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절 이 땅은 차나무의 시원의 자생(自生)지이다.
1. 차나무의 지질학적인 자생설
차나무의 시원(始原)은 시절(時節)이 있는 땅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이 땅에 차사(茶祀)를 지내고 있는 차나무가 처음 생성되는 화강암의 땅이다.
우리 땅은 4억만년이 넘는 중생대 이전의 토질로서 2억 5천 만 년 전의 중생대 이전의 땅으로 백두산 분화구 일대와 제주도, 울릉도 등 화산지대의 일부 해안선의 수성암 지대를 제외한 국토의 90%이상이 중생대 이전에서 신생대로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화강암 지대이다. 그래서 차나무는 중생대 이후부터 이 땅에 자라온 자생 차나무다. 차나무의 생장적지로 안개가 자주 끼고, 산이 높고, 골짜기가 깊으며, 배수가 잘되고 가뭄을 이겨내는 난석토(화강암 마사토)와 역석토(자갈이 섞인 땅)를 든다. 이런 토질은 시생대(始生代)나 원생대(原生代). 고생대(古生代), 즉 중생대이전의 부식질 토양에 해당한다. 그리고 지구의 마지막 조산기(造山期)인 신생대에는 화산회토와 진흙땅에는 차의 생장이 부적합하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차나무는 신약의 원료로 중생대 이후부터 이 땅에 자라온 자생수이며, 선사시대부터 우리겨레가 길러 마셔온 토종작물이다.
중국의 곤륜산 인도의 설산 그리고 히말라야 산맥이나 일본의 후지 산은 신생대의 6천5백 만년 이후에 생긴 산이어서 만년설로 인하여 빙하의 침식으로 회산회토의 토양과 기후조건이 차나무 자생에 맞지 않다. 그러나 그 지역사람들은 차물을 마셔야하는 생활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차 재배를 발달시켜야 하였고, 넓은 지역의 여건으로 환경에 맞는 다양한 차 종류와 그 것에 맞는 차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차나무의 원산지는 될 수 없다. 환태평양지대와 중동 알프스 지대도 마찬가지다.
화강암 지대의 특성은 물이 맑고 생수 또는 숭늉으로 마셔온 우리민족은 차자와 연유된 차사가 있고, 민요 속에도 “을시구 절시구 차차차” 라는 가사가 있다 이것은 움직이는 시절을 맞이하여 즐거워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산천에 나는 모든 식물로 차를 만들어 먹을 수 있었고, 술과 발효차(식물들)를 만들어 마실 수 있는 운(雲)을 담고 있는 땅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민족은 기록에 있든 없든 선사시대부터 신약의 원료로 차나무의 찻물을 마셔온 자생식물이 우리 차나무인 것이다. 그리고 차(茶)자의 어원으로 우리발음과 우리글 그리고 우리 운이 담겨있는 우리민족의 차나무인 것이다. 그래서 차나무는 차자의 자연성으로 시절의 시작을 알리는 차사를 지내는 이 지구의 시원(始原)의 민족으로 시원의 민족임을 알리는 문자와 식물이 곧 차나무인 것이다. 그래서 이 땅에 나는 차나무가 시원의 원종인 것이다.
2. 차나무는 온대성 기후의 식물이다.
차나무가 온대성 기후인 이유는 차자의 뜻에서 말하듯이 초아(初訝)의 해석으로 처음 맞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맞이하는 것은 시절이요. 시절은 온대지방에서 발생하는 기후의 영향으로 만물의 변화를 사람이 맞이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차나무의 분포는 북위 45도에서 30도까지 북반구와 남반구에 분포 되어 있다. 는
것이다. 온대성 차나무가 식물성장 환경에 의하여 남방으로 옮겨가므로 중국 남부와 인도 등지에서 홍차, 반발효의 원료밖에 쓸 수 없는 거수(巨樹)의 대엽종 차나무로 변화하게 된 것으로 추정 한다. 차나무는 냉해를 견딜 수 있는 한계선에서 가장 좋은 품질이 생산된다. 이것을 원종으로 볼 수 있다. 남방의 화산회토의 온난 다습한 지방에서 자라는 식물은 열매의 부피가 커지고 나무도 거수화 된다. 그러므로 차나무의 원종은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소엽관목이 된다.
3. 차(茶)자는 차사(茶祀)에서 연유되다.
차사(茶祀)는 처음 맞이하는 시절의 의식을 뜻한다. 그리고 처음 맞이하는 시절에 치른 의식으로 인하여 사(祀)자의 뜻인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생활이 시절과 순응하여 하늘에 닿아 원하는 바를 이루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의식에는 항상 사(祀)를 붙여 차사(茶祀) 혼사(昏祀) 상사(喪祀) 제사(祭祀) 고사(告祀)로서 순응하는 언행(言行)에 기복이 따른다.
시절을 맞이하는 차사는 개천차사, 동지차사로(東地茶祀)로 동지차사는 설 차사(雪茶祀)가 되고 그래서 추석차사(秋夕茶祀)로 우리는 3대 차사를 지내고 있다. 땅위의 현상으로 밤이 가장 길다는 뜻의 동지(冬至)요. 동지(東地)는 땅속의 시작을 알린다. 는 뜻으로 동지차사(東地茶祀)를 지낸다. 동지(東地)가 되면 흰색의 차 꽃을 피워 땅속의 설(雪)을 맞이하는 나무가 차나무이다. 땅속의 시작은 차 꽃이 피고, 땅위는 운의 시작으로 동백이 핀다. 그래서 차사는 차나무에서, 차나무는 차사를 지내기위한 시절의 선택인 것이다.
4. 수로왕의 제사상에 차와 술이 올랐다.
가야국은 서기42년에 세워진 나라다. 수로왕의 제사에 술과 차를 썼다는 가락국기의 기록에 의해 차나무는 이미 오래전에 이 땅에 자라고 있었다.
그 이유가 제사에 올리는 제수 물은 이 땅의 토종이어야 한다는 민족정신이 있다. 우리민족문화의 모든 자연물은 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제수물이 아니면 쓰지 않았다.
차와 술을 같이 쓰는 이유가 차는 시작을 뜻하고 술은 결실을 뜻하므로 우리 것으로 쓰인 것이다. 인도에서 전래는 허 황후의 혼수 물에 차 씨가 기록되지 않았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 기록되지 않은 것을 후세 사람들이 추이 했다고 보고 있다.
삼국사기의 허 황옥의 예물목록
금수능라, 의상필단, 금은주옥, 구슬로 만든 폐물, 난초로 만든 차, 혜초로 만든 술.
5. 중국 구화산에 김교각 스님이 가져간 차 씨
김교각 스님은 성덕왕의 셋째 아들로 713년 24세 때 중국 안휘성의 구화산에 건너갔다. 갈 때 황도 볍씨와 삽살개 그리고 차 씨를 가지고 간 것이다. 이 세 가지는 우리의 토종인 것이다. 그래서 차나무가 이 땅에 원래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스님이 가져간 차 씨가 지금도 금지차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므로 김교각 스님이 중국에 가져간 차 씨는 대렴(828)이 중국으로부터 차 씨를 가져오기 백년이 넘는 이전의 기록으로 이미 이 땅에는 차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는 것이다. 그래서 인도의 전래라 보고 있는 사람도 있으나 조금만 연구해도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리고 허 황옥의 예물 기록에는 차 씨가 기록 되어있지 않는 갓을 알수 있다. 이뜻은 이 땅에 자생하고 있음을 뜻한다.
6. 인도에서 대엽종이 들어왔다는 것은 맞지 않다.
허황옥이 인도 아유타국에서 차 씨를 가져왔기 때문에 김해부근의 차가 대엽이다. 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인도의 대엽과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허 황옥의 예물목록에는 차 씨 없으므로 지금 김해부근에서 자라는 야생 차나무는 그 지역의 본래 차나무인 것이다. 그래서 죽로차, 장군차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다.
죽로차는 대나무가 빠른 성장을 뜻하므로 그와 같은 차 운(茶雲)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자연성이다. 장군차역시 최고의 성분과 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도학으로 푼 차 명칭의 명칭이 남아 있을 것이다. 바로 이렇게 모든 자연물에 운으로 성분과 효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물질이다. 잎이 크다는 뜻은 김해부근의 터 운인 것이다. 그리고 김해부근은 산악이 아니고 평지이기 때문에 이러한 차나무가 자라게 되는 것이다.
김해(金海)를 도학으로 풀면
金은 쇠금으로 쇠는 힘쓸 쇠(釗)로 풀이하면 이것은 장군차의 명칭과 뜻을 같이하는 것이다. 海는 유학식의 표현이다. 김해를 긴가이(金柯里)로 힘이 센 따뜻한 땅이라는 뜻이다. 고유 명칭은 어느 나라도 고치지 않는다. 그래서 지난날 중국의 사천성을 지금은 쓰촨성이라 부른다. 지난날 불렀던 사천성(四天城)은 도학으로 풀 수 있는 말이고, 쓰촨성은 중국식 발음으로 운을 일으키지 않는 말이다. 김해는 유학의 표현이고, 긴가이는 우리의 고어로 운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긴가이(金柯里)에서 나는 차를 마시면 몸에 힘이 나고 따뜻해지는 성분과 효능 가지고 있다.는 뜻이 김가이의 지명에 들어있다.
오래전 보성 대원사 티벳 박물관에서 구화산 금지차 씨를 받아와서 차를 가꾸고 있었다.
보는 바와 같이 우리 땅에서 보기 어려운 차잎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이것은 많은 세월이 흐르므로 그 터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 본다. 이렇듯 모든 생믈은 땅의 영향을 받는다.
김교각스님이 구화산에 가져간 금지차
보성을 도학으로 풀면, 보배 보(寶)자에 성품 성(性)으로 보성의 뜻은 보배로운 땅의 품성을 가지고 있는 땅 운(雲)이다. 그러므로 보성에서 나는 차는 시절성에 의한 생활성이 강한 차로서 대중이 즐기는 차이다.
7. 문헌 속의 기록 (삼국유사에 근거한 우리 차의 자생론)
1) 수로왕의 제사상에 차와 술을 올렸다.
(삼국유사(가락국기)의 기록에 의하여)
왕이 유사(有司)를 데리고 대궐 아래에서 서남쪽 60보쯤 되는 산기슭에 장막을 치고 임시 궁전을 만들어 놓고 기다렸다. 왕후는 별포(別浦)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육지로 올라왔다.
높은 언덕위에서 쉬면서 입고 있던 비단바지를 벗어 그것을 산신령에게 폐백으로 바치고 데려온 시종20명과 가지고온 금수, 능라, 의상필단, 금은주옥, 구슬로 만든 폐물을 가져왔다. 왕후 일행에게 난초로 만든 마실 것과 혜초(蕙草)로 만든 술을 주고 무늬와 채색이 있는 자리에서 자도록 했다.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 원년(661) 3월에 조칙을 내려 끊어졌던 가락국 왕묘의 제향을 다시 잇도록 한다. 매년 정월 3월 3일과 7일, 5월5일, 8월5일과 15일의 다섯 번을 거등왕이 아버지인 수로왕에게 제사를 지낸 것과 같이 9대손인 구형왕까지 묘(廟)에 배향하고, 수로왕의 17대손인 강세급간이 술, 감주, 떡과 밥, 차, 과실 등으로 제사지냈으며, 그 제사는 거등왕이 지낸 5일을 변동하지 않았다. 「조선불교통사」에 차의 대한 기록이 있다. 하지만 실제 문헌으로 보기 어렵고 은유법으로 쓴 지난날의 기록은 해석이 자연성과 맞지 않는 것이다.
2) 삼국유사에 정신대왕이 연대가 맞지 않아 신문왕으로 해석 한다.고 기록되었다.
신문왕의 두 태자가 무리를 이끌고 오대산을 유람하다가 문득 푸른 연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보고 보천과 효명은 세속을 벗고 암자를 지어 수도에 들어간다. 동쪽의 만월대에는 1만 관음보살의 전신이 나타나고, 남쪽의 대기린 산에는 팔대보살의 우두머리인 지장보살이 나타나고, 서쪽의 대장령산에는 무량수여래를 우두머리로 한 대세지보살이 나타나고, 북쪽에 대상황산에는 석가여래를 우두머리로 오백나한이 나타났다. 중앙의 대대는 풍로산, 지로산으로 비로자나불을 우두머리로 1만의 문수보살이 지 금의 상원인 진여원에 이르러 36가지 모양으로 변화를 가졌다. 두 태자는 늘 골짜기의 물을 길어서 차를 끓여 공양하고 밤이 되면 각자의 암자에서 도를 닦았다. 신문왕은 (681)년에 즉위하다.
3) 월명사의 도솔가
경덕왕 19년 경자(760) 4월초 하루는 하늘에 두해가 나란히 나타나서 열흘 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일관의 말에 인연 있는 중을 청해 산화공덕(散花功德)을 지으면 재앙을 물리 칠 수 있을 것이다. 경덕왕이 청양루에서 인연 있는 중이 오기를 기다렸다. 이 때 월명사가 밭 뚝을 타고 길을 가고 있었다. 왕이 단을 열고 기도하는 글을 짓게 하니 월명사가 아뢰었다. 신승(臣僧)은 국선으로 향가를 지을 뿐 성범(聲梵)에는 익숙치 못하다 아뢰니 왕은 말하여 향가를 사용하여도 괜찮소 하여 월명은 도솔가를 지어 바쳤다.
오늘 이에 산화가(散花歌)를 부르며 뿌린 꽃아
너는 곧은 마음의 명령을 심부름 하네
미륵좌주를 모셔라.
용루(龍樓)에서 오늘 산화가를 불러
한 송이 꽃 청운에 뿌려 보내다.
은근하고 정중한 곧은 마음 쓰는 것은
멀리 도솔대선을 맞이하네.
이에 해의 변괴는 사라졌다.
경덕왕은 품다(品茶) 한 벌과 수정 염주 108개를 하사 하다.
갑자기 동자가 나타나 차와 염주를 받들어 대궐 서쪽의 작은 문으로 나가 버렸다. 왕이 이상하게 여겨 뒤를 쫓게 했더니 동자는 내원의 탑 속으로 숨 어 버렸다. 그리고 차와 염주는 남쪽의 벽화 미륵상 앞에 있었다.
4. 김교각 스님 (705-803)
성덕왕의 왕자라 알려진 김교각(705-803)이
24세 때 황립도(볍씨)와 차씨 그리고 삽살개를 데리고 중국의 불교성지인 구화산에 갔다.
중국에는 많은 차나무가 있는데 굳이 우리의 차 씨를 가져갈 이유가 있을까? 함께 가져간 황도(경주)볍씨와 삽살개(땅속을 움직이는 토종개) 차나무( 시절과 땅속의 시작을 알리는 식물)는 그때 신라의 정신과 뿌리를 가져간 것이다. 우리 땅의 토종을 가지고 갔으므로 차나무는 시원부터 이 땅에 자라고(羅生) 있었다.
5. 원효와 사포 성인 (617-686)
부령의 원효 방에서 사포스님이 원효대사를 모시고 있으면서 차를 끓여 올리려 했으나 샘이 없어 걱정 하였다. 그 때 돌 틈에서 솟아나는 물로 차를 끓었다 한다.【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6. 경덕왕과 충담선사 (765)
경덕왕 24년(742-765) 3월3짇날 귀정문(歸正門) 누(樓)위에 나가 좌우 신하들에게 말하기를 「누가 길에서 위의(威儀)있는 승려 한사람을 데려올 수 있는가」이때 마침 위엄 있고 고결한 고승한사람이 길에서 거닐고 있었다. 좌우 승려들이 데려다 뵙게 하니 「내가 말하는 위의 있는 승려가 아니다」하고 돌려보냈다. 다시 승려 한사람이 납의(衲衣)를 걸치고 앵통을 지고 남쪽에서 오고 있는데 왕이 그를 보고 기뻐하며 누 위로 맞았다.
앵통의 속을 보니 다구(茶具)가 가득히 들어 있었다. 왕이 묻기를 「그대는 누구시오」하니 스님이 대답하기로 소승은 충담이라 합니다. 왕이 묻기로 어디에서 왔소? 소승은 3월 삼짇날과 9월 중량절이면 차를 다려서 남산 삼화령의 미륵세존께 드리는데 지금도 차를 드리고 오는 길입니다.
왕이 「내게도 차 한잔 나누어 줄 수 있소」하니 스님이 이내 차를 끓여드리니 차 맛이 이상하였으며 찻잔 속에 이상한 향기가 풍겼다. 왕이 말하기를 「내가 듣건데 스님이 가파랑(耆婆郞)을 찬미한 사뇌가(詞 腦歌)가 그 뜻이 매우 높다고 하든데 과연 그러 한가요」하니 스님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나를 위해 안민가(安民歌)를 지어 주시오」했다. 경덕왕 24년 충담선사는 해마다 중3일 (3월3일) 과 중9일 (9월9일)에 휴대용 다구(앵통)를 갖추고 삼화령 미륵세존께 차를 올렸다.
7. 김해민요에 의한 자생설
김해 민요에 가라국의 시조였던 수로왕과 허 황후에게 올렸던 햇 차에 대한 민요가 있다.
다전리(茶田里)에 봄이 오면 삼월이라 삼짇날에
다전리에 햇차 따서 만장 샘에 물을 길러
어방산에 솔 갈비로 밥물 솥에 끊는 물에
제사장님 다한 정성 김해그릇 큰 사발로
천겁만겁 우려내어 장군차를 올릴까요
죽로차를 올릴까요 바이바이 차립니더
나라세운 수로왕님 십왕자의 허 왕후님
가락국가 세운 은혜 이 차 한잔 올립니더
합장하고 비옵니더 김해사람 복 받으소
잘못한 일 점제하소.
김해 사람들이 불렸던 민요다. 민요는 그 지역의 자연 발생적인 토속 혹은 토착이 아니면 불리워 질수 없다. 그리고 제사상에 더더욱 올릴 수 없는 것이 우리민족의 풍속이다. 그리고 민요내용이 모두 우리의 지명과 우리민족의 문화로 이루러졌다.
다전리(茶田里)의 마을 명칭, 김해에 있는 어방산, 그리고 죽로차, 장군차는 순수 우리 차 이름이며 지역이름이다. 나라 세운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수로황과 허 황후에게 차를 올리는 차사(茶祀)을 지낸 것이다. 이와 같이 차나무는 이 땅에 시원부터 자생한 식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의 전래, 인도의 전래는 허구이다. 오히려 차나무가 이 땅에서 다른 나라로 퍼져나간 것이다.
대렴에 의해서 차씨를 가져왔다는 것도 그것이 차나무가 처음 이 땅에 보급된 것이 아니라. 그 때 그 사람이 차 씨를 가져왔다는 기록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