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과 말씀에 이끌린 삶

작성자선형수 주은혜|작성시간20.04.26|조회수39 목록 댓글 0

성령과 말씀에 이끌린 삶

사도행전 20:17-37


2020년4월 26일 주일낮 11시

인도설교 선형수 목사 주은혜 교회 진천


서로 인사합니다 반갑고 고맙습니다


사람은 만남과 함께 함, 헤어짐이 모두 아름다워야 한다.

오늘 본문은 성도의 이별의 모습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구나 하는 감동을 주는 본문이다.


예루살렘에 오순절까지 도착하려는 일정에 촉박하여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들르지 않고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만나서 고별설교를 했다.

20:17-27 에베소에서 자신의 활동을 회상했다.

28-31 장로들에게 부탁했다.

32-35 미래를 의탁했다.

앞으로 닥칠 예루살렘에서 자기가 당할 수난을 예기하여 숙연하고 격정에 차 있다.



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보내어"

45킬로 되는 거리를 사람이 가서 에베소 장로들을 초청했으니 최소 3일 후에 만났다.

급한 여정과 앞서 일어난 소요 사건의 재발을 막고자 했을 수 있다(19:23-41).

사도행전 19장에 은으로 우상을 장식하여 먹고 사는 우상 장사들이 많았다. 바울의 전도로 에베소에 예수 믿는 자들이 많아지고 우상을 사고 파는 자들이 적어지게 되었다. 복음 전도 위력이 에베소 사회에 상당했다. 그러자 데메드리오 라는 은세공 우상 장사가 앞장서서 사람들을 선동하고 폭동을 일으켰다. 19:22에 바울 사도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는 복음 을 전했다. 바울의 전도로 아데미 여신을 섬기거나 우상을 섬기는 일에 위협을 느꼈다.

데미드리오 라는 우상 장사 사장이 폭도들과 바울의 제자들을 잡고 큰 소동을 일으켰다.

바울은 그런 소동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밀레도에서 장로들을 만난 것일 수 있다.


18-27 에베소 전도 회고 간증이다.

18 "오매 저희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

바울은 자신의 실생활의 본을 보인 것을 말하고 에베소 장로들과 일정한 기간 여러번 만나고 교제하여 서로 친밀한 관계임을 말한다.

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겸손, 진실, 인내 이 세 가지가 바울의 목회 방법이었다. 겸손, 진실, 인내는 "주님을 섬기기 위함"이었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이 조종하여 소동을 일으키거나 어려움을 주었다(19:9, 13:45, 14:2, 19, 17:5, 13, 18:6등).

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회당이나 두란노 서원에서 공개적으로 가르쳤고, 사적으로 아굴라의 집 등에서 가르쳤다.

설교와 심방을 겸한 목회였다.

교회 예배당 예배와 가정 심방 예배가 균형을 이뤄야 성도의 영적 성장에 더욱 유익하다.

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바울이 전한 설교 내용은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었다.

죄를 짓는다 할 때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이다(시 51:4).

십계명을 주신 분이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회개는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고친다 돌이킨다는 말이다.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이 보내신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요 3:16).

하나님 아버지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셨다(막 1:15).

'유대인과 헬라인'은 전 인류를 표현한다(롬 1:14). 유대인과 이방인을 말한다.

22 "성령에 매임을 받아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었다."

바울은 다메섹에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성령에 붙들려서 복음을 전하는 인생을 살았다. 가는 것도(13:4), 가지 않는 것도(16:6) 성령의 지시대로 따랐다. 바울이 지금 예루살렘으로 가는 일도 성령의 지시로 가야 했다.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성령의 증거는 내적 계시(18:9의 환상), 경험(20:3,19등의 유대인 간계), 선지자들(21:4,11의 두로의 제자나 아가보) 등이다.

사도행전 18:9-10에 밤에 환상으로 주님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 말라. 침묵하지 말고 계속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아무도 너를 해치지 못하리라. 이 도시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주님께서 환상으로 직접 말씀하신 것이 성령의 내적 증거이다.

사도행전 20:3에 유대인들이 바울을 대적하여 음모를 꾸몄다.

행 20:19에 바울이 겸손, 눈물, 시련 가운데 주님을 섬길 때에 유대인들의 간계가 그에게 미쳤다.

유대인들이 각 도시마다 연계하려 사도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음모가 바울에게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전달되었다.

행 21:4에 바울 일행이 두로에서 일주일간 보낼때 제자들이 성령을 통하여 예루살렘에 가지말라고 만류했다.

행 21:11에 가이사랴의 빌립보 집에 머물 때 아가보 선지자가 성령이 가르치는 대로 말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바울을 묶어서 이방인들 손에 넘기리라"는 것이다.

그러자 형제 자매들이 더욱 바울을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만류했다.

성령의 가르치는 대로 제자들과 선지자가 예루살렘에서 바울이 해를 당할 것을 알았고 그것을 바울에게 말하며 제자들이 바울의 예루살렘 행을 만류했다.

그러나 바울의 뜻은 확고했다. "주 예수 이름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죽어도 좋다"(행 21:13)는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굴복하여 말했다.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성령의 역사는 주님의 뜻을 이루는데 합력하는 것이고 바울은 주님의 뜻을 이루고자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 것이다.

이것은 오늘의 신자들이 주님의 뜻을 이루고자 바울처럼 앞으로 향하는 삶을 사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 하노라"

사도 바울은 인생을 경주에 비유했다(고전 9:24-27, 갈 2:2, 빌 3:13-14 등).

주어진 사명을 경주처럼 힘써 완수하고 승리의 개가를 부르고자 함이다(딤후 4:7).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 곧 바울의 달려갈 길이었다.

그의 사명은 복음 전하는 일로 하나님과 사람에게 봉사하는 것이었다.

복음의 주제는 "그리스도에게 나타난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이다(고전 15:10).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인생을 바치고자 했다(고후 4:7, 빌 1:20-23).

25 "보라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지금은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줄 아노라"

바울은 자신의 고난과 순교를 예지하고 최후의 이별인 것을 밝힌다.

그리스도께서 순교당하는 마지막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과 비슷하다(막 10:32,45).

26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겔 3:18에 복음을 전하지 않아서 그 사람이 망하면 그 피의 책임이 전도자에게 있다. 전했는데 안믿고 망하면 그 피에 책임이 없다. 피는 생명이다.

우리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이다.

27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하나님의 뜻이란 구원의 전 계획을 말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모두 전했다. 그들이 멸망하면 그들이 복음을 믿지 않은 까닭이고 바울의 탓이 아니다


28-31 에베소 장로들에게 부탁하는 말이다.

28 "자기를 위하여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교회를 잘 섬겨 꼴을 먹이는 것은 자신을 먹이는 것이 된다.

28b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감독자는 장로와 동의어이다. 장로는 신분, 감독은 직책이다.

양떼를 보살피는 직책이다.

"치게"

먹이고 보살피는 목자의 직책이다.

29 "흉악한 이리"

유대주의자의 간악성과 영지주의 같은 이단 사상이다.

지금 신천지, 통일교 등이다.

이리들은 선량한 양들을 뺏고 찢고 죽인다.

30 "너희 중에서도"

거짓 교사들이 교회 안에서도 일어난다.

바른 믿음을 떠나서 사견을 내세우고 교회를 분열시키고 자기 당을 형성한다. 에베소 교회는 그런 이단이 일어났다(계 2:2).

밖의 이리보다 안에서 일어나는 거짓 교사가 더 무섭다.

31 "일깨어"

신앙 생활은 늘 깨우는 생활이다(마 24:42, 눅 12:40, 행 1:7).

밖에서는 이리가, 안에서는 거짓 교사가 일어나니 항상 일깨워야 한다.

"그레고리"가 γρηγορειτε (그레고레이테)에서 왔다(일깨우다).

고대 교부들이나 법왕들에 흔한 이름이 '그레고리'로 '일깨우는 자'라는 뜻이다.


32-35 결론으로 미래를 주님께 의탁하는 말이다.

32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인간을 변화시키는 일은 프로그램이 아니다. 그 시대의 정신이나 철학도 아니다. 광고나 영업도 아니다. 돈도 아니다. 오락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이 성도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게 하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주어진 책임을 다하고 이제는 주님께 의지한다.

성도는 주어진 일을 다하고 주님께 맡기는 삶을 사는 것이다.

세우사, 기업이 있게

'세운다'는 "집을 세운다"(엡 2:21), "건덕"(고전8:1)이다.

고린도전서 8장에서 바울은 먹는 것을 말한다. 우상 제물이나 고기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먹을 수 있다. 술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먹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먹는 것 때문에 다른 사람이 시험에 빠지거나 믿음이 연약해진다면 "먹지 않는다"는 것이 바울의 믿음의 삶이다. 신자는 먹고 입고 자고 생활하는 모든 것에 덕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바울은 말하고 있다.

'기업이 있게'(클레로노미안, κληρονομιαν)는 "제비, κληρος"를 뽑는다는 말이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을 여호수아 때에 제비를 뽑아 나누어 기업으로 삼았다

신약의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를 복으로 받는다(갈 4:1, 히 6:19).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를 세우고 천국의 예표가 된다.

그 말씀을 전하는 사람의 말과 행동을 보고 약한 신자들이 영향을 받게 된다.

33 은, 금, 예복

고대 중요 재산 목록이다(왕하 5:22).

바울은 물질을 탐하지 않았다.

34 이 손으로

바울은 성도들의 재물을 탐내지 아니하고 스스로 일을 하여 자급 전도를 했다(18:3, 고전 4:12, 살전 2:9).

바울은 없으면 스스로 일해서 전도하고 성도가 헌금하면 또 그것을 받아서 전도하고 생활했다.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살았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 했다. 섬기고 드리고 베푸는 성도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넘치게 된다.


35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바울은 스스로 그리스도를 본받음으로 교회의 본이 되었다(고전11:1). 먼저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은 뒤에 오는 신자들의 본이 된다. 좋은 본도 있고 나쁜 본도 있다. 가급적 좋은 본을 보이며 앞에 가는 삶을 사는 신자에게 복이 있다.

35b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누가복음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사람은 누구나 받기를 좋아하고 주기를 싫어한다.

그러나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축복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만민에게 영광을 받으셨다.

바울의 고별 설교 마무리가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 하는 말씀으로 마무리 한 것은 그것이 바울의 삶이고 그리스도의 삶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도의 복된 삶이기 때문이다.


36-37 바울의 설교가 끝난 후 같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사람끼리 입 맞추며 눈물로 작별하는 모습이다.

36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저희 모든 사람과 함께 기도하니

간곡한 기도의 모습이다(엡 3:15).

최후의 이별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특히 간곡한 심정이 된 것이다. 성도간의 이별의 좋은 본보기였다.

37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을 인하여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니라

입을 맞추는 것은 당시의 풍속이었다(롬 16:16). 목을 안고 입을 맞추는 것은 격정에 찬 것이다(눅 15:20, 창 33:4, 45:14등).

그들은 바울이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으므로(25절), 이렇게 입을 맞추고 근심으로 전송한 것이다.


결론

바울은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

그 도중에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별 설교를 했다.

바울은 하나님의 구원과 예수 복음 전하는 일에 인생을 드렸다.

재물을 탐하지 않고 주시는 대로 살면서 전도했다.

교회를 세우고 성도를 세우는 것은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에 평생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생을 살았다.

말씀을 사모하며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예수는 그리스도' 이심을 전하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길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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