 부처님께서도 6년 동안 고행을 하실 때 수시로 마왕이 나타나서 ‘깨달음이란 없어’ 하며 수행을 멈추도록 유혹했다고 경전에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또 깨달음을 얻은 뒤에도 마왕이 이렇게 유혹했다고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내가 깨달아서 지금 편안하면 됐지, 뭐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괴로운 것에 신경을 쓰냐? 얘기해 봐야 그 사람들은 못 알아듣는다. 그러니 너는 지금 열반에 드는 것이 좋으리라.’

이런 경전 속 표현들을 보면 부처님도 아직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지 못했을 때 이런 번뇌가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런 모든 마왕의 유혹을 극복하시고 평생 동안 고통받는 사람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길을 안내하셨습니다. 깨달음을 통해서 자신의 괴로움에서 벗어났고, 또한 다른 사람들의 괴로움을 들어주는 일을 하며 평생을 사셨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수행’과 ‘전법’이라고 표현합니다.

질문자가 법을 만나서 어쨌든 괴로움에서 좀 벗어나고 기분이 좋아졌다는 것이 나쁜 건 아니에요. 그런데 기분이 좀 좋아진 것을 수행의 성취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잘못된 관점입니다. 마치 내가 뭔가 사고 싶은 것을 못 사서 괴로워하다가 그것을 살 수 있게 되니까 기분이 좋아져서 ‘이제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하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조금 지나면 그 기분은 다시 가라앉게 됩니다.

물론 별로 기분이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이 한 마리 토끼나 다람쥐처럼 살겠다는 것도 괜찮아요.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 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런데 사람으로 태어나서 한 마리 다람쥐보다 못할 정도로 괴롭게 사니까 스님이 다람쥐라도 되라고 말하는 것이지, 다람쥐처럼 사는 것이 사람의 삶은 아니잖아요. 다람쥐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으니까 한 마리 다람쥐처럼이라도 살라고 한 겁니다. 즉 괴롭지 않게 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다람쥐보다 한 단계 높은 정신력을 가졌으니까 자신의 삶을 편안하게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욕심내지 않고 편안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부탄에 와서 많은 사람들을 돕고 있지만, 이 일을 하면서 너무 힘들고 괴롭다면 자기 수행이 안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마음공부와 명상만 하고 사람들이 옆에서 죽든 말든 신경도 안 쓴다면, 그것 역시 또 다른 이기주의에 불과합니다.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가운데 나도 편안한 것을 ‘자리이타(自利利他)’라고 해요. 나도 편안하고 남도 편안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보살의 길입니다. 이럴 때 괴로움 없는 상태가 지속가능합니다.

괴로움이 어느 순간에 없어져 버리거나 멈추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에 처해도 잠깐 반응을 하기는 하지만 금방 알아차려서 거기에 구애받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입니다. 좀 직설적으로 말하면, 질문자는 마치 깨달음이라도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든 것이지 진실로 법을 깨달은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조금 더 수행을 하면서 봉사활동도 같이 해보세요.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다 보면 다시 옛날로 돌아가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도 그냥 한 때의 기분이었네’ 하는 생각이 들어서 방황하기도 하는데요. 양파 껍질을 벗기듯이 이런 단계를 몇 번 거치면서 좋았다 나빴다 하는 가운데 어느 정도 시간이 경과하면 점점 마음이 편안한 상태가 됩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꾸준히 수행과 봉사를 하면, 기분이 좋거나 기분이 나쁜 것 때문에 크게 괴롭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그냥 작은 물결처럼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상태로 나아가게 될 거예요.”

“제가 불교를 알기 전에는 안 되는 일에 매달리거나, 제가 노력한 것보다 더 바라거나, 남의 일에 관여하느라 괴로웠습니다. 지금은 다람쥐 수준이 되어서 옆 사람이 호두알을 갖고 있어도 내가 쥔 도토리에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괴로움이 없으니까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왕 인연이 됐으니까 보살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마음을 내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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