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 이근삼 평양출생.
동국대 영문과 졸업.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원 졸업. 뉴욕대학에서 국문학 전공.
펜클럽 부회장 역임. 현
서강대 신방과 교수. 희곡집:[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유랑극단] [제18공화국]
주요저서:[서양연극사],[연극개론],[영미희곡개론]
[대중
문화론]등 다수 극작가 이근삼의 출현은 우리
현대 연극사에서 몇가지 새로운 의의를 갖는다.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1960년에 '원고지'를 발표함으로써 우리 관객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그 후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 '거룩한 직업', '위대한
유산', '욕망', '데모스크의 재판', '국물 있사옵니다' 등을 연이어
발표함으로 극작가로서의 지위를 굳건히 하였다. 그의 이러한 일련의
활동은 미국 유학시절에 벌써 시작되어 영어로 씌여진 '끝없는 실마리',
'다리 밑에서'등의 작품은 캐롤라이나 극단에 의해 공연되기도 했다.
그의 출현이 가져온 첫번째 의의는 연극공간 개념의 확장에서
찾을 수 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1950년대까지의 우리 연극계에
통념화된 연극공간의 개념은 사실적 행동 영역으로서의 장소였다. 그러므로
무대장치에서부터 배우들의 행위에 이르기까지 실제적인 것을 모방하는
방법에 치중하고 있었다. 무대위에서는 이미 설정된 움직임과 제한적인
방향으로만 공간을 활용할 수 있었고 당시의무대는 등장인물들의 현실적
삶만을 수용하는 약속된 장소로서의 고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근삼은 이러한 상투적이고 고정적인 공간 개념을 깨뜨리고 새롭게
공간을 확장하는데 남다른 노력을 보였다. 연극 공간 개념의 확장은
곧 연극 개념의 확대를 뜻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의 단만극만을 살펴
보더라도 이러한 측면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들을 확인할 수 있다.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의 무대는 2천년전 가상의 완국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그 왕국은 역사적인 고증에 의해 재구성된 무대가 아니라 어떤 새로운
행동을 표현해 보이기 위해 설정된 개방적인 공간이다. '거룩한 직업',
'원고지', '유실물', '꿈먹고 물 마시고' 등의 무대는 외견상으로 사실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공간을 활용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종래와
현격한 차이를 지닌다. 종래의 연극이나 공간개념으로는 불가능한 극적
행위들이 우발적으로 대담하게 펼쳐지고, 엉뚱한 인물들이 느닷없이
들이 닥치고, 또한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비사실적인 몸짓이 나타나기도
한다. '낚시터 전쟁', '율보', '향교의 손님', '동쪽을 갈망하는 족속들'에
이르면 공간은 더욱 확장되어 종래의 무대적인 모습을 찾을 수 없고
공간은 그대로 극적인 행위를 위해 개방된 상태임을 볼 수 있다.
이근삼은 흔히 우화가 지닌 구체적 심상과 추상적 의미의 이중적 구조를
드러내기 위해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개방해 놓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공간 개념을 우화적인 극정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연극 공간 개념의 확장과 더불어 두번째 의의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이 시간 개념의 확대라 하겠다. 그의 작품에 나타난 시간은,
그의 극적인 효과를 위한 비역사적 비실제적 공간처럼, 극적인 표현을
위해 의도적으로 설정된 사간일 뿐, 그 시간이 역사적인 시간이나 일상적인
시간과 반드시 대응을 이루지 않는다는 특징을 갖는다.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에 등장하는 해설자는 2천년 전의 과거로 현재의 시간을 회귀시시키며,
다시 그 시기의 어느 하루를 공연시간에 압축시키고 있다. 이 작품에서
왕의 아침 시간과 저녁 시간은 한나절에 불과하나 극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극중시간에 해당된다. '거룩한 직업'과 '원고지'에는 대학교수가 등장하는데,
그의 일상생활의 단면이 극중시간을 이루게 된다. 극히 짧은 시간 동안에
행위를 보여 주고 있으나 그 시간속에는 교수의 과거와 현재의 삶의
태도가 복합적으로 드러난다. 즉 행위들이 시간속에 압축되어 있는 것이며
행위자체가 시간 개념을 동반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이근삼은 극중
시간을 매우 특 ▲<극단
민예의'낚시터전쟁>
이하게 확대시키면서 극적인 의미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이러한 시간을 '현대적인 우화의 시간'이라 지적하고 싶다. 그는 자신이
의도하는 창조적인 우화를 위해 일상적인 시간이나 역사적인 시간 개념을
새롭게 바꾸어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번째 의의를 지적될 수 있는 것이 극적 행위의 제시방법이
갖는 새로움이다. 물론 이러한 제시 방법은 앞서 지적한 공간 개념이나
시간 개념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제시방법중 우선적으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이 서사극적인 수법이다. 그에게
있어서 극적인 행위는 하나의 차단이나, 비판이나, 사유를 위한 사례의
제시에 지나지 않는다. 극중장면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관객의 심리적
거리를 되도록 멀게 함으로써, 즉 이화작용을 촉진시킴으로써 사태에
대하여 항시 객관적으로 임하도록 제시하고 있다. 극중에 발생하는 사건이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그러그러한 하나의 사례임을 상대적인 강조해
드러낸다. 그의 제시방법으로서는 우화적 수법도 주목된다.
앞서 그의 우화적인 공간성이나 시간성에 대하여 언급하였거니와 이러한
방법이야말로 이근삼의 연극에서 핵심적인 요소라 하겠다. 그의 우화는
오늘을 살아가는 동시대인의 의식이나 가치과, 혹은 문명에 대한 비판력을
그 바탕에 갈고 있다는 점에서, 나아가서는 첨단적인 감각과 사고방식에
상응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과거의 모방이 아닌 현대적인
양식으로서 생명력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 가운데는
전통적인 화소에서 빌려온 것도 있고 현실 행활이 화소가 된 것도 있으며
이국적인 양식에서 차용된 소재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들이 애초의 화소에서
벗어나 각기 새로운 우화로 꾸며져 있을 뿐 아니라 그 비유적인 의미
또한 새로운 것이기에 현대적인 우화극이라 하겠다.
◀ <극단 민예의
'꿈 먹고 물마시고'>
표현주의적인 수법도 제시 방법의 하나로 지적 할 수 있다. 사물의
실제적인 모습이나 행위적 객관성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효과적인
표현을 위해 주관적인 과장이나 왜곡, 변화를 보이는 방법을 일컫는다.
이러한 표현주의적 요소는 그의 작품 도처에서 찾을 수 있다. 다음으로
극적인 아니러니를 제시방법의 하나로 들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아이러니, 즉 역설적인 행동으로 가득 차 있다. 단순한 언어적 기교로서의
아이러니를 넘어서 그리스 희극에 등장하는 에이론과 알라존의 인간관계
혹은 그와 같은 행동원리를 도처에서 찾을 수 있다. 소극적
수법 또한 그의 제시방법의 하나로 들 수 있다. 전통적인 연극 형식의
개념에서 본다면 이근삼은 소그의 작가이다. 익살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사건을 다루어 웃음을 참지 못하게 해주고 있다. 즉흥적인 대사, 자발적인
농담과 비판, 과장된 동작과 익살, 더들석한 분위기등은 소극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그의 모든 작품은 이러한 특징과 아울러 현대의 관객들에게
날카로운 비판과 차가운 비웃음을 일으키게도 해 준다는 점에서 소극으로서의
격조를 지니고 있다. 끝으로 음악적 요소의 도입과 시적
분위기의 중시도 제시방법의 하나로 지목할 수 있다. '미련한 팔자대감',
'꿀먹고 물 마시고', '원고지', '유실물'등이 그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는데 모두 소리의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하고 시적인 분위기가 사회풍자와
복합적으로 어울려 있다. 이근삼의 출현이 갖는 네번째의
의의로는 극적인 언어의 영역 확대를 지적할 수 있다. 종래의 작가들은
흔히 일상 언어와 연극적 언어를 구별해 연극에서는 일부러 격조있는
말을 골라 쓰고자 노력해 왔다. 그리고 일이야 말로 작가의 임무인 듯이
부담스럽게 생각해 왔다. 이근삼은 이러한 금기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일상적인 말의 감각이나 말투를 되도록이면 그대로 살려내려는
노력을 보여 주었다. 그리하여 생생한 체험의 언어, 현실적인 감각이
충만한 언어, 그러면서도 극적인 행동이나 분위기가 넘치는 절제된 언어를
구사하기에 힘을 경주하였다. 현대적인 우화를 연극적인 갈등 구조속에
담기 위해 그는 비유, 변화, 강조등의 수사방법을 종횡으로 활용하여
특히 야유, 풍유, 아이러니, 패러디와 같은 문장기교에 퍽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다. 이근삼의 이상과 같은 새로운 시도와 다양한 방법들은
연극사적으로 매우 의의가 있는 것이고, 또한 작품에 따라서는 이러한
시도와 방법들이 효과적으로 총체성있게 조화되어 하나의 작품으로 완결성을
획득하기도 한다. 그러나 때때로 모색과 시도에서 그쳐 버린 경우도
없지 않다. 여러가지 논란과 해석상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근삼은 우리 연극사에서 하나의 뚜렷한 개성적 작가이며, 특히 현대적인
우화극의 한 형태를 남기고 있는 점에서 작가적 생명력과 함게 후배
문인들에게 새로운 좌표가 되고 있다고 하겠다.
◀<문학세계사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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