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사람
본문: 마태복음 5장 5절 ~ 12절
2026년6월21일 주일낮 11시
인도 설교 선형수 목사
주은혜교회 진천
마태복음 5장 1~12절은 예수님의 공생애 첫 번째 대설교인 '산상수훈(산상설교)'의 시작부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참된 복과 성품을 다루는 '팔복(Eight Beatitudes)' 선언입니다.
배경 (1~2절):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자 제자들이 나아옵니다. 입을 열어 가르치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8가지 성품과 복 (3~10절):
심령이 가난한 자 (3절): 자신의 영적 무력함을 깨닫는 자 → 천국이 그들의 것임
애통하는 자 (4절): 죄와 세상의 아픔에 대해 슬퍼하는 자 → 위로를 받을 것임
온유한 자 (5절):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통제된 성품을 가진 자 →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6절): 하나님의 의를 간절히 사모하는 자 → 배부를 것임
긍휼히 여기는 자 (7절): 타인을 불쌍히 여기고 자비를 베푸는 자 →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
마음이 청결한 자 (8절):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중심이 깨끗한 자 → 하나님을 볼 것임
화평하게 하는 자 (9절): 평화를 만드는 자(Peacemaker) →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 (10절): 하나님의 뜻을 따르다 고난받는 자 → 천국이 그들의 것임
제자들을 향한 격려와 당부 (11~12절): 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받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하늘에서 상이 크며, 과거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세상 가치관의 전복: 세상이 말하는 복(부, 권력, 성공)과 정반대로, 영적인 낮아짐과 고난 속에서 진정한 하늘의 복을 발견하게 하십니다.
구원의 결과로서의 성품: 이 복들은 구원받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자들에게 나타나는 '성품과 특권'입니다.
천국의 현재성과 미래성: 첫 번째 복(3절)과 여덟 번째 복(10절)은 현재형("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으로 선언되어, 하나님 나라가 이미 믿는 자들에게 시작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나머지 복들은 미래형으로 완성될 천국의 복을 소망하게 합니다.
세상은 권력이 있거나, 많이 가진 자, 혹은 지식과 학문이 깊은 사람을 ‘성공한 사람’ 혹은 ‘복 받은 사람’이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선포하시는 복은 세상과 다릅니다.
온유한 자, 의에 주린 자, 긍휼히 여기는 자, 그리고 심지어 박해를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온유한 자의 복 (5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개역개정)
세상에서 '온유함'은 흔히 유약함, 나약함, 혹은 줏대가 없는 성격으로 오해받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프라에이스', 온유한 자 (그리스어: πραεῖς, Praeis)는 다른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야생마를 잡아다가 훈련시켜 야생의 힘은 그대로 있으되, 주인의 통제에 온전히 복종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즉,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통제된 힘(Strength under control)'**을 의미합니다.
야구에서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가 제구력이 있어야, 볼, 스트라이크를 골라 던질 수 있고, 팀의 승리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온유한 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혈기와 고집을 내려놓고, 그분의 말씀과 뜻에 온전히 길들여진 상태의 사람을 말합니다.
혈기와 고집이 앞서면 하나님이나 사람들의 공동체에서 쓰임받기 어렵습니다.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그리스어: κληρονομήσουσιν, Klēronomēsousin),
'기업으로 받다'는 말은 노력해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로서 합법적으로 '상속받는다'**는 뜻입니다.
온유한 자는 스스로 땅을 차지하려고 이 세상에서 칼을 휘두르지 않지만, 결국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 나라와 땅을 유업으로 받게 됩니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시 37:11)
시편 37편의 문맥을 보면, 악인이 판을 치고 불의한 자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 속에서, 불평하지 않고 여호와를 잠잠히 참고 기다리는 자를 '온유한 자'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은 이 구약의 약속을 가져와 천국 백성의 성품으로 선언하십니다.
팔복은 무작위로 나열된 것이 아니라, 영적 성장의 흐름을 갖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3절):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영적 파산자임을 깨닫습니다.
애통하는 자 (4절): 그 비참한 죄의 실상을 보고 가슴을 치며 슬퍼합니다.
온유한 자 (5절): 자신의 무가치함을 깨닫고 애통해한 사람은, 타인이나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목을 꼿꼿이 세우지 않습니다.
즉, **심령의 가난과 애통을 거친 사람이 도달하는 필연적인 열매가 바로 '온유함'**입니다.
따라서 온유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나를 비난하거나 무시해도 분노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거칠고, 당당하며, 목소리가 크고, 자신의 권리를 강하게 주장하는 자가 땅(권력, 재물, 명예)을 차지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반대의 선언을 하십니다.
세상의 정복자들, 알렉산더, 징기스칸, 나폴레옹 등은 총과 칼로 땅을 차지하려 했으나 결국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온유하셨던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온 천하를 얻으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이 땅에서도 만족과 감사를 누리며 살아가기에 이미 땅을 누리는 자로 사는니다.
또한 장차 완성될 새 하늘과 새 땅의 구성원으로 내세의 복을 누립니다.
마태복음 5장 5절은 자아를 주님께 온전히 굴복시킨 자 즉 온유한 자가 세상의 공격 속에도 낙심하지 않고, 결국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와 영토, 기업을 상속받게 됩니다.
승리, 영토, 기업은 각 신자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를 단단하게 누리며 사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 (6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Hungering and Thirsting for Righteousness): 단순히 적당한 배고픔이 아니라, 생존을 위협받는 극한의 굶주림과 갈증을 의미합니다.
의는 개인의 도덕적 정결을 넘어, 하나님의 통치와 공의가 이 땅에 실현되는 것, 그리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뜻합니다.
배부를 것임이요 (They shall be filled):
인간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께서 친히 그 갈망을 채워주실 것이라는 '신적 수동태' 표현입니다.
이 땅에서 영적인 만족을 누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완성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지금 내 삶의 자리에서 이루어져 가고, 주님 오실때 영원히 이어집니다.
방향성의 전환: 세상의 권력, 부, 명예가 내게 주어지거나, 주어지지 않거나, 변함없이 하나님의 뜻을 갈망하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은혜의 원리: 영적인 파산 상태(심령의 가난함)를 깨달은 자가 하나님의 의를 찾을 때, 아낌없이 채워주시는 은혜를 얻습니다.
사막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물 한 모금을 찾듯, 하나님의 뜻과 공의가 내 삶과 세상에 이루어지길 갈망하는 상태입니다.
세상의 물질과 성공은 그 방향성이 하나님께 있지 않다면, 채워도 목이 마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인생은 하나님께서 직접 주시는 영적인 만족감, 즉 ‘배부름’을 경험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와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 (7-8절)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7절("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은 타인에게 자비와 동정심을 베푸는 자가 하나님의 자비를 경험하게 됩니다.
긍휼 (그리스어: ἐλεήμονες, Eleēmones): 단순한 감정적 동정심을 넘어, 고통받는 자의 처지에 공감하고 실제 도움을 베푸는 행동입니다.
구약의 '헤세드'(언약에 기초한 신실한 사랑과 자비)와 맥을 같이 합니다.
인간이 타인에게 긍휼을 베풀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으로부터 무한한 긍휼(죄 사함과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베푸는 긍휼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의 증거입니다.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이 보상은 일차적으로 심판 날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자비와 용서입니다.
세상에서 자비를 베푼 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도 자비를 얻습니다.
본문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영적 무력함을 깨닫는 '내면적 상태'에서, 타인을 향한 '사회적·실천의 관계'로 확장됩니다.
마태복음 5장 8절("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은 내면의 순전함을 가진 자가 누릴 영적 특권입니다.
성경에서 '마음'은 단순히 감정의 좌소가 아니라, 인간의 의지, 지성, 인격, 그리고 영적 삶의 중심입니다.
행동의 근원이 되는 내면입니다.
청결(Pure)의 의미: 헬라어 *'카타로스'(katharos)*는 두 가지 차원입니다.
도덕적 순결: 죄와 더러움이 없는 상태입니다.
단일한 목적(나뉘지 않은 마음):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정금처럼,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위선으로 분열되지 않고 헌신된 상태입니다.
겉치레에 치중했던 바리새인들과 대조됩니다.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Shall see God):
마음이 깨끗한 자는 영적인 눈이 열려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손길과 임재를 경험합니다.
주님 오실때 그분의 영광을 얼굴과 마주하듯 대면하는 복을 누립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와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자의 복 (9-11절)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마태복음 5장 9절("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는 평화를 적극적으로 만들어가는 권세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그리스어: εἰρηνοποιός, 에이레노포이오스)의 의미
단순히 갈등이 없는 상태(소극적 평화)를 유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행동입니다.
'샬롬'은 온전함, 건강함,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의미합니다.
즉, 인간과 인간, 더 나아가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화목을 힘쓰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의 의미
하나님의 성품을 닮음: 유대적 표현에서 '~의 아들'은 그 아버지를 똑같이 닮은 자를 뜻합니다.
평화를 만드시는 하나님의 사역에 함께 하여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 이심을 삶으로 증명합니다.
종말론적 인정: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당신의 진짜 자녀라고 공포하시고 인정해 주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화평(Peace-maker)케 하는 자는 단순히 갈등을 피하는 사람이 아니라, 죄로 인해 깨진 관계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회복시키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5장 10절("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은 예수님이 선포하신 팔복(八福)의 마지막 조항으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따르다 세상에서 고난받는 제자들에게 주어지는 위로입니다.
의(Δικαιοσύνη, 디카이오수네): * 여기서 '의'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입니다.
박해를 받은 자(Διωγμένοι, 디오그메노이):
그리스어 시제가 완료 수동태 분사로 쓰여, 과거부터 지속되어 온 박해의 영향 아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고난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제자의 삶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숙명임을 보여줍니다.
복이 있나니(Μακάριοι, 마카리오이):
세상적인 기준(부, 명예, 안락함)으로는 불행해 보이지만, 영원한 차원에서 가장 복된 상태에 있음을 선언하는 표현입니다.
수미상관(Inclusio): 팔복의 첫 번째 복(5:3, 심령이 가난한 자)과 마지막 여덟 번째 복(5:10)의 보상이 똑같이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로 일치합니다.
이는 팔복 전체가 '천국을 소유하는 삶'에 관한 이야기임을 나타내는 구조적 장치입니다.
현재시제 소유: 다른 복들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미래) 등 미래형 보상으로 표현된 반면, 10절은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ἔστιν, 현재형)"**로 선언됩니다.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자는 장차가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이 순간부터 이미 천국의 통치와 기쁨을 누리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다른 가치관으로 살 때 필연적으로 마찰(박해)이 일어날 수밖에 없음을 경고하는 동시에, 그 고난이 무가치한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고 있다는 증거(Sign)**임을 확증해 주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5장 11절은 예수님 때문에 박해와 모욕을 받는 제자들에게 주어지는 위로와 복의 선언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 5:11)
이 구절은 산상수훈의 '팔복(Eight Beatitudes)' 중 마지막 여덟 번째 복(10절)을 제자들의 삶에 적용한 선언입니다.
박해의 원인: "나로 말미암아"
기독교적 박해의 본질: 이 복은 단순히 세상에서 고난을 받거나 개인의 잘못으로 비난받는 것(참조: 벧전 4:15)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분의 의를 따르기 때문에 받는 박해만을 가리킵니다.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했듯, 그분을 따르는 자들도 미움의 대상이 되는 영적 현실을 반영합니다.
박해의 세 가지 형태
욕하고 (Revile): 언어적인 모욕과 비방, 사회적인 멸시를 뜻합니다.
박해하고 (Persecute): 신체적, 법적, 경제적 압박을 포함한 조직적이고 적극적인 괴롭힘을 의미합니다.
거짓으로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 (Say all kinds of evil against you falsely): 근거 없는 모함과 악성 루머, 명예훼손을 뜻합니다.
초기 교회 성장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식인종(성찬식을 오해)', '반역자'라는 거짓 모함을 자주 받았습니다.
역설적인 선언: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현재적 복의 상태: 예수님은 박해를 견디면 나중에 복을 '받을 것이다'가 아니라,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상태 자체가 이미 **'복이 있다(마카리오이)'**고 선언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소유자라는 증거: 세상의 가치관과 정반대로 행하고 있다는 증거이며, 그들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 나라에 속해 있음을 증명하는 표지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12는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며 핍박 속에서도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예수님의 선언으로, 산상수훈 중 팔복(八福)의 결론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개역개정)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고대 그리스어: Χαίρετε καὶ ἀγαλλιᾶσθε)
단순히 감정을 추스르는 수준이 아니라, '뛰어놀며 온몸으로 크게 기뻐하라'는 역동적인 명령입니다.
박해라는 극한의 고난 속에서 역설적인 기쁨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기뻐해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여기서 '상(μισθός)'은 인간의 공로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하늘'은 장소적 개념을 넘어 하나님의 주권과 영원성을 상징합니다.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박해받는 제자들의 정체성을 구약의 위대한 선지자들의 반열로 격상시키시는 말씀입니다.
엘리야, 예레미야 등 참된 선지자들이 당했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은, 제자들이 지금 올바른 신앙의 길을 걷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영적 교훈
상급의 역설: 그리스도인의 보상은 이 땅의 물질이나 명예가 아닌, 하나님과의 영원한 사귐과 하늘의 상급에 있습니다.
고난의 재해석: 제자들에게 닥치는 박해는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참된 천국 시민의 길을 가는 영적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예수 때문에 욕을 먹고, 손해를 보고, 오해를 받을 때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시선은 이 땅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나라를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복들은 우리가 노력해서 얻어낼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그분의 다스리 안에 있을 때 우리 안에서 맺어지는 하늘 백성의 인격입니다.
세상 힘을 부러워하지 말고, 주님이 인정하시는 복을 소유하여 이 땅에서 하늘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