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아짐의 복
마태복음 5장 1-4절
2026년6월14일 주일낮 11시
인도,설교 선형수 목사
주은혜교회 진천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강해지라"고 말합니다.
더 많이 가져야 하고, 더 높아져야 하며, 상처받지 않는 단단한 사람이 되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속삭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선포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은 세상의 가치관을 뒤집어 놓습니다.
예수님은 산에 오르셔서 제자들을 향해 첫 메시지를 던지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진짜 행복(복)은 **‘가난함’**과 **‘애통함’**이 복의 시작이라고 선언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예수님의 **‘산상설교(산상수훈)’**는 **‘하늘나라(천국) 백성의 삶의 기준과 윤리’**를 가르칩니다.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러 오셨음을 선포하십니다.
외적인 행위만 표면적으로 지키는 바리새인들의 의를 넘어 ‘마음의 중심’과 ‘참 사랑’을 실천하는 의를 말합니다.
마태복음 5장은 4개의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천국 백성의 정체성과 구체적 삶의 행동 양식을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5:1-12는, 예수님이 산에 오르셔서 제자들을 향해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복 있는 사람’인지 8가지 성품을 선언하십니다.
세상이 말하는 물질적, 외적 조건의 복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누리는 영적인 복을 다룹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입니다.
마태복음 5:13-16은 '소금과 빛'으로서, 하나님 백성의 사회적 사명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팔복의 성품을 가진 신자들이 세상 속에서 어떤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지 설명하십니다.
세상의 소금으로 사는 것은, 부패를 막고 맛을 내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소금은 맛을 내는 기능을 잃으면 버려집니다.
세상의 빛으로 사는 것은, 어둠을 밝히고 숨길 수 없는 존재로 행하는 일입니다.
착한 행실을 통해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17~20은 율법의 참된 정신과 완성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율법의 파기가 아닌 **‘완성’**에 있음을 선포하십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형식주의적인 의를 뛰어넘는, 율법의 본질 즉, 사랑과 공의를 지키는 의를 강조하십니다.
마태복음 5:21 - 48은 ‘여섯 가지 반박제명(Antitheses)’으로 구체적인 삶의 윤리를 제시합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독특한 어법을 사용하십니다.
모세의 율법을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이 좁게 해석했던 것을, 예수님은 마음의 동기와 내면의 영역까지 확장시켜 완전하게 재해석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1절은 ‘산상설교’의 도입부입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록된 복음서입니다.
마태는 구약 성경과 유대 전통을 배경으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말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산’과 ‘율법’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모세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께 율법(토라)을 받아 백성에게 전했듯이, 예수님은 이제 갈릴리의 한 ‘산’에 올라가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법을 선포하십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모세를 능가하는 신적 권위를 가진 새로운 입법자로 묘사합니다.
본문 청중은 외곽의 **'무리(Crowd)'**와 핵심인 **'제자들(Disciples)'**로 나뉩니다.
이는 산상설교가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단한 이들이 살아내야 할 '하나님 나라의 시민 헌장'입니다.
마태복음 5장 1절 원문주해
헬라어 원문 (NA28)
Ἰδὼν δὲ τοὺς ὄχλους ἀνέβη εἰς τὸ ὄρος· καὶ καθίσαντος αὐτοῦ προσῆλθαν αὐτῷ οἱ μαθηταὶ αὐτοῦ.
직역
"무리들을 보시고 산으로 올라가셨다.
그리고 그가 앉으셨을 때 그의 제자들이 그에게 나아왔다."
단어별 주해
1. Ἰδὼν (idōn)
동사: ὁράω (보다)
형태: 부정과거 능동 분사 남성 단수 주격
직역:
"보시고", "보신 후에"
예수께서 단순히 시각적으로 본 것이 아니라 무리들의 상태를 인식하고 반응하셨음을 암시합니다.
2. δὲ (de)
접속사
의미:
"그리고"
"그런데"
"한편"
앞 문맥(4:25)의 큰 무리와 자연스럽게 연결합니다.
3. τοὺς ὄχλους (tous ochlous)
ὄχλος = 무리, 군중
복수 대격
직역:
"그 무리들을"
4장 마지막에 언급된 갈릴리, 데가볼리, 예루살렘, 유대, 요단강 건너편에서 온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4. ἀνέβη (anebē)
동사: ἀναβαίνω
부정과거 능동 직설법 3인칭 단수
의미:
"올라갔다"
산이 단순한 지형이라기보다 계시와 가르침의 장소로 기능합니다.
구약에서: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감
하나님께서 산에서 율법을 주심
마태는 예수를 새 모세(New Moses)로 묘사합니다.
5. εἰς τὸ ὄρος (eis to oros)
직역:
"그 산으로"
특이한 점은 "어느 산"인지 특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단순한 지리적 산이라기보다 신학적 상징으로 봅니다.
마태복음에서 산은 중요한 계시의 장소입니다.
예:
산상수훈(5장)
변화산(17장)
지상명령(28장)
6. καθίσαντος αὐτοῦ (kathisantos autou)
동사: καθίζω
부정과거 능동 분사 속격
속격절(Genitive Absolute)
직역:
"그가 앉았을 때"
유대 랍비들은 공식적으로 가르칠 때 앉았습니다.
따라서 이는 단순한 자세가 아니라:
"교사로서 권위 있는 가르침을 시작하심"
을 의미합니다.
7. προσῆλθαν (prosēlthan)
동사: προσέρχομαι
부정과거 능동 직설법 3인칭 복수
의미:
"다가왔다"
"가까이 왔다"
마태복음에서 자주 등장하는 제자도의 동사입니다.
8. οἱ μαθηταὶ αὐτοῦ
직역:
"그의 제자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산상수훈은 무리에게 주어진 말씀인가, 제자에게 주어진 말씀인가?"
5:1은 우선적으로 제자들이 예수께 가까이 왔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직접적 청중은 제자들이며,
무리는 주변에서 듣고 있는 구조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문법 구조
본문은 두 개의 주요 동사로 이루어집니다.
Ἰδὼν ... ἀνέβη
무리를 보시고 → 산에 올라가셨다
καθίσαντος αὐτοῦ ... προσῆλθαν
그가 앉으시자 → 제자들이 나아왔다
구조적으로:
무리를 보심 ↓ 산에 올라가심 ↓ 앉으심 ↓ 제자들이 가까이 옴 ↓ 가르침 시작 (5:2)
새 모세 모티프로 마태는 예수를 모세와 유사하게 묘사합니다.
마태복음 5장 2절 (그리스어 원문)
καὶ ἀνοίξας τὸ στόμα αὐτοῦ ἐδίδασκεν αὐτοὺς λέγων
직역하면:
“그리고 그의 입을 열어 그들을 가르치시며 말씀하셨다.”
단어별 주해
1. καὶ (kai)
접속사
“그리고”, “이에”, “그리하여”
앞 구절(5:1)에서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 앉으신 장면과 연결한다.
2. ἀνοίξας (anoixas)
동사 ἀνοίγω(열다)의 부정과거 능동 분사
남성 단수 주격
직역:
“열고”, “열어서”
성경에서 “입을 열다”(ἀνοίγειν τὸ στόμα) 는 단순히 말을 시작한다는 의미 이상의 관용구이다.
구약의 히브리적 표현을 반영하여:
엄숙하고
권위 있으며
중요한 가르침을 선포할 때
사용된다.
따라서 단순히 “말하기 시작했다”보다
“권위 있게 말씀을 선포하셨다”
라는 뉘앙스가 있다.
3. τὸ στόμα αὐτοῦ
τὸ = 정관사 “그”
στόμα = “입”
αὐτοῦ = “그의”
직역:
“그의 입을”
헬라어에서는 “입을 열다”가 하나의 관용적 표현으로 기능한다.
4. ἐδίδασκεν (edidasken)
동사 διδάσκω(가르치다)
미완료 과거 능동 직설법 3인칭 단수
중요한 부분이다.
미완료 과거는 단순히 “가르쳤다”가 아니라
“계속 가르치고 계셨다”
“가르치기 시작하여 상당 기간 가르치셨다”
라는 진행적·반복적 의미를 가진다.
산상수훈(5–7장)이 단순한 한두 마디가 아니라 체계적인 교훈임을 암시한다.
5. αὐτοὺς (autous)
“그들을”
목적격 복수
직접적으로는 제자들을 가리키지만(5:1),
산상수훈 전체 문맥에서는 주변 무리들도 청중에 포함된 것으로 이해된다.
6. λέγων (legōn)
동사 λέγω(말하다)의 현재 능동 분사
“말하면서”
“이르시되”
헬라어에서 흔히
“가르치시며 말씀하셨다”
라는 의미를 형성한다.
이후 3절부터 시작되는 팔복의 내용을 도입하는 역할을 한다.
문법적 구조
원문 구조:
καὶ ἀνοίξας τὸ στόμα αὐτοῦ
ἐδίδασκεν αὐτοὺς
λέγων
직역:
“그리고 그의 입을 여시고,
그들을 가르치고 계셨는데,
말씀하시기를…”
즉,
입을 여심(분사)
가르치심(주동사)
말씀하심(분사)
의 순서이다.
신학적 의미
마태는 5:2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단순한 설교가 아니라 권위 있는 교훈(διδασκαλία) 으로 제시한다.
특히:
“입을 열어”(ἀνοίξας τὸ στόμα) → 엄숙한 선포
“가르치셨다”(ἐδίδασκεν) → 권위 있는 교사로서의 예수
“말씀하시되”(λέγων) → 산상수훈의 공식적 시작
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마태복음 5:2는 단순한 서술문이 아니라,
예수께서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율법과 삶의 원리를 권위 있게 가르치기 시작하시는 선언적 도입부
라고 이해할 수 있다.
"심령이 가난한 자"의 의미
이 표현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다.
1. 겸손한 사람
가장 오래된 해석 가운데 하나.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나는 스스로 의롭지 못합니다."
라고 인정하는 사람.
2.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람
πτωχός의 본래 의미를 고려할 때
가장 강력한 해석이다.
즉,
"나는 영적으로 파산한 사람입니다."
라고 인정하는 사람.
3. 구약적 배경
특히
이사야 66:2
"심령이 가난하고 통회하며 내 말을 떨며 받는 자"
와 매우 유사하다.
또한
이사야 34:18,
이사야 57:15 등에서도
하나님은 겸손하고 상한 심령을 가진 자를 가까이하신다.
따라서 유대인 청중은 이 표현을 듣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자
를 떠올렸을 가능성이 높다.
4. ὅτι (hoti)
접속사
"왜냐하면"
"이는"
팔복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구조이다.
복의 이유를 설명한다.
5. αὐτῶν (autōn)
"그들의"
강조 위치에 놓여 있다.
직역하면
"그들의 것이다."
6. ἐστιν (estin)
현재형
"이다"
"있다"
미래형이 아니다.
즉,
"장차 받을 것이다"
가 아니라
"이미 그들의 것이다"
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7.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직역:
"하늘들의 나라"
마태복음 특유의 표현이다.
다른 복음서는 주로
"하나님의 나라"
라고 말한다.
유대인의 경건한 관습상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기보다
"하늘"
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의미상으로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
를 뜻한다.
문장 구조
원문:
Μακάριοι οἱ πτωχοὶ τῷ πνεύματι
ὅτι αὐτῶν ἐστιν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구조:
복 선언
→ 심령이 가난한 자들
이유
→ 하나님 나라가 이미 그들의 것
신학적 핵심
예수님은 세상이 복되다고 여기는 사람들부터 시작하지 않으신다.
세상은
부유한 사람
강한 사람
성공한 사람
을 복되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첫 번째 팔복에서
"자신의 영적 빈곤을 인정하는 자"
를 복되다고 선언하신다.
이 구절의 핵심은
"나는 하나님 없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5장 3절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산상설교)을 여는 첫 번째 복(팔복 중 제1복)의 말씀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개역개정)
1. 헬라어 원문 및 직역
Μακάριοι οἱ πτωχοὶ τῷ πνεύματι, ὅτι αὐτῶν ἐστιν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Makarioi hoi ptochoi tō pneumati, hoti autōn estin hē basileia tōn ouranōn.)
직역: "복되도다, 영 안에서 가난한 자들이여!
왜냐하면 하늘들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2. 핵심 단어 주해 (Exegesis)
① 복이 있나니 (Μακάριοι, 마카리오이)
어원: '마카리오스'(\mu\alpha\kappa\alphá\rho\iota\alpha\varsigma)의 복수형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이 단어는 신들이 누리는 세상 근심 없는 상태, 혹은 외부의 환경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신적인 행복'**을 의미했습니다.
주해: 성경에서 이 복은 단순한 물질적 풍요나 일시적인 감정적 행복(Happiness)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주어지는 종말론적이고 영적인 복입니다.
예수님은 복의 선포로 설교를 시작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누릴 특권을 강조하십니다.
② 가난한 자들은 (οἱ πτωχοὶ, 호이 프토코이)
어원: 헬라어에서 '가난'을 뜻하는 단어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페네스(\pi\epsilon\nu\eta\varsigma): 가진 게 적어서 열심히 노동해야 먹고 사는 '상대적 빈곤'.
프토코스(\pi\tau\omega\chi\sigma^{\prime}\varsigma): 완전히 파산하여 남의 도움 없이는 절대 살 수 없는, 구걸할 수밖에 없는 '절대적 빈곤'.
주해: 본문에 사용된 단어는 후자인 **'프토코스'**입니다.
즉, 여기서 가난한 자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단 1%의 영적 생명도 유지할 수 없음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만을 전적으로 구걸하는 **'영적 파산자'**를 의미합니다.
구약의 '아나빔'(하나님만 의지하는 가난하고 겸손한 자들) 사상과 맥을 같이 합니다.
③ 심령이 (τῷ πνεύματι, 토 프네우마티)
어원: '프네우마'(\pi\nu\epsilon\hat{\upsilon}\mu\alpha, 영, 호흡)의 여격(Dative) 형태입니다.
문법적으로는 '영의 영역에서', '영에 관하여'로 해석됩니다.
주해: 누가복음 6장 20절은 그냥 "가난한 자"라고 기록하여 사회경제적 약자를 일차적으로 가리킨 반면, 마태복음은 이를 **'영적인 차원'**으로 명확히 규정합니다. 이는 물질적인 가난 자체를 미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아무런 공로도, 의(義)도 없는 죄인임을 깊이 자각하는 **'마음과 영의 상태'**를 뜻합니다.
④ 천국이 (ἡ βασιλεία τῶν οὐρανῶν, 헤 바실레이아 톤 우라논)
어원: 직역하면 **'하늘들의 나라'**입니다.
마태복음의 유대인 독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을 경외함으로 피했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 대신 '하늘들의 나라(천국)'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주해: '바실레이아'는 영토적인 개념보다 **'통치, 주권, 다스림'**을 의미합니다.
즉,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가 임한다는 뜻입니다.
⑤ 그들의 것임이요 (αὐτῶν ἐστιν, 아우톤 에스틴)
주해: 여기서 '에스틴'(\epsilon\sigma\tau\iota\nu)은 현재 시제입니다.
팔복의 다른 복들(위로를 받을 것이다,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등)은 미래 시제를 사용하여 종말론적 약속을 강조한 반면, 제1복(천국)과 제8복(천국)은 '현재 시제'를 사용합니다.
즉, 심령이 가난한 자는 미래에 천국에 갈 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 이 자리에서 천국(하늘의 통치)을 누리게 된다는 선언입니다.
마태복음 5장 3절은 인간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을 제시합니다.
인간이 스스로 의롭다고 믿거나(바리새인처럼), 영적으로 부유하다고 착각하는 한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은 **"하나님, 저는 아무것도 가질 것이 없고, 스스로를 구원할 능력이 전혀 없는 영적 파산자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라고 고백하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붙드는 자에게 지금 당장 임하는 천국의 축복입니다.
마태복음 5장 4절은 예수님의 산상수훈 중 두 번째 복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원문: \text{μακάριοι οἱ πενθοῦντες, ὅτι αὐτοὶ παρακληθήσονται.}
독음: 마카리오이 호이 펜둔테스, 호티 아우토이 파라클레테손타이.
직역: 복되도다, 애통해하는 자들이여!
왜냐하면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카리오이 (\text{μακάριοι}) – 복되도다
의미: 단순히 환경이나 감정적인 '행복(Happy)'을 넘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자들이 누리는 신령하고 영적인 상태를 뜻합니다.
주해: 세상의 가치관으로는 애통하는 것이 불행이지만, 예수님의 나라(천국)에서는 이들이 이미 복이 있는 자들이라고 선포하십니다.
호이 펜둔테스 (\text{οἱ πενθοῦντες}) – 애통하는 자들
어원: '펜데오(\text{πενθέω})'의 현재분사형으로, **'지속적으로 슬퍼하고 통곡하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헬라어에서 슬픔을 나타내는 단어 중 **가장 강한 슬픔(예: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 통곡함)**을 표현할 때 쓰입니다.
주해: 여기서의 애통은 단순한 신세한탄이나 개인적인 불행으로 인한 슬픔이 아닙니다.
영적 애통: 첫 번째 복인 '심령의 가난함'에서 이어지는 감정입니다.
자신의 영적 파산 상태(죄와 허물)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가슴을 치며 회개하는 슬픔입니다.
세대적 애통: 죄로 가득 찬 세상,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임하지 않은 현실을 바라보며 아파하는 탄식입니다.
호티 아우토이 (\text{ὅτι αὐτοὶ}) – 왜냐하면 바로 그들이
주해: '호티'는 이유(왜냐하면)를 나타내고, '아우토이'는 강조 인칭대명사입니다.
즉, 세상의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그 애통하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위로를 독점적으로 받게 될 것임을 강조합니다.
파라클레테손타이 (\text{παρακληθήσονται}) –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어원: '곁으로 부르다', '격려하다'라는 뜻의 '파라칼레오(\text{παρακαλέω})'의 미래 수동태입니다.
성령을 뜻하는 '보혜사(파라클레토스)'와 어원이 같습니다.
주해 (신적 수동태): 이 단어는 문법적으로 '신적 수동태(Divine Passive)'입니다.
즉, 문장에는 행위자가 생략되어 있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위로하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현재적 위로: 지금 삶의 자리에서 성령을 통해 주시는 죄 사함의 평안과 위로입니다.
종말론적 위로: 장차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영원한 천국의 위로(계 21:4)를 바라보는 미래형입니다.
"자신의 영적 무력함과 죄에 대해 통곡하는 자는 복이 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곁에 두시고 눈물을 닦아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죄를 아파하며 애통해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십자가 은혜와 성령의 참된 위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2. 애통하는 자의 복: 하늘의 위로 (4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애통’으로 번역된 **‘펜데오(pentheo)’**는 야곱이 아들 요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혹은 자식을 잃은 부모가 가슴을 찢으며 우는 것과 같은 슬픔과 통곡입니다.
이 애통은 자신의 죄악을 바라보며 겪는 가슴 찢어지는 아픔입니다.
"내가 또 하나님을 아프게 해드렸구나, 내 안에 아직도 이런 죄성이 가득하구나"를 깨닫고 우는 눈물입니다. 더 나아가 죄로 인해 고통받는 이 땅의 이웃들과 무너진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마음으로 함께 우는 눈물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죄를 통회하며 우는 자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이 눈물 뒤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영원한 **‘하늘의 위로’ 즉 성령님의 만지심과 죄 사함의 은혜**가 찾아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철저히 가난해질 때 천국을 경험합니다.
주님 앞에서 애통해할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위로를 맛보게 됩니다.
주님 은혜는 낮은데로 임합니다.
주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다고 고백하는 ‘심령이 가난한 자’, 그리고 이웃의 아픔을 품고 기도하는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런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과 자녀들, 자손들 되길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