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강(江)
아이는 잘 웃었다. 햇살과 함께 웃었고, 강물과 함께 웃었다. 그 아이는 뙤약볕 내리쬐는 모래밭에, 어쩌다 지나가는 구름의 그늘 같은 존재였다. 강변 모래밭에 햇빛이 눈부시게 반짝거릴 때, 아이들은 다리를 뻗고 앉아 모래를 한 움큼 쥐어 흘리며 그 파장을 상상했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온 모래는 참빗 살 같기도 했고, 그 옛날 할머니가 베틀에 메어놓은 명주실의 날줄 같기도 했다. 거기에 상상의 색을 입혔다. 금색을 입히고 은색을 입히고, 희디흰 백조의 색을 입혔다. 작은 알갱이들이 아래로 떨어지며 생기는 모래의 빛줄기는 아이들의 심심한 시간을 쟀다. 그 즈음 아이는 나타났고, 우리는 아이를 반겼다. 그 아이도 배시시 웃으며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를 반겼다.
아이의 공간은 새로운 놀 거리를 제공해 주는 즐겁고 신나는 놀이터였다. 강물은 넉넉한 품으로 아이들을 유혹했고, 나룻배는 강가에 얌전히 매어져 있다. 우리는 그 배를 타고 싶어 안달이 났다. 강물을 보며 깊은 강 속, 강바닥을 보고 싶었다. 강물 속을 지나다니는 물고기를 보고 싶었다. 강물 위를 달리고 싶었다. 아이는 제 아버지께 혼이 난다면서도 우리의 간청에 모험을 했고, 우리는 물 위를 걷는 기분이 되어 소리를 질렀다. 어느 활발한 친구가 일부러 배를 흔들리게 해 우리를 놀라게 해놓고 까르르 웃으면 우리는 겁먹은 표정으로 함께 웃었다. 그때 집안에서 낮잠을 주무시던 아이 아빠가 달려 나오며 멈추라고 소리를 질렀고, 우리는 꼼짝없이 돌아 나와야 했다. 아이는 아버지께 혼이 나는데도 우리는 그 아리를 졸졸 따라다녔다.
아이는 우리에게 제 아버지가 잡아온 물고기를 보여주었다. 펄떡거리는 물고기가 작은 웅덩이 가득히 들어 있다. 훗날 읽은 어느 일본 소설 속에서 본 저택, 연못에 사는 비단잉어는 주인이 손뼉을 치면 모여들었다. 나는 그 부분을 읽으며 그 이이의 오두막 웅덩이를 생각했다. 물고기도 아이의 목소리를 기억하는지 순간 이이의 앉은키만큼 솟구치며 뛰어올랐다. 우리는 놀라 그 모양이 신기했다.
그 아이는 학교도 다니지 않았다.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산 곳 강가, 외딴 집에 살기 때문에 멀어서 학교를 갈 수가 없었다. 가끔 마을에 내려와 낚싯밥인 지렁이를 잡았다. 깡통을 들고 수체 구멍을 뒤집어 지렁이를 잡다 우리와 마주치면 웃었다. 고기잡이는 아이아버지의 생계였고, 아이는 아버지의 생계를 도왔다. 장날이면 밤늦게 노래를 부르며 거나한 모습으로 내 집 앞을 지나가는 아저씨가 있다. 그 아이의 아버지다. 나는 할머니께 묻곤 했다. “왜 저 아저씨는 밤늦게 노래를 부르며 가?”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밤길이 무서운가 보다.” 아이 엄마는 물고기를 커다란 다라에 담아 읍내 장에 내다 팔았다. 가다가 마을에 팔기도 했다. 잉어는 보양식이라고 몸에 약한 나는 할머니의 배려로 가끔씩 먹을 수 있었다. 우리 마을 어른들도 물고기를 좋아했다. 생으로 먹다 집단으로 간디스토마에 걸려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일도 생겼다.
결혼 후 아이들이 자라 초등학생이 되었을 무렵. 그녀와 연락이 닿았다. 그녀는 수소문해 우리를 찾았고, 뒤늦게 마을의 또래 모임에 가입했다. 서대문의 작은 집, 재건축을 앞둔 허름한 집에서 우리를 맞았다. 어릴 때처럼 여전히 그녀는 밝았고, 잘 웃었다. 명동 노점에서 모자 장사를 한다고 했다. 지나다 들러본 그녀의 점포는 목도 좋고 손님도 많았다. 그녀는 손님들에게도 잘 웃었고 친절했다. 착한 성품과 어릴 때부터 잘 웃던 그녀는 장사를 잘 했다. 표정은 밝아 보였지만 노점상이라 바람을 맞으며 물건을 팔아서인지 피부가 까맣고 거칠었다.
어느 쉬는 날 모임에 나와 고충을 털어놓았다. 간이 나쁘다고 했다. 디스토마균으로 인한 간경화. 아주 오래전에 감염이 되었을 것이라고 의사가 말했다고 했다. 간이 조금씩 조금씩 굳어 가는데 아주 느리게 진행되므로 괜찮다고 했다. 그때부터 섬진강에서 다슬기를 가마니로 주문해 와 삶아 먹고, 녹즙도 만들어 한 그릇씩 먹으며 여전히 장사를 했다.
그런 아내를 두고, 돈을 번 남편이 허튼짓을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녀의 마음은 어둠에 휩싸였고, 캄캄한 밤 스텝에서 부는 폭풍우처럼 분노가 치밀었을 것이다. 가엾은 그녀는 일순을 놓고, 여행도 다니고 운동도 하고 즐겁게 살려고 노력했지만, 아주 느리게 진행될 거라던 그녀의 병은 갑자기 악화되었다. 삶의 끝, 절벽의 난간에서 희망은 사라졌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고, 딱 맞는 간 기증자가 없어 확률이 낮은 아들의 간을 이식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는 결국 깨어나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새가 날기 위해 태어나듯이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서 태어난다. 그녀라고 살면서 행복한 시간이 없지 않았겠지만, 그 행복을 조금만 더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으면. 햇볕이 쨍쨍한 여름날, 나는 그녀를, 이렇게 안타깝게 기억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난이, 학교에 가고 싶은 간절함이, 외로움이 어린 그 아이를 혹사시켰고, 어른이 되어서는 제 몸을 갉아먹는 병에게 그녀의 행복은 저당 잡히고 말았다.
내가 아름답게 기억하는 그 강이, 삶의 터전이던 그녀에게도 아름답기만 했을까?
기쁨과 슬픔과 서러움을 함께 준 그녀의 강. 그래도 그녀는 강을 사랑했을 것이다. 우리가 고향집을 사랑했듯이....
강가 외딴집 어부의 딸은 죽어서 다시 그 강을 찾아 강물 위를 훨훨 날아다닐까? 고사리를 꺾고, 산나물을 캐고, 붉은 철쭉 속에서 웃을까? 나룻배를 타고, 물고기와 놀며 행복해할까? 생명을 준 강. 생명을 거둬간 강. 내 기억 속 그 아이는 지금도 어릴 때 그 모습으로 웃고 있다. 무딘 기억과 아득한 시간들을 간직한 채. 강은 그녀의 웃음을 품고 흘렀으면 좋겠다. 사위어가는 빛이 바람에 흔들린다. 강물에 떨어지는 저녁 빛처럼 까무룩한 기억들. 어릴 적 그 아이의 웃음이 강물 위에서 외로이 가물거린다.
- 김귀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