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들의 목숨을 건 신념은 자각일까요, 세뇌일까요?
“역사를 보면 전태일 열사나 유관순 열사처럼 신념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이들이 있습니다. 그건 개인의 자각에 의한 것일까요, 아니면 그 시대나 특정 집단의 세뇌에 의한 것일까요? 만약 세뇌에 의한 것이라면 그 희생은 가치가 없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한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이 자라 온 환경을 보라.’라는 말이 있어요. 가정환경, 친구 관계, 사회환경을 보면 그 사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인간은 역사적·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볼 수 있어요. 이에 대한 반론도 있는데, 같은 환경에서도 전혀 다르게 자라는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사람마다 타고난 특성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개인의 특성을 불교에서는 ‘인(因)’이라고 하고, 그 시대적·사회적 조건을 ‘연(緣)’이라고 합니다. 개인의 특성을 콩의 씨앗이라고 비유하면, 콩의 씨앗은 밭에 심어야 싹이 틉니다. 밭에 심지 않고 공중에 매달아 두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싹이 나지 않아요. 이렇듯 인(因)과 연(緣)이 결합해야 어떤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두 열사도 만약 그들이 일제 강점기나 열악한 노동환경 속이 아니라, 왕족이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그런 삶을 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렇듯 한 사람의 삶은 시대의 영향과 개인의 특성이 함께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어요. 같은 시대에 태어났다고 해서 모두가 똑같은 삶을 사는 것은 아니에요. 각자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반대로 같은 특성을 지닌 사람이라 하더라도 어느 시대에 태어나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은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어떤 개인도 시대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질문에 대한 답은, 그 사람의 특성과 그에게 주어진 조건이 서로 맞물려 작용한 결과라고 볼 수 있어요. 마치 씨앗과 밭이 만나야 싹이 트고 열매를 맺는 것처럼, 개인의 자각과 시대적 상황이 함께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그렇다면 두 열사의 경우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세뇌가 잘 되는 특성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시대를 고찰해서 자발적으로 그런 신념을 갖게 된 것일까요? 혹은 둘 다일까요?”
“질문자가 말한 것처럼 두 가지 경우가 다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동의 일부 무슬림 학교에서 어릴 때부터 종교적으로 강한 영향을 받고 자란 아이는, 자라서 전사(戰士)가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 신념은 그런 조건 속에서 형성된 것이고, 우리가 보기에는 일종의 세뇌처럼 보일 수 있어요. 오늘날 북한이나 일부 종교 단체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부처님 역시 출가한 것이 어떤 세뇌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스스로 자각해서 흔들림 없이 자기중심을 갖고 살아간 분이에요. 이처럼 자기희생을 감수한 독립운동가들 가운데에도 세뇌에 의해 행동한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스스로 자각해서 행동한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경우가 다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을 스스로 아는 방법이 있을까요?”
“다른 사람의 경우는 알기 어렵더라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죽어서 좋은 곳에 가기 위해 싸우겠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세뇌의 영향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천당에 가려는 것도 아니고, 부처가 되려는 것도 아니다.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이 길을 가는 것이 옳다.’라고 느낀다면 그것은 결이 좀 다릅니다. 그때는 그것을 희생이라고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어떤 보상이나 복을 구하지도 않은 채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어요. 이런 경우라면 자각의 관점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복잡해 보여도 스스로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어느 쪽인지 알 수 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