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하는 마음과 이해하는 마음은 어떻게 다른가요?
“평소 스님의 즉문즉설을 통해 제 삶을 돌아보며 많은 지혜를 얻고 있습니다. 저는 부산에서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의 선택이나 태도를 보면, ‘저러면 나중에 힘들어지겠다.’라고 짐작될 때가 많아졌습니다. 실제로 시간이 지나면 예상했던 대로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상대는 그저 나와 다를 뿐이다’라고 여기지 않고, 자꾸 그 사람의 선택이나 태도를 평가했습니다. 더 혼란스러운 건, 예상대로 그 사람이 힘들어졌을 때 제 마음도 함께 불편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것이 상대를 위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내 기준으로 상대를 통제하려는 것인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습니다. 타인의 삶이 어느 정도 보일 때, 그것을 그냥 ‘다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맞을까요? 아니면 보이는 대로 판단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걸까요? 이런 판단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상대를 바라보려면 어떤 연습을 해야 할까요? 타인의 삶을 판단하는 이 마음이 진정 상대를 위한 것인지, 제 기준으로 상대를 통제하려는 마음에서 오는 것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질문자가 예수님이나 부처님 같은 성인인가요?”
“아닙니다.”
“그런데 왜 다른 사람을 위한다고 말하나요.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밖에 모릅니다. 그것이 인간이에요. 남을 위한다고 해도 결국 다 자기를 위한 것이고, 모두 자기 관점에서 살아갈 뿐이에요. 이렇게 분명히 알면 질문할 거리도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대중 웃음)
“내가 아내를 좋아한다면, 이것은 내 욕구입니다. 아내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그저 나의 감정일 뿐이에요. 만약 정말로 성인처럼 누군가를 대하고 싶다면, 좋아하는 마음이 아니라 이해하는 마음을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해하는 마음을 내면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마음도 없고, 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죠. 그런데 좋아하는 마음은 다릅니다. 내가 좋아하는 만큼 상대가 돌려주지 않으면 바로 미워지고, 복수하고 싶어집니다.
어떤 젊은 여성이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했어요. 아내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버릴 만큼 헌신적인 남자였기에 그 사람과 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학창 시절부터 알고 지낸 남자 친구가 아내를 찾아왔어요. 이성 관계가 아니라 그저 오래된 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온 일행이 급한 전화를 받고 먼저 자리를 뜨는 바람에 둘만 남아 대화를 조금 더 하게 됐어요. 바로 그 순간 남편이 집에 들어왔습니다. 이때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수록 화를 낼까요, 사랑하지 않을수록 화를 낼까요?”
“사랑할수록 화를 냅니다.”
“그래요. 남편은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이렇듯 좋아하는 마음은 그만큼 위험한 거예요. 저도 누가 ‘스님, 정말 좋아요!’ 하면 조심합니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나를 미워할 일도 없고 실망할 일도 없어요. 오히려 ‘스님 팬입니다!’ 하고 몹시 좋아하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사진을 찍어주지 않으면 돌변해서 원수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 마음은 물을 필요도 없이 전부 자기중심적인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자비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이해하는 마음이에요. ‘저 사람은 이것 때문에 화가 났구나’, ‘저 사람은 저것 때문에 저렇게 행동하는구나!’ 이렇게 이해하는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만일 이해까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상대를 존중할 줄은 알아야 해요. 존중은 나와 다른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겁니다. ‘저 사람은 저렇구나’ 하고 인정하는 거예요. 존중이 먼저이고 그다음이 이해예요. ‘저 사람은 저럴 수밖에 없었구나’ 이렇게 이해하는 마음을 내면 미운 마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서로 좋아하는 남녀가 있다고 해봅시다. 이해하는 마음이 있을 때는 상대의 형편을 보고 기다려 줄 수 있어요. 상대가 어려워 보이면 돕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만 있을 때는 그렇지 않아요. 빨리 결혼하고 싶은데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오히려 짜증을 내게 됩니다. 그러면 질문자의 경우는 어떨까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입니다.”
“그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에요. 다만 인간의 마음이 원래 그렇다는 겁니다. 저는 누군가 ‘저희 결혼을 축하해 주세요’라고 요청하면, 선뜻 ‘결혼 축하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 결혼이 진정 축하할 일인지 아닌지는 지나 봐야 알 수 있어요. 지금은 기쁘게 결혼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원수가 되어 후회하는 경우도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말을 할 때, 단순히 좋아하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사랑이라는 말을 깊이 들여다보면 결국에는 그 끝에 있는 자신의 욕망을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는 친구를 사귈 때 ‘이 사람이 의리가 있는가’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동업자를 구할 때는 ‘신용이 있는가’를 중요하게 보고요. 그런데 결혼 상대자는 어떻습니까? 여러 가지 중에 딱 한 가지만을 중요하게 보나요, 아니면 열 가지를 다 따져보나요? 대부분 열 가지를 다 따져봅니다. 인물과 성격, 집안과 학벌까지 다 괜찮아야 합니다. 왜 이렇게 온갖 조건을 따지는 걸까요? 그건 한 사람을 붙잡아서 평생 그 덕을 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결혼할 배우자를 찾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첫눈에 반했다는 건, 내가 원하는 여러 조건을 한꺼번에 갖춘 사람으로 느껴졌다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서로의 만남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는 드물어요. 흔히 말하는 '세기의 결혼'이 대부분 실패로 끝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만남에는 상대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에요. 결국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이해하는 마음, 그것이 인간관계에서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다만, 그렇게 못한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 사회에서 이렇게 모든 것이 얽혀서 온갖 갈등이 일어나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이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을 먼저 내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질문자가 어떤 손님을 보고 ‘꼴을 보아하니 일이 잘 안 풀리겠다.’ 싶었는데, 막상 그렇게 되니까 ‘거봐라, 내 예측이 맞았네!’ 하고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사실은 그 사람만 문제가 아니라 질문자도 마찬가지예요. 서로 피장파장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상대를 판단하는 데 그치지 말고, 그런 나 자신을 보면서 ‘너도 똑같다.’ 하고 자기를 함께 돌아보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결혼할 때 ‘나도 이기심으로 하고, 상대도 이기심으로 한다’라고 인정한다면, 그건 처음부터 사랑이 아니라 둘 다 이기심인 거예요. 그렇다고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원래 결혼이라는 건 다 이기심으로 하는 거예요. 다만 이기심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니까 갈등이 생기는 것뿐입니다. 처음부터 서로 이익이 맞아 결혼한다고 생각하면, 상대가 이해관계를 따지는 것을 기분 나쁘게 여길 이유가 없습니다. 나도 그렇게 하니까요. 그런데 이해관계로 만나놓고는 사랑으로 만났다고 자꾸 착각하니까 갈등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제가 쓴 『스님의 주례사』라는 책이 있어요. 그 책 제목을 처음에 어떻게 지었는지 아세요? 제가 ‘사랑 좋아하시네!’라고 지어서 출판사에 줬습니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아이고 스님, 그렇게는 도저히 안 됩니다’라고 해서 제목이 바뀌었어요. 하지만 책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영락없이 ‘사랑 좋아하시네!’입니다. (웃음) 마찬가지로 질문자도 그 사람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일이 아니라, 그와 나, 우리 모두에게 그런 속성이 있음을 알고 서로 협력하면 큰 문제 없이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질문드리겠습니다. 이해와 존중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이해했는데, 그런 마음을 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제가 지금까지 알아듣지 못할 헛소리를 했네요. (대중 웃음) 이 세상 사람은 모양이 서로 같아요, 달라요?”
“다릅니다”
“성격이 같아요, 달라요?”
“다릅니다”
“취향이 같아요, 달라요?”
“다릅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걸 바로 알 수 있는데, ‘무얼 어떻게 하면 다른 줄 알 수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어떡하나요. 눈이 있으면 다르게 보이니 다른 줄 알고, 귀가 있으면 다르게 들리니 다른 줄 알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 즉문즉설을 들은 사람들에게 ‘스님 법문을 듣고 느낀 소감이 어떻습니까?’라고 물어보면 같은 말을 할까요, 각자 다르게 말할까요? 감동했다는 사람도 있지만, ‘스님은 자신만 결혼 안 하면 되지, 왜 우리 결혼생활까지 비난하시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똑같은 얘기를 들어도 다 이렇게 각기 달리 들리고 달리 느껴지는 거예요. 그것을 ‘너는 왜 그렇게 말하니?’라면서 비난하면 안 됩니다. 저 사람은 ‘저렇게 느꼈구나’, ‘저렇게 들었구나’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른 것을 어떻게 하면 다른 줄 압니까?’라는 질문 자체가 모순인 거예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면, 사람은 저마다 다릅니다. 그런데 왜 질문자는 그 사실을 모를까요? 그건 자기 생각에 빠져서 눈을 감고 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말은 ‘그 사람이 옳다’라는 뜻이 아니에요. 다만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집에 늦게 들어온 남편에게 아내가 화를 냈다고 해봅시다. 이때 남편 입장에서 아내를 이해한다는 건 ‘늦게 들어온 내가 잘못했다’도 아니고 ‘화를 낸 아내가 잘못했다’도 아닙니다. 나는 늦게 들어올 만한 이유가 있었고, 아내도 화를 낼 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예요. 아내는 자기 나름대로 남편에게 잘한다고 저녁 식사를 준비했을 수도 있어요. 아내가 정성을 들였을수록 더 화가 날 겁니다. 그러나 만약 아내가 남편을 전혀 기다리지 않았다면 화가 나지 않을 거예요. 아내가 다른 친구와 때마침 즐겁게 전화하고 있었다면, 남편이 늦게 들어올수록 아내는 오히려 좋을 겁니다. 그때는 남편이 일찍 들어오는 게 하나도 반갑지 않아요. 아내가 화가 난다는 건, 남편을 기다렸기 때문에 화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남편은 ‘아내가 화가 났구나’, ‘아내 입장에서는 화날 만하구나’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겁니다. 그것이 잘 안된다면, 그건 자기 생각에 빠져 있기 때문이에요.”
“네, 잘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