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늘 무슨 일인가를 제대로 못하고
헛수고가 많은 건
하루가 너무 짧아서다
너무 짧아서 도무지 뭘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시작도 하기 전에 늘 끝이다
오늘도 아침부터 도배한다 와서
자리 비켜주러 문 열고 나갔을 뿐인데
또 하루가 다 갔다
내가 원한 도배 작업이지만
하루가 너무 짧아서 또 빈손이다
억울하게 집엘 들어섰는데
오후 여섯 시도 아니고 오후 네 시까지 일하고 간 집
벽들마다 새 벽이다
천장마다 새 하늘이다
하루가 얼마나 길었던지
하루 만에 새집을 지어놓고 갔다
2
'살면서 가장 중요한 색깔은
옷이나 소파나 침대 색깔이 아니라
벽지 색깔입니다.'
,라고 벽지가게 사장님은 주장한다
벽지는 또 다른 가족
가족이되 미리 보고 고를 수 있는 가족입니다
미리 보고 골라도
어린이 자라 어떤 어른 될지 모르듯이
작은 샘플로 볼 때와 벽 전체 도배 뒤의 벽지는
같아도 같지 않습니다
샘플조각에선 분명 비둘기색이었는데
벽에 바르면 갈매기색이 되거나
낮에는 불투명이었는데
저녁에는 형광빛이 됩니다
벽지 고를 때야말로
접힌 양산이나 이불 펼쳐보듯이
머릿속에 벽을 펼쳐보는
상상력이 필요하겠구나
,라고 벽지 가게 사장님이 말한 건 아니지만
- 카프카식 이별, 문학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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