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인을 부르시는 주님
베드로전서 3:18-22
2022년 3월 27일 주일낮 11시
인도,설교 선형수 목사
주은혜교회 진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한 영혼이라도 더 하나님 나라의 가족이 되길 원하신다. 성도의 가정과 자녀들, 자손들이 결혼하고 자녀들을 낳아서 믿음으로 기르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기여하는 일이다.
성도가 성도답게 살고 한 영혼 한 영혼에 대하여 관심과 연민을 갖고 대하는 것은 귀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베드로전서 3:18 KRV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 그의 죽으심은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함이었다.
"한번"이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단번에(헬, 하팍스)'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독특성(유일성)을 강조한 표현이다. 그리스도의 희생의 충분성과 반복 동물(구약) 제사의 부적절성을 대조시키는 표현이다.
'단번에(헬, 하팍스)'는 충분성과 완전성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목적은 완전하게 성취되었다.
그리스도는 그를 따르는 자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고난받았다. 의로운 자가 불의한 자를 위해 희생했다. 죄인들을 대신하여 흠없는 자가 고난받았다(벧전 1:19). 종의 의로움(사 53:11)과 그들(그가 위하여 고난 받는)의 죄성(sinfulness)이 대조되었다(Michaels, 202).
회심전 그리스도인 신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었고 화목함(화해)을 받아야 했다(참조: 1:14, 18b; 2:10, 25a; 4:3). "의로움"과 "불의함"은 착함과 나쁨의 익숙한 표현이다. 세상에는 그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마 5:45; 행 24:15).
예수님은 "의인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다(막 2:17; 마 9:13; 눅 5:32). 구원받기 전의 신자들은 하나님 앞에 "불의"하거나 "죄인들"이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신자들은 "의로운" 자라는 새로운 신분을 누리게 되었다(참고: 롬 5:6-8; 딤전 1:15; Michaels, 202-3).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베드로전서 2:19-20 KRV
고난을 받는 원인이나 동기는 다양하다. 어떤 사람은 잘못을 저지르고 벌을 받는 경우가 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일, 선한 일을 하다가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사람들은 선을 행한 것을 몰라주더라도 하나님은 알아주신다. 우리 주님은 택한 자들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 고난을 받으셨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2:21 KRV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다. 고난의 본을 보이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의 목적은 택함받은 자들이 구원을 얻게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6-8 KRV
주님이 우리를 대속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인의 자리에서 의인의 위치로 옮겨주셨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디모데전서 1:15 KRV
바울 사도는 구원의 감격을 말했다. 주님이 자신을 만나주시고 찾아와 구원해주지 않았다면 자신은 죄인 중의 죄인으로 살았을 것임을 고백했다.
주님은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다. 주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었다(벧전 1:19; 2:22-23; 4:1). 주님은 자신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께 오게 하셨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게 하셨다.
어둠에서 빛으로(2:9), 우상들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로(1:21) 나오게 하셨다(Michaels, 203).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요 보호자이시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요 보호자이시다.
"그는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성령 안에서 살리심을 받으셨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죽음과 부활을 말한다.
예수님이 "죽임 당하시고" "살리심을 받았다"는 표현은 신약 성경에서 자주 나온다(예: 막 8:31; 눅 24:7; 롬 6:10).
예수님이 "하늘로 갔다"는 표현은 상대적으로 덜 나온다. 딤전 3:16에 "영광중에 들려졌다"라는 표현이 있다.
"그리스도가 고난받고 혹은 죽었고…그리스도가 일어났다 혹은 살림 받았다…그리스도가 하늘에 갔다"는 일련의 표현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살았고 하늘에 그와 함께 올라갔음을 상기시킨다(Michaels,199).
그리스도는 "성령안에서 살아나셨다" 즉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다. 부활하신 주님은 하늘에 오르셨다. 그리스도는 우주 안의 모든 권세를 다스리신다(벧전 3:22, Michaels,199).
예수님은 땅에 계실 때 "가서 전하라" 혹은 "가서 말하라"고 하셨다(마 10:7; 눅 7:22). 부활 후에도 제자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셨다(막 16:15).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베드로전서 3:19 KRV
"피난처 안의 영들"(벧전 3:19)은 누구인가? 노아 홍수 때에 멸망당한 자들의 영혼들인가? 혹은 초자연적 존재들의 비행으로 세상에 홍수 심판이 온 것인가?
"그리고 그 상태에서 그가 갔다 그리고 피난처 안에 있는 그 영들에게 선포했다."(J. Ramsey Michaels, Texas: Word books, 1988, 205).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이에 이삼일의 시간이 있었다(Michaels, 204).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이에 예수님이 그 영들에게 선포하셨다(M., 204). "옥에 있는 영들" 혹은 "피난처 안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셨다. 죽은 자들에 대한 복음화이다(4:6; Michaels, 204).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
베드로전서 4:6 KRV
사실 죽은 자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것은 장로교(개혁주의) 가르침에서 생소한 내용이다. 복음은 산 자에게 전하는 것이다. 죽은 자를 위한 기도 혹은 망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천주교 가르침이다.
예수님은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누가복음 17:26 KRV)고 하셨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었다. 그 가운데 노아는 방주에 들어갔다. 그리고 다른 이들은 홍수 심판을 받아서 죽었다. 노아와 다른 이들의 차이는 무엇인가?
노아 역시 먹고 마시고 장가들었다. 이것은 인간의 보편적 삶의 방식이다. 그런데 노아에게 한가지 더해진 것이 있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세기 6:8 KRV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그의 말씀대로 방주를 만들었다. 수십년 이상 긴 세월에 걸쳐서 만들었을 것이다.
여러분과 제가 세상 사람들과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산다는 것은 노아가 방주를 짓는 삶을 산 것과 비슷하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고 하나님이 정한 때에 홍수 심판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멸망 당했다(눅 17:27; 마 24:38-39).
인자가 올 때 까지 사람들은 그저 먹고 마시고 장가 들면서 살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심판이 임한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그리스도 안에서 산 자들만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눅 24:30-31; 마 24:39-41; Michaels, 20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명 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베드로전서 3:20-21 KRV
노아와 그의 가족은 물을 통해서 구원을 받았다. 그래서 이제 세례가 당신을 구원한다(벧전 3:20-21). 이것이 베드로의 주장이다. 이것은 출애굽 백성이 갈라진 홍해를 건너 구원 얻는 것과 유사하다. 그래서 홍해를 건넌 것을 세례로 보기도 한다.
물 세례 자체에 구원의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주님으로 믿는 그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게 된다. 홍해를 건너는 물세례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홍해를 건넘으로 구원을 얻은 것이다.
하나님은 물로 세상을 심판하기 전에 "참고 기다리셨다." 그리고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 노아와 그의 가족 여덟 사람만 구원을 받았다. 그리스도인 신자들은 적다. 산 돌이신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사람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수가 많지 않다(벧전 2:4; 7-8). 방주를 만드는 때는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지금 신자들이 신앙 생활을 통하여 "영적인 집을 짓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요, 심판에서 살아 남는 길이요 기다림과 준비(성화)의 시간이다(2:5; 4:17).
베드로는 노아와 그의 가족이 방주를 통해서 물에서 건짐받은 것처럼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얻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Michaels, 201).
"피난처 안에 있는 영들에게"(혹은 감옥 안에 있는 영들에게; 벧전 3:19; Michael s, 206). 그리스도는 노아 시대 하나님께 불순종한 영들에게 까지 가셔서 복음을 전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우주적 주재권에 대한 베드로의 극적인 표현 방식이었다(Michaels, 206).
22절에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고 했다.
천사들, 권세들, 능력들도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다.
"영들"은 누구인가? 20절에 홍수전 "노아 시대에"라고 했다.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명 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베드로전서 3:20 KRV
그 영들은 홍수로 멸망당한 자들(Beare,172; Goppelt, 249-50; 재인용 Michaels, 206), 혹은 "하나님의 아들들(창 6:2)로서 "사람들의 딸들"과 비행을 저질러서 죄악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왔다(유대인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이해했다.; Dalton, Proclamation, 145-49; Brox, 171-74; 재인용 Michaels, 207). 혹은 두 그룹 모두 포함했다(Reicke, Spirits, 52-92; Windisch, 71; Selwyn, 198-99; 재인용 207).
개혁교회(장로교)에서 신자들이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거나 죽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진리로 받을 수 없다. 여기서 베드로가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주재권(주님되심)은 산 자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죽은 자의 세계에도 미치고 있음(현재, 과거, 미래)을 말하고자 했다.
"옥에 있는 영들" 혹은 "피난처 안에 있는 영들"에서 '옥' 혹은 '피난처'는 '퓨라케'(헬)의 번역이다. 계 18:2은 '퓨라케'를 '피난처'의 의미로 해석한다. '퓨라케'가 "안전"의 의미로 '감금' 혹은 '보호'의 의미 일 수 있다. "피난처 안에 있는 영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무덤 안에 장사된 약 2-3일 동안 영으로 가서 선포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참고: Michaels,209).
선포의 내용은 무엇이었나? 어디에서 선포가 행해졌나? 영들에게 '용서'와 '구속'을 선포했거나 혹은 '심판'과 '그리스도의 승리'를 전했다. 신약에서 '케뤼센'(헬)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의 선포 혹은 그의 제자들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복음을 선포할 때 쓰인 단어이다. '유앙겔리제인'(헬)은 '구속의 메시지'를 전하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베드로 전서에서 1:12, 25; 4:6에 쓰였다. '케뤼센'은 베드로전서에서 3:19에만 쓰였다. "그 영들"은 누구였나? 창세기 6:1-4의 타락한 천사들 혹은 홍수 심판 시에 멸망한 그 세대라는 해석은 의문이 남는다. 왜 그리스도는 그토록 생생하게 수천년 전에 일어난 사건들에 관심을 기울였을까? 혹은 왜 베드로는 그런 전통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졌나? "그 영들"이 "악"이거나 "부정한 영들"이었다면, 예수를 대적하는 것이었다면 그 연관성은 더욱 난해해진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권세로 귀신에 사로잡힌 자들을 자유케 하는 분이었다(Michaels, 210).
그 선포는 어디에서 이루어졌나? 그 악한 영들의 "옥" 혹은 "피난처"는 어디였나? 달톤(Dalton)은 지하가 아니라 하늘 어딘가라고 말했다. 달톤은 "피난처 안에 있는 영들"은 창세기 6장의 타락한 사람들이라고 보았다(Michaels, 210). 그런데 개혁주의 입장은 창세기 6장의 천사의 아들들을 신자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 불신자의 딸들과 결혼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이 타락한 천사들과 사람의 딸들이 결합하여 거인을 생산한 것으로 보기도 하여 명확한 해석은 쉽지 않다.
요점은 그리스도 예수는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그의 이름에 꿇게 하시는" 분이다(빌립보서 2:10 KRV).
그리스도는 한 사람이라도 더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는 것을 기뻐하신다.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다.
2022년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한 사람이라도 더 하나님 나라의 가족이 되기를 바라고 실천하는 삶을 살게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