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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의 9재 학당""

작성자카페지기!!!|작성시간05.03.05|조회수788 목록 댓글 0

고려 문종때 최충이 세운 문헌공도 - 9재학당 

 

1) 간단히 말하자면 사립 교육기관입니다. 그런데 국립교육기관보다 사립교육기관이 훨씬 인

   기가 높았다고 합니다. 왜냐면 시험 출체와 채점을 사립교육기관의 교장이 했기때문이죠.

   그리고 연고등을 고려하기 때문에 합격률도 더 높아서 학생들은 사립교육기관을 더 선호했

   다고 합니다.

2) 12 도
 12도의 시초는 1055년(문종 9) 문하시중(門下侍中:首相)으로 있다가 퇴관한 최충(崔)이 설립한 구재학당(九齋學堂:후에 문헌공도)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는 당시 국학(國學:국자감)이 시설 ·교육면으로 유명무실하여 학업 지망생이나 과거 응시자가 권위 있는 유학자가 세운 사학으로 모여들어 성황을 이룸으로써 다른 현관(顯官) 퇴직 유학들도 사숙을 설립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개경(開京)에 세운 사숙이 12개에 이르러 그 권위는 관학(官學)인 국자감을 능가하였고, 점차 과거 준비를 하는 예비학교와 같이 되었다.

사숙의 이름은 설립자의 시호나 호(號), 벼슬 이름을 딴 것으로, ① 시중(侍中)을 지낸 최충의 문헌공도(文憲公徒), ② 시중을 지낸 정배걸(鄭倍傑)의 홍문공도(弘文公徒:熊川徒), ③ 참정(參政) 노단(盧旦)의 광헌공도(匡憲公徒), ④ 좨주(祭酒) 김상빈(金尙賓)의 남산도(南山徒), ⑤ 복야(僕射) 김무체(金無滯)의 서원도(西園徒), ⑥ 시중 은정(殷鼎)의 문충공도(文忠公徒), ⑦ 평장사(平章事) 김의진(金義珍)의 양신공도(良愼公徒), ⑧ 평장사 황영(黃瑩)의 정경공도(貞敬公徒), ⑨ 유감(柳監)의 충평공도(忠平公徒), ⑩ 시중 문정(文正)의 정헌공도(貞憲公徒), ⑪ 시랑 서석(徐碩)의 서시랑도(徐侍郞徒), ⑫ 설립자 미상의 귀산도(龜山徒) 등이 있다.


3) 구재학당(九齋學堂)
·최충(崔)의 도(徒)·시중최공도(侍中崔公徒)·문헌공도(文憲公徒)라고도 한다. 문종 때 최충이 후진교육을 위하여 설치한 사숙(私塾)이다. 고려시대 사학은 태조 때 정악(廷)이 서경(西京)에 세운 숙(塾)이 시초이나, 1055년(문종 9) 최충이 벼슬을 그만둔 뒤 세운 구재는 시설면이나 교육면에서 국자감(國子監)을 훨씬 능가하여 특히 과거응시자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이로 인하여 학반(學班)을 구재로 나누어 악성(樂聖)·대중(大中)·성명(誠明)·경업(敬業)·조도(造道)·솔성(率性)·진덕(進德)·대화(大和)·대빙(待聘)이라 하였으며, 학과는 5경(五經:易·詩·書·禮·春秋)과 3사(三史:史記·漢書·後漢書)를 중심으로 하고 여기에 시부사장(詩賦詞章)의 학을 더하였다.

이리하여 구재학당은 과거응시를 위한 예비학교의 성격을 띠게 되었는데, 이는 최충이 과거의 고시관인 지공거(知貢擧)를 수차 역임한 데서 연유한 것이다. 구재학당에서는 매년 여름이면 하기강습회의 하나로 하과(夏課)를 개설하였는데, 특히 귀법사(歸法寺)의 승방(僧房)을 빌려 도중(徒中)의 과거급제자로 학식이 높고 아직 임관하지 못한 자를 강사(講師)로 삼아 생도들을 교수하게 하였다.

구재는 학문뿐만이 아니라 선진(先進)과의 우정관계와 더불어 사제간의 애경(愛敬)과 도의연마(道義鍊磨) 등 실천윤리에도 힘썼다. 그리고 구재의 교육방침을 보면 기송사장(記誦詞章)의 학에 기우는 감이 있었는데 그것은 시문을 위주로 하는 시대풍조와 과거 준비에 따른 불가피성 때문이었다. 구재는 최충이 죽은 후에도 문헌공도라 하여 오랫동안 과거응시자의 준비기관으로 존속되었다. 구재가 번성하자 11명의 학자들이 그 학풍(學風)을 모방하여 사립학교를 개설하였는데, 구재를 포함하여 이를 12도(十二徒)라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관학(官學)은 더욱 위축되고 사학만이 발달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4) 해설

학당에는 9개의 재(교실)가 있었는데, 낙성재·대중재·성명재·경업재· 조도재·솔성재·진덕재·대화재·대빙재가 그것입니다. 9재의 가르침은 각각 과목이 달랐습니다. 9재 학당에 입학하면, 맨 처음에는 낙성재에서 예, 악, 사, 어, 서, 수의 육예를 닦았습니다. 그 다음 차례로 각 재에서 배워 나가다가 마지막으로 대빙재에서 끝나게 됩니다. 과거에 합격하고도 아직 벼슬길에 나가지 않은 선비들이 9재 학당의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여기에서 배운 학생들을 가리켜 '최공도' 또는 '최충도'라 하여 매우 우러렀습니다. 9재 학당의 교육 목적은 인격을 다듬고 덕망을 쌓는 데 두었습니다. 과거 시험 준비는 그 다음이었습니다. 이 9재 학당이 우리 나라 최초의 사립 학교 입니다. 최충의 9재 학당을 본뜬 학당이 여러 곳에 세워졌습니다. 그 중, 개경에서 손꼽히는 학당은 9재 학당을 비롯하여 11개나 되었는데, 이것을 통틀어 '12공도'라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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