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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칫솔 세트를 파는 노인은 고시 낭인 출신

작성자나는 어부|작성시간26.06.07|조회수0 목록 댓글 0

싸구려 칫솔 세트를 파는 노인은 고시 낭인 출신, 서울법대 66학번 김기두씨였다 /

늦은 밤 지하철 교대역에서였다.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파란 형광등 불빛 아래 한 노인이 구석에 정물같이 앉아 있었다. 푸석한 머리에 낡은 점퍼 차림이었다. 옆에 작은 카트가 보였다. 노숙자 같았다.

그러나 두꺼운 렌즈에 지적 분위기를 풍기는 얼굴이었다. 본 적이 있다. 지하철 안을 돌아다니며 싸구려 칫솔 셋트를 파는 노인이었다. 아는 사람이었다. 서초동 변호사친구 사무실을 찾아다니면서 이따금씩 돈을 얻어가는 그 사람이었다. 고시 낭인 출신이었다.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저 서울법대 66학번인 김기두씨죠?”

노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어떻게 저를 아시죠?”

그가 반사적으로 손에 든 칫솔 셋트를 들어 올렸다.

“이거나 하나 사 주이소. 하나에 오백원”

내가 지갑을 꺼내 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건네 주었다.

그는 일생을 자격증을 얻으려다 실패했다. 그에게서 또 다른 내가 보였다. 내가 고시에 합격하지 못했다면 그렇게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가슴이 서늘했다.

고시제도가 없어졌는데도 그는 쪽방에 살면서 아직도 공부를 계속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금 무슨 책을 읽으세요?”

내가 물었다.

“전공을 바꿨어요. 하버드대학 경제 교과서를 읽어요. 영어 원서로.”

 

과거로 순간이동을 하는 눈빛이었다.

“제가 사법고시를 여러 번 봤는데 다 떨어졌어요. 쉽게 붙으려고 행정고시를 봤어요. 또 떨어졌어요. 그래서 다시 외무고시에 도전했죠. 거기서도 떨어졌어요.”

그의 손가락에 끼어있는 두꺼운 반지가 보였다. 옛날 왕들이 끼던 도장이 새겨진 반지의 싸구려 모조품이었다.

“양삼승 판사나 강대석 검사를 아세요?”

“양삼승이는 서울법대 동기인데 고시에 수석을 하고 판사를 지내다가 로펌의 대표로 있어요. 강대석이는 검사를 하다가 지금 변호사죠. 고시라는 게 뭔가 하늘에서 도와주는 게 있어야지 나 혼자서는 안 되더라구요.”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스쳤다.

“어떻게 그 친구들을 아세요?”

그가 되물었다.

“저도 변호사예요. 그 선배들과 친해요.”

그가 ‘아, 그렇구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물었다.

“어느 법대 나왔어요?”

“고대 법대요.”

순간 그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왠지 미안했다.

“저는 서울법대를 가고 싶었지만 실력이 부족해서 못갔어요. 저도 고시 공부를 오래 했지만 합격하지 못했어요. 세월만 보냈죠. 그러다가 어떤 분의 도움으로 벼랑 끝에서 간신히 살아났어요.”

“그게 누구였어요?”

그의 얼굴에 호기심이 어렸다.

“믿지도 않던 하나님을 다급하니까 그냥 잡고 늘어졌죠.”

 

그가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버드 교과서를 읽으신다고 했는데 책을 한번 바꿔보실 생각이 없으신지요?”

그가 나를 똑 바로 쳐다보았다.

“어떤 걸로요?”

“성경을 공부해 보시면 어떨까요? 진짜 우리가 합격해야 할 건 천국 고시 아닐까요? 그 자격증은 영원합니다. 부러워하시는 서울법대 동창들 거의 다 고시합격증을 반납하고 백수가 됐어요. 죽은 사람들도 많아요. 저도 변호사 자격증을 반납하고 지금 천국 고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가 한참을 침묵했다.

“나도 영어 성경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다시 같은 고시 준비생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얼마를 가다가 뒤돌아 봤다. 그가 계속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성경을 읽는다. 고시 공부 하듯 한줄 한줄 정성 들여 읽는다. 백 삼십 번 읽었다. 읽고 나서 AI에게 묻는다. 하나님이 내게 던지는 메시지가 뭐냐고. 한 단어로 말하라고 한다. 그걸 화두로 원고지 열 장 전후 분량의 글을 쓴다.

고시 시험장이 지금도 눈 앞에 떠오른다. 종소리가 나고 시험문제가 적힌 두루마리가 펼쳐지면 그 안에 화두 같은 한 단어가 보였다. 그걸 주제로 열 장의 붉은 괘지에 글을 쓰는 작업이었다.

나의 책장에는 낡은 법서가 있다. 책상 위에는 겉장이 떨어 진 오래된 성경이 놓여 있다. 법서는 그 생명이 끝이 나고 성경만 읽는다.

고시 답안지를 쓰듯 매일 글을 쓴다. 오늘 아침 내게 던져진 화두는 ‘지금 이미’였다. 자격을 갖추려고 평생 애쓰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 애씀 자체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합격이니까. 

 

-- 엄상익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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