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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로, 화가로 꿈을 이루려다가 선교사로 헌신한 이인응 선교사님의 사역을

작성자나는 어부|작성시간26.06.20|조회수0 목록 댓글 0

미술가로, 화가로 꿈을 이루려다가 선교사로 헌신한 이인응 선교사님의 사역을 소개하기를 원합니다. 처음부터 선교사의 길을 가려고 한 것이 아니고 원래 계명대학교에서 미술대를 졸업한 다음 훌륭한 화가로 화가의 꿈을 꾸고 1980년 독일 뒤셀도르프로 유학을 떠납니다. 

그런데 유학 시절 어느 날 독일의 작은 마을에서 한 선교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같이 성경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성경 공부를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고 그래서 그의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내가 그림 그리고 성공하는 것이 내 삶의 목표가 아니라 이제는 성공한 화가보다 주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그는 꿈을 가졌습니다.

 그러다가 그의 친구가 스페인령 그란카나리아섬에서 사역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어서 가서 그를 도우며 잠시 지내게 되었는데 하루 아침에 새벽에 해변을 걷다가 갑자기 가슴에 불덩어리가 들어오는 성령체험을 합니다. 요한 웨슬리가 불을 받고 나서 감리교를 창시한 것처럼 이 불을 받은 것입니다. 

그는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주님, 어디든 보내시면 가겠습니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당신은 신학교도 안 나오고 목사 안수도 안 받았는데 무슨 선교를 하냐?”고 “평신도가 무슨 선교를 하냐?”고. 그러나 그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1989년 가족과 함께 아프리카 서부에 있는 ‘기니비사우’라고 하는 나라로 갑니다. 

여러분, 처음 들으시죠? 저도 찾아봤는데요. 이 ‘기니비사우’라는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 중 하나인데, 2021년 유엔 통계를 보니까 1인 1년 총수입, GDP가 759불, 그러니까 일 년 총수입이 114만 원 정도, 한 달에 9만 5천 원 갖고 사는 겁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얼마나 잘 사는지요? 그들은 9만 5천 원 갖고 한 달을 살아요. 별로 안 놀라시는데. 근데 이런 나라는 또 아이들이 많아요. 대부분 일곱 여덟씩 낳습니다. 그러니까 9만 5천 원 갖고 어떻게 한 달을 삽니까?

 그래서 유엔 통계로 보니까 UN에 195개국이 등록돼 있는데 180번째에요. 가장 큰 극빈 국가로서 1년 총소득이 110만 원밖에 안 되는 그 나라에 갔는데, 그 나라가 계속 전쟁이 있고 또 쿠데타가 일어나고, 사람들은 대부분 이슬람이고 또 각각 주술을 섬기는 정령숭배의 신앙을 갖고 있는데, 기독교인은 1%가 되지 않습니다. 

전기도 부족하고 의료시설도 열악한데, 그곳에서 한 사람 한 사람씩 전도합니다. 청년들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면서 말씀을 전하고 그래서 하나둘 청년들이 변화되고 예수 믿기 시작했습니다. 

1993년에 세워진 ‘밀리따르교회’는 훗날 수백 명이 모이는 큰 교회로 성장해서 이 선교사님의 생활을 통해서 많은 젊은이가 훈련받고 학교가 7개나 세워지고 저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해서 가는 곳마다 또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늘 전쟁이 있었기 때문에 총성과 폭격 속에 창문을 닫고 커튼을 가리고 숨어 지내야 했습니다. 그런 위험 속에서도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주일학교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그 나라 교회 지도자가 되고 그들이 다시 시골 마을로 들어가 스스로 교회를 세워서 복음이 온 지역으로 퍼지게 됩니다.

 이렇게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는 귀한 선교사님의 사역에 그의 인생에 가장 큰 고난이 다가왔습니다.

2004년, 그의 큰딸 두제가 미국 카슨뉴먼대학교에서 그래픽을 전공하고 있었습니다. 1학년 여름 방학 때 친구들과 함께 선교지에 와서 머무는 동안에 시내에 나가서 택시를 탔는데 알고 보니 택시로 가장한 무장 강도였습니다.

 그 택시를 타려고 하는데 핸드폰을 탁 낚아채며 출발해 버려서 그만 딸은 그 차 밑에 끌려 들어가서 피투성이가 되고, 머리가 아스팔트에 깨졌습니다. 급히 중환자실에 옮겼지만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 딸의 나이가 20살입니다. 꽃다운 나이에 20살 난 자기 맏딸이 천국에 간 것입니다. 전쟁도 견뎠고 가난도 견뎠고 풍토병도 견디고 다 견뎠는데 사랑하는 딸의 죽음만은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는 주저앉아 울면서 “하나님, 왜 하필 제 딸입니까? 왜 하필이면 제 딸입니까?”

여러분, 이 고난은 당한 사람 아니면 감당하기 힘든 것입니다. 그리고 딸의 유품을 정리하는데 오래전에 본인이 딸한테 사줬던 크레파스, 오래된 크레파스가 있었습니다. 그 크레파스 상자를 보는 순간 딸이 자기에게 오래전에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아빠는 화가였는데 왜 그림 안 그려?” 그 순간 자기도 모르게 그 크레파스를 갖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딸의 죽음이 그의 화가의 꿈을 다시 불러일으켰습니다. 

마음을 추스르고 그림을 그리면서 아프리카 어린이들, 청년, 노인들을 그리며 아프리카에서의 슬픔과 희망을 담아냈습니다. 그림을 통해 아프리카를 품고 그들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그림 밑에 현지어 성경 구절과 고백도 함께 새겨 넣었습니다. 그의 그림은 눈물의 그림이었고, 눈물의 기도였고, 복음의 메시지였습니다.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보면서 깊은 감동을 받기 시작했고, 미국과 한국 곳곳에서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딸을 데려가셨지만 대신 더 많은 아프리카 영혼들을 제게 주셨습니다. 이들의 얼굴과 함께 딸이 남겨준 아련한 추억과 복음을 화폭에 담아 주님의 아름다운 사랑과 역사하심을 전하렵니다. 딸을 잃은 아픔으로 아프리카 땅을 떠났다면 원망과 후회로 채워졌을 생이지만 그림으로 아픔과 슬픔의 땅 아프리카를 떠나지 않고 계속 선교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2024년, 그는 선교사역을 은퇴할 때까지 35년 동안 가장 최빈국인 아프리카 그 땅에서 선교 사역하다가 그의 사역을 마무리하고 은퇴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꿈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꿈은 주님의 때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어떤 문제가 다가오고 어떤 어려움이 다가와도 주님이 주신 영롱한 꿈을 꼭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전진해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주님께서 주신 꿈이 무엇입니까? 아직도 꿈을 갖고 있지 않은 분이 있으면 이 시간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여러분, 미래에 대해서 거룩한 꿈을 붙잡고, 우리 대한민국에 대한 거룩한 꿈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주님의 일꾼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찬송가 490장(통 542) 주여 지난밤 내 꿈에>

 

-- 이영훈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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