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강 기도란 “주세요”가 아니라, 자신을 비우고 주님으로 채우는 것이다
본문 | 누가복음 9:23, 갈라디아서 2:20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잠언 30장 15절에는 거머리에 대한 인상적인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거머리는 피를 빨아도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아무리 빨아도 또 달라고 외치며 끝없이 달라붙는다. “두 딸”이라는 표현은 멈출 줄 모르는 탐욕과 끝없는 욕심을 상징한다.
오늘 우리의 기도도 이와 비슷할 때가 많다.
“문제 해결해 주세요. 건강 주세요. 잘되게 해 주세요.”
기도가 끊임없이 ‘주세요’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기도는 잘못이 아니다. 예수님도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마 6:11)라고 가르치셨다. 그러나 기도가 언제나 그 수준에만 머문다면, 신앙은 어린아이의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기도의 성숙은 ‘주세요’에서 멈추지 않는다. 기도는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의 뜻과 성령의 다스림으로 채워지는 자리로 나아간다. 바로 이것이 기도의 본질이며, 기도가 향해야 할 방향이다.
비우는 기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이 말씀은 제자의 삶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단순히 믿는 데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내 안에 자리 잡은 옛 자아를 내려놓는 데서 시작된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더 이상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님을 인정하는 결단이다. 내 생각과 욕망, 고집과 계획을 하나님께 내려놓는 일이다. 기도는 바로 이 자기 부인에서 출발한다.
불신앙과 불순종, 미움과 두려움, 완고한 고집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로막는다. 또한 마귀가 틈탈 자리를 내어 주고, 성령의 역사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비워야 할 것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내면의 문제들이다.
먼저 인격적인 차원에서 비워야 할 것들이 있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죄성과 성품이다.
분노는 작은 일에도 마음을 폭발하게 만든다.
미움은 상대를 용납하지 못하게 한다.
고집은 내 방식만 옳다고 주장하게 만든다.
교만은 자신을 높이고 다른 이를 판단하게 한다.
자기 주장은 하나님의 뜻보다 내 뜻을 앞세우게 한다.
이런 것들이 마음에 남아 있으면 하나님과의 교제는 흐려지고, 기도의 통로는 막히게 된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이런 성품을 내려놓고 다스림을 받는 시간이다.
또한 영적인 차원에서 비워야 할 것들도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무너뜨리는 죄악들이다.
회개하지 않은 죄와 불신앙,
음란한 생각과 습관,
세상의 쾌락과 탐욕,
술과 도박, 게임과 스마트폰과 같은 중독,
반복되는 죄의 습관이 그렇다.
이것들은 단순한 연약함이 아니다. 영혼을 질식시키는 사탄의 올무이다. 그대로 두면 기도는 점점 무뎌지고, 하나님 앞에 담대히 설 힘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기도는 단순히 “무엇을 주세요”를 반복하는 자리가 아니다. 기도의 출발은 내 안에 자리 잡은 옛 사람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데 있다. 분노와 미움, 불안과 염려, 비교와 시기, 명예욕까지도 주님 앞에서 비워야 한다.
비움은 회개로 시작된다. 회개는 단순한 인정이 아니다. 내 안에 남아 있는 죄의 뿌리를 직면하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끊어내려는 결단이다. 성경은 회개를 옛 사람을 벗어 버리는 일로 설명한다(엡 4:22–24).
비움은 성령의 역사로 완성된다. 성령은 불처럼 임하여 겉으로 드러난 죄뿐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숨은 교만과 탐심, 미움과 음란의 뿌리까지 다루신다. 기도 가운데 성령의 불을 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난 또한 비움의 통로가 된다. 고난은 우리가 의지하던 것들을 내려놓게 하고, 하나님만 붙들게 만든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통해 자신을 비웠고, 요셉은 억울한 고난 속에서 원망과 혈기를 비웠다. 고난은 우리를 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다.
채우는 기도
비움은 끝이 아니다. 비움은 주님으로 채워지기 위한 준비이다. 예수님은 비워진 마음이 무엇으로 채워지는지가 신앙의 방향을 결정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눅 11:24–26).
주님으로 채운다는 것은 종교적 열심을 더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 안에 다른 무엇을 더 얹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이 실제로 주인이 되는 것을 뜻한다.
사도 바울은 이 채움의 본질을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
이 말씀은 ‘비움과 채움’이 무엇인지 가장 분명하게 설명해 준다. 바울은 단지 죄를 버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내가 더 이상 주인이 아니다’라고 고백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울의 삶이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삶의 중심과 주도권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이제 그의 생각과 판단, 감정과 선택의 기준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에 놓여 있다.
이것이 채우는 기도의 핵심이다. 채우는 기도는 무엇을 더 얻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누가 내 삶의 주인인지를 분명히 하는 기도이다.
그래서 채우는 기도는 달라진다.
“주님,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오”라고만 기도하던 사람이
“주님, 이 상황 속에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시고 주님이 드러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게 된다.
또한
“제가 원하는 길로 가게 해 주십시오”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걷게 하소서”로 옮겨진다.
이때 비로소 성령 충만이 실제가 된다. 성령 충만은 감정의 고조가 아니다. 성령께서 내 생각과 감정, 선택과 행동을 주관하시는 상태이다. 삶의 주도권이 나에게서 성령께로 옮겨진 상태이다.
그러므로 채우는 기도는 막연한 개념이 아니다. 비우는 기도를 드린 후에는 의식적으로 성령의 충만과 주님의 다스리심을 구해야 한다.
“주여 임하소서.”
“주여 나를 다스리소서.”
“성령을 부어 주소서.”
이러한 기도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내 삶의 주도권을 주님께 내어 드리는 고백이다. 또한 내 힘과 지혜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기를 원하는 믿음의 표현이다.
이 기도는 기도 시간에만 드리는 것이 아니다. 일상 속에서도 계속되어야 한다. 사람을 만날 때에도, 일을 할 때에도, 길을 걸을 때에도 마음으로 계속 주님을 찾고 의지해야 한다.
필자 역시 일상 가운데 틈만 나면 “주여 임하소서”, “주여 나를 다스리소서”, “성령을 부어 주소서”라고 기도한다. 이러한 기도는 특별한 순간에만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하루를 살아가는 영적 호흡과도 같다.
그럴 때 성령께서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주관하시며 하나님의 뜻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성령으로 채워질수록 죄를 멀리하게 되고, 세상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된다. 또한 육신의 욕망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를 원하게 된다.
성령으로 채워진 사람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능력이 있다. 말씀은 마음을 비추고 생각을 교정하며, 기도의 기준을 세운다. 말씀으로 인도받는 기도는 막연한 말의 나열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응답하는 대화가 된다.
그렇게 성령과 말씀 가운데 살아갈 때 우리는 주님의 임재를 더욱 깊이 누리게 된다. 기도는 하나님을 잠시 찾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더욱 깊이 누리는 시간이다. 임재로 채워진 사람은 응답이 더뎌도 흔들리지 않는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 자체가 기도의 힘이 되기 때문이다.
비우고 채우는 기도의 사람은 점점 주님의 뜻 안에 거하게 된다. 그럴 때 기도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열매를 맺게 된다. 또한 성령의 다스림 속에서 인격이 다듬어진다. 말이 부드러워지고, 관계가 달라지며, 선택의 기준이 바뀐다.
하나님은 자신으로 가득 찬 사람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비우고, 채우고, 다듬어진 사람을 귀히 쓰신다.
기도는 내가 죽고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시간이다(갈 2:20).
비움 없는 채움은 없고, 채움 없는 비움도 없다.
참된 기도는 비움으로 시작해 채움으로 완성된다. 이 기도의 삶은 개인을 넘어 가정과 교회,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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