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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이 여행길: 엄마와 보낸 5일

작성자스타|작성시간26.06.23|조회수28 목록 댓글 0

지난 6월 6일부터 10일까지 LA에 다녀왔다.

내가 애용하는 S여행사가 더 이상 운항을 계속하지 않아 초저가 비행은 없어졌다. 그래도 다행히 40달러 할인을 받아 왕복 120달러에 항공권을 구입하고 아침 일찍 여행길에 나섰다. 비행기는 오후 4시에 출발이었지만, 아침부터 할 일이 많았다.

 

지니도 맡겨야 했고, 지니 개빈대 제거 작전도 거의 마무리해야 했다. 이불을 빨고,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목욕까지 시킨 뒤 시터 집에 가서 빈대 스프레이를 뿌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시터가 조심스럽게 "혹시 빈대가 우리 집에서 옮은 거냐."고 물었다. 나도 아마 그런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출발하기 전에는 돼지족 2파운드로 족발을 맛있게 만들고, 달걀 네 알을 삶았다. 시금치나물과 콩나물무침도 만들고, 로메인 상추와 사과까지 깎아 가방에 넣어 두었다.

 

다행히 공항에는 일찍 도착해 체크인을 마쳤다. 한참을 돌아 게이트에 갔더니 다른 곳으로 변경되었고, 출발도 30분 늦어진다고 했다. 다시 새 게이트로 이동해 탑승을 마쳤더니 슬슬 배가 고파졌다. 준비해 간 족발과 로메인 상추, 삶은 달걀로 요기를 했더니 든든했다.

 

3시간 반을 날아 LA 공항에 도착했다. 작년부터 LA 공항은 새로운 건물로 바뀌어 예전 70년대 건물에서 느껴지던 복고풍 분위기는 사라지고 현대적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우버를 타고 다운타운에 있는 엄마 아파트로 갔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도착했고, 반갑게 맞아 주시는 엄마께 내가 만든 족발을 드렸더니 "사 먹는 것보다 낫다." 하시며 아주 좋아하셨다. 엄마가 주신 옷으로 갈아입고 그대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은 일요일이었다.

 

엄마께 한남마켓에 다녀오겠다고 카드를 받아 들고 나섰다. "엄마, 뭐 드시고 싶으세요?" 하고 여쭈었더니 채소와 과일, 상추, 한우 안심 두 종류, 마른미역, 찰시루떡 등을 사 오라고 하셨다.

 

두 봉지를 가득 들고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하루가 다 지나 있었다. 엄마는 "뭘 이렇게 많이 샀냐."고 하셨지만, 막상 냉장고에 정리해 보니 살 때는 많아 보였던 것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곧바로 한우 다섯 점을 구워 상추와 함께 엄마께 드리고, 된장찌개와 밥으로 저녁을 차렸다. 엄마는 허리가 금이 간 것처럼 아프던 통증이 조금 덜한 것 같다며 무척 좋아하셨다.

 

그리고 월요일이 되었다.

 

된장도 다 떨어졌고 더 살 것이 있어 이번에는 엄마와 함께 다시 마켓에 갔다. 엄마는 허리가 아파 보행 보조기를 짚고 걸으셨다. 나는 엄마가 "아이고, 다리야." 하실 때마다 쓰시라고 목욕탕에서 사용하는 작은 의자를 바퀴 달린 가방에 넣어 다녔다. 지하철역 계단 앞이나 잠시 쉬어야 할 때마다 꺼내 드리면 엄마는 앉아서 쉬셨다.

 

"야, 이거 안성맞춤이다."

 

엄마는 무척 만족스러워하셨다.

 

윌셔길에 있는 영사관에 들러 필요한 서류를 만들고, 거기서 다시 30분 정도 걸어 어제 갔던 한남마켓으로 갔다. 엄마는 "아이고 다리야, 허리야." 를 연발하시면서도 끝까지 잘 걸으셨다.

 

한남마켓에서 무와 상추, 깻잎, 삶은 오징어 다리, 떡 두 종류 등 필요한 식료품을 사고, 건너편 국밥집에서 설렁탕 한 그릇씩 먹었다. 따뜻한 국물을 먹으니 다시 힘이 났다.

 

길을 건너 버스 정류장에 가서 앉아 있는데 뒤따라오시던 엄마가 신호등을 지나 다른 방향으로 가시는 것 같았다.

 

"엄마!"

 

하고 큰 소리로 불렀더니, 마침 중간에 계시던 한국 아주머니 한 분이 앞뒤를 살펴보시고는 엄마에게 손짓하며 "여기로 오세요." 하고 안내해 주셨다. 초면이었지만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버스를 탔다.

 

집에 돌아와 사 온 보따리를 풀어 냉장고에 정리하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다음 날에는 하루 종일 냉장고를 정리하고, 어제 사 온 무로 깍두기를 담갔다. 볶음밥도 만들어 두고, 다음 날 내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쳤다.

 

그동안 엄마는 허리를 다쳐 센터에 나가지 못하셨는데, 고맙게도 센터에서 점심을 카운터에 놓아 주셔서 하루 한 끼는 챙겨 드실 수 있었다. 참 감사한 일이었다.

 

수요일 새벽, 다시 길을 나섰다. 한국인 우버 기사님과 LA에서 사업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공항에 도착했다. 오후에 H시에 도착해 지니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니 저녁 7시쯤이었다.

 

무엇보다 엄마가 내가 LA에 있는 동안 식사도 잘하시고 허리가 많이 좋아졌다고 말씀하셔서 기뻤다.

 

물론 며칠 동안 아버지 이야기와 집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엄마와 몇 차례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시간 덕분에 미국에 와서 오랜 동안 쌓여 있던 모녀 사이의 오래된 갈등을 풀기 시작할 수 있었다.

 

마음을 속에만 담아 두고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때로는 부딪히더라도 서로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해야 오래된 응어리도 풀린다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 다시 한 번 느꼈다.

 

돌아보면 이번 LA 여행은 관광을 다녀온 여행이 아니었다. 엄마와 함께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오래 묵은 마음을 조금씩 풀어낸 시간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충분히 값진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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