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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툼을 화합으로, 원효의 화쟁사상

작성자자연|작성시간25.04.28|조회수25 목록 댓글 0

“한국 불교의 전체 역사 속에서 한국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스님이 누구일까요? 바로 원효 스님을 압도적인 1위로 뽑습니다. 원효는 신라에 출연한 제2의 부처라 불릴 정도였습니다. 원효의 핵심 사상은 화쟁사상(和諍思想)입니다. ‘화쟁(和諍)’이라고 할 때 ‘쟁(諍)’이라는 말은 싸운다는 뜻입니다. 쟁을 화합하는 사상이 화쟁사상입니다. 지금 세계 어디에 내어놓아도 이보다 더한 평화 사상은 없다고 할 정도로 훌륭한 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원효는 ‘화쟁국사(和諍國師)’로 불리었습니다. 그 이유는 원효가 쓴 글인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원효가 쓴 글의 제목 마지막 부분에 ‘논(論)’이라는 글자를 붙였다는 건 사람들로부터 ‘보살(菩薩’)이라는 칭호를 받았다는 걸 말해 줍니다. 불법에는 경장(經藏), 율장(律藏), 논장(論藏), 이렇게 삼장(三藏)이 있습니다. 경(經)은 부처님의 말씀이고, 율(律)은 부처님의 실천 지침이며, 논(論)은 위대한 선지식이 썼다는 걸 말합니다. 보통 사람이 쓴 글에 논(論)이라고 붙이지 않습니다. 정말로 잘 썼다고 하면 소(疏)를 붙입니다. 소(疏)를 붙여도 굉장한 글입니다. 그러니 논(論)이라고 붙였다는 건 부처님의 법문에 준하는 대우를 했다는 걸 말해 줍니다.

다툼을 화합으로, 원효의 화쟁사상

그러면 십문화쟁론이란 무엇일까요? 당시에는 당나라가 세계 문명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중국에 많은 불교가 들어와서 각각의 종파(宗派)가 형성이 됐습니다. ‘이것이 최고의 진리다.’ 하는 주장들이 각 종파에서 나왔던 것이죠. 그중 대표적인 것이 화엄종, 법화종, 열반종의 주장이었습니다. 그 외도 많은 종파의 주장이 있었는데 크게 나누어서 13개 정도의 주장이 나왔습니다. 이 13개 종파가 자기의 것이 최고의 진리라고 경쟁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최고다.’ 하고 주장하는 종파가 서로 다툰 것입니다.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은 다툴 필요가 없음을 논하며 나온 것이 화쟁(和諍) 사상입니다. 원효는, 각 종파의 요점인 ‘종요(宗要)’를 뽑아 보니 서로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겁니다.


쉽게 얘기하면, 인천 사람이 부처님께 ‘서울 가려면 어디로 갑니까?’ 하고 물으니까, 동쪽으로 가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강릉 사람이 물으니 서쪽으로 가라고 하고, 수원 사람이 물으니 북쪽으로 가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이 제각각 자기 종파에서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서울 가는 길은 동쪽일까? 서쪽일까? 북쪽일까?’ 이렇게 서로 다투며 헤매고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지도를 딱 펼쳐 놓고 보면 동쪽으로 가도 서울에 도착하고, 서쪽으로 가도 서울에 도착하고, 북쪽으로 가도 서울에 도착한다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표현이 동쪽, 서쪽, 북쪽이라 하지만 모두 서울로 가기 위한 방편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처님의 말씀이 모두 한 곳을 가리키고 있다는 걸 알면 다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부처님의 말씀은 깨달아서 부처가 되라는 얘기입니다. 법화경에도 이런 말이 나옵니다.

‘승(乘)에는 성문승(聲聞乘), 연각승(緣覺乘), 보살승(菩薩乘), 이렇게 삼승(三乘)이 있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두 부처 되어 성불하라는 일불승(一佛乘)을 말한다. 오직 다른 길은 없고 부처되라는 하나의 길밖에 없다.’

이것을 ‘회삼귀일(會三歸一)’이라고 합니다. 세 갈래의 길이 하나로 통일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원효는 십문화쟁론을 쓴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중도(中道)’이며 금강경에서 말하는 ‘무유정법(無有定法)’입니다.


서로 다른 주장을 할 때 갈등을 푸는 방법

오늘날 남한과 북한의 주장도, 또는 각 정당의 주장도 다 중도의 가르침에서 보면 각자 사물의 한 측면을 얘기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인정해야 서로 대화를 나눌 수가 있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이 산은 동산이요.’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이 산은 서산이요.’ 할 때, 둘 중 누가 맞느냐 하는 식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한 사람은 이 동네에 사니까 동산이라고 하는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은 저 동네에 사니까 서산이라고 하는 겁니다.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산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산을 보고 서로 다르게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을 꿰뚫어 아는 것이 통찰력이고 지혜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쓴 글이 십문화쟁론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나라가 남북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도 화쟁적 관점에 서야 합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정부, 두 개의 정당 사이에 갈등이 생겼을 때 ‘누가 옳고 그르냐?’ 하는 관점을 갖고 접근하면 갈등을 풀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향해서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가?’ 하는 화쟁의 관점에서 봐야 서로 주장이 달라도 대화와 타협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래야 국민을 위한 것인지,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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