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기독교는 "나"라는 존재가 성경 공부를 하여 지식을 쌓고, "나"라는 존재가 예배를 드리며, "나"라는 존재가 기독교라는 종교로 옷을 입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빼면 시체요,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핵심입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부활하신, 살아계신 주님과의 실제적인 "인격적인 관계"를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로 놓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과의 "실제적인 인격적 관계를 맺고 사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그 답이 바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주님처럼 살고 주님을 따르고 그의 삶을 배우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분명히 우리는 주님처럼 살아야 하고 그의 삶을 따르며 그 분을 배워야 합니다. 저는 그것을 절대로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근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을 따르며 그 분처럼 살아야 하기 전에 먼저 갖추어야 할 조건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조건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주님을 따르려고 하거나 주님처럼 살려고 하면 이는 썩은 나무로 다이아몬드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요, 돌덩이로 하늘에 나는 새처럼 날아다니게 하려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사실 성경의 목적은 주님의 도덕적인 삶의 본을 알려 주시고 "이렇게 살아라"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란 존재는 주님처럼 사는 것은 흉내는 낼 수 있으나 실제로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인간이란 존재는 얼마나 보잘 것 없고 연약하며, 그리고 죄악 투성이고 무능한지 우리는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만일 어떤 필수 조건을 갖춤이 없이 주님의 본을 따라 살려고 하면, 그는 정신 병자가 되던지, 아니면 완전한 위선자가 되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 첫번째 방법의 실패 이후, 여전히 그 필수 조건을 갖추지 않은 채, 이제 두번째 또 다른 시도를 합니다. 그들은 빌 4:13절을 읽게 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인격적으로 부족한 자신의 모습! 인간적으로 주님처럼 살기에는 무능한 것을 아는 그들은, 이제는 "내가" 그렇게 살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들은 주께서 그런 능력을 주시면, 미움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거룩한 사람이 되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며 성경의 많은 계명들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주님의 주시는 능력, 그것만 있으면! 그래서 산에서 기도도 합니다. 골방에서 기도도 합니다. 기도회에 나와 부르짖습니다. "주님처럼 살 수 있는 능력을 주시옵소서." 매일 기도합니다. 저는 이런 기도를 거부하고 반대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주님은 이런 분에게 능력도 주시고 그의 인격도 변화시키시며 주님의 계명을 지킬 힘도 주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시험이 들 때나, 또는 그들이 원하는 그 모든 능력을 얻지 못할 때, 그들은 자신의 죄악의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하고, 심지어 하나님께 섭섭함을 느끼며 기도마저도 포기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이 좋을 때는 괜찮은 것 같은데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아서 시험에 들때면 능력의 창구였던 기도마저 포기하더니 심한 패배 의식과 함께 실패의 삶으로 쉽게 치달릴 위험성을 항상 갖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무엇입니까? 문제는 "내가", "나" 또는 "나란 존재"가 하나님께 도움을 얻어내려는데 있습니다. 분명히 우리는 주님의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요청은 더욱 중요한 다른 조건을 하나 갖추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에게 능력만을 주시고 싶으신 것이 아니라 더 엄청난 것으로 채우시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말씀드린 이 두가지의 자세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꼭 필요한 한가지 조건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필수 조건이 무엇이냐? 답은 “올바른 주님과의 관계”입니다.
성도 여러분!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은 주님과의 "관계"이며, 그 관계가 성경에서 요구하는 관계일 때, 그에게는 참된 승리의 그리스도인의 삶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앞에 말한 두 시도의 실패원인은 바로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주님과의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첫째 시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도덕적인 삶의 기준으로 놓고 따르려는 시도로서, 주님과 나의 개인적인 교제가 없는 사람이요,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는 있되, 내가 주인이요, 능력이 많으신 주님은 나를 도와야만 하는 대상으로 존재하는 관계입니다. 말하자면 알라딘의 마술램프처럼 나는 주인 알라딘이요, 우리 주님은 마왕 지니처럼 나의 필요를 채워야 하는 종으로서 존재하는 관계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주님과의 참된 관계는 주님이 주인님되시는 관계입니다.
나는 그 분의 종이 되는 것이요, 그 분이 나의 주인이신 것입니다.
자! 그러면 주님만이 주인되시는 관계란 무엇입니까?
이 관계를 오늘 본문 갈 2:20에서 정확히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결론을 말씀드리면, 주님만이 주인되시는 관계란 "나"란 존재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고 그러므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는 관계입니다. 신학 용어로 이를 신비적 연합관계 또는 영적 연합(Union With Christ)이라고 합니다.
바로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인 것입니다.
이 연합관계, 즉, 그리스도께서 친히 내 안에 사시는 것, 곧, 주님께서 내 인생의 주인으로서 친히 우리의 삶을 대신 사실 때, 그때 우리는 진실로 주님을 알고, 주님을 따르며 그 분을 닮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빌 1:21 절의 바울 사도의 표현처럼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라는 조건이 갖추어지고 난 후, 우리가 그 분께 능력을 간구도 하고, 주님의 삶의 본을 힘껏 따를 때 참 그리스도인의 삶과 승리를 맛보며, 주님께서 친히 어떤 삶을 살으셨는 지를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정말로 사시며 내 대신 나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까 말씀드린 대로 "그리스도께서 친히 내 안에 사시는 것" 그 영적 실체와 그 관계가 없이는 우리의 그리스도인의 삶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이며, 단지 주님을 모방하고 흉내를 내는 차원에서 멈출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 이라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첫째, 이것은 목표가 아닙니다. 이 선언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는 선포가 아니라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면 그가 알던 모르던 존재하는 진리를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주님이 내 안에 살고 계시다는 진리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바로 알고 믿으라는 것이 이 본문에서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가 우리의 믿음이 필요하듯이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신다"는 진리도 우리의 동의와 믿음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한번 아멘으로 대답해 봅시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을 믿습니까?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지금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예, 감사합니다.
분명히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을 알며 믿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똑 같은 한 가지 진리로서 자주 잊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제는 주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사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믿고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 다시 들어 보세요.
주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날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보배로운 죽음입니다. 따라서 나는 나의 죄로 인하여 형벌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구원입니다.
내 죄 때문에 내가 죽을 필요가 없습니다. 왜? 주님이 날 대신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믿음으로 인하여 그 진리의 내용이 우리의 것이 됩니다. 그래서 실제로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죄사함을 얻으며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법 앞에서 자유인이 됩니다. 우리는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우리 죄악의 용서의 확신을 갖고 마음의 평안을 누립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죄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감사와 기쁨이 넘칩니다. 아무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할렐루야!
이 모든 영적인 축복은 바로 하나님께서 베푸신 대속의 은혜와 진리에 대하여 우리가 믿고 받을 때, 우리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주님이 부활하신 후, 성령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믿습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성령으로 이제 우리 안에 계신 것을 믿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이제 성령을 통하여 날 대신하여 내 안에 살아계십니다.
그 부활의 전능한 능력을 가지신 주님이 내 안에 살아 계시니,
이제 내 삶이 더 이상 실패의 삶이 될 수 없습니다.
무능의 삶이 아닙니다. 피곤한 인생을 더 이상 살 필요가 없습니다.
왜? 주님이 내 대신 사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을 확인합시다.
주님이 나를 위하여 죽으셨음을 우리가 믿을 때, 죄의 용서를 체험하듯,
주님이 나를 위하여 사신다는 진리를 믿을 때 우리는 죄에게 승리하는 능력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이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나 대신 십자가에 돌아가셨다.” 까지는 믿고 즐거워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부활하신 주께서 성령으로 그들 마음 속에 살아계시며 함께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망각합니다. 또는 믿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의 즐거움과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 진리를 동시에 받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죄사함의 확신을 갖게 될 뿐 아니라, 나아가 우리의 삶이 더러움에서 변화하여 거룩하여지며 세상적인 삶에서 변화하여 거룩한 하늘 나라의 기쁨과 평강을 누리는 삶이 되며 육적인 삶에서 변화하여 영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야말로 진정으로 힘들고 피곤하고 실패와 낙망의 삶에서 벗어나 능력과 사랑과 기쁨과 안식의 삶이 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삶이 피곤하고 부담되십니까? 이는 아직도 "주님이 내 안에 사시는" 진리를 믿지 않고, 그 영적 실체를 체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주님이 우리 대신 고달프고 죄에 억눌린 삶을 사시겠다는 뜻입니다.
로마서 7장을 보시면, 자신이란 존재가 선을 행하려 할 때의 실패와 고통을 말하고 있습니다. 롬7:19 에 바울의 고백을 보면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내가 착한 일을 하느냐 안 하느냐의 싸움을 했지, "누가" 하느냐의 답을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서 8장을 가면 바울이 이 문제를 정확히 깨닫게 되면서 성령의 생명의 법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곧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살면 자신의 죄성을 이기게 되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지금 복음의 가장 큰 비밀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이 비밀을 깨닫게 하시길 진심으로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 비밀은 이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처럼, 주께서 날 대신 하신 것 두가지! 주님은 “날 대신”하여 죽으셨으며, 주님은 “날 대신”하여 사시는 것을 함께 믿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날 대신 사시는 주님께 내 마음과 삶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마음의 변화가 나타날 것입니다.
날 대신 사시는 주님으로 내 삶의 주인되게 할 때 그 인생은 비로서 참된 승리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축복은 노력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사는 삶에는 믿음으로 인한 진정한 찬양과 감사가 있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인간이 선을 행하려 노력해도 인간이 행하는 모든 것은 죄악이요, 냄새나는 것들 뿐입니다. 그러나 나 대신 주님이 사시며 하시는 모든 것은 선한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착한 사람들이 주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죽고 예수가 사는 사람들… 그래서 주님이 대신 사시는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구원 받는 것도 믿음으로 받으며 신앙 생활도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고, 롬 1:17에서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주께서 “어떻게” 우리 대신 사시는 가를 가르칩니다. 그 답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계시며 우리 대신 사십니다.
롬 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
엡 3:17 :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의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이 성경 구절들은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과, 예수님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계시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엄마가 애기를 임신하면, 그 아기가 정말 엄마 뱃 속에 있지요.
그래서 애기 때문에 걸을 때도 조심합니다. 듣는 음악도 삼가합니다. 아기에게 이야기를 읽어주는 엄마도 있습니다. 이는 모두 뱃속에 아기가 있다는 사실을 자명하게 인식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행동들입니다.
영적 실체의 입장에서 보면, 내 안에 계신 주님은, 내 부모, 남편, 자녀 심지어 뱃 속에 있는 아이보다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내 맘에 계십니다. 내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계십니다. 우리 안에 성령으로 거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믿고 깨달으라는 얘기입니다.
자신이 임신인 줄 모르고, 술먹고 담배 피고 함부로 몸을 굴리던 여자가 자신이 임신인줄 알면 몸을 더 이상 함부로 굴리지 않게 되지요. 자기 뱃 속에 있는 아기를 의식하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예수님이 우리 맘 속에 계시다는 사실을 잊고 살 때는 함부로 죄를 짓고 어리석게 살지만, 정녕 그 귀하고 거룩하신 예수님이 자신 안에 있음을 알게 될 때는 삶을 주의하게 되면 삼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내 안에 성령으로 계심을 믿으셔야 합니다. 믿습니까? 더 이상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더 이상 말하는 사람도 내가 아니라 주님이셔야 합니다. 이에 베드로는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라.”고 당부합니다.
여러분!
그러면 이러한 승리의 그리스도인을 삶을 사는데 있어서 가장 큰 방해 요소가 무엇일까요?
바로 "나" 입니다. 나 자신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절대로 죽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 놈이 죽어야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대신 사실 수 있는데, 그 놈이 죽지 않으니 예수님이 나 대신 살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게 하기 위하여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것 하나를 말하는데,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혀 죽었다"는 사실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내가 죽으려고 노력한다고 죽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십자가를 볼 때 거기에 죽어 걸려 있는 나를 보고서야, 아하!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구나! 그래야 자신이 죽은 것으로 인식하며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목사님! 농담하십니까? 살아있는데 죽었다니요.”
여러분! 하나님 편에서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자들이요 주께서 새 영을 주셔서 다시 태어난 자들입니다. 그 분에게는 우리 옛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산 사람으로 세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나의 자아는, 나의 옛사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구나."
로마서 6장에서도,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선포하고 믿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특히 “죽었다"는 과거형을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롬 6장 3-4절을 보시면,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6절 :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8절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11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자로 여길지어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살아서 꿈틀 거릴 때 마다 그 곳에는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 악당이 다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옛 자아로 "선"이라는 제목아래 "신앙"이라는 제목 아래, 더 큰 악을 범하는지요. 조심하셔야 합니다.
수 많은 교회에서 예수를 믿는 한 형제 자매들 사이에 벌어지는 그 모든 미움과 시기와 분열 뒤에는... 자신들의 "선", "신앙"이라는 것을 위해서 죽지 않은 옛자아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사하는 데에 원인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크게 요구하시는 것은 "나와 함께 십자가에 너의 자아를 못박자"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첫 발자욱은 언제나 내가 죽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내가 죽지 않은 모든 열심은 결국 육의 열매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결과를 빚어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내가 죽지 않은” 열심은 언제나 나의 영예와 내 자랑을 위한 열심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시는 봉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우리에게는 참된 축복이 되는 봉사가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믿음으로 내가 죽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또한 내 안에 예수가 사심을 받으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갑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님이 내 안에 사십니다. 신자가 되자마자 믿음으로 사는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즉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사시는 인생이 믿음으로 사는 삶인 것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소망을 버립시다. 주님께만 소망을 가지시며 우리 자신은 불가능한 존재임을 깨닫고 빨리 자신을 포기하시기 바랍니다. 그 때야 주께서 우리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 대신 사시며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주님께 이렇게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지친 나의 삶. 내가 주인이었던 삶을 주님께 드립니다. 내가 왕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었던 나 누구누구는 십자가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을 믿습니다. 주님, 나의 왕이 되시고 나 대신 사시옵소서. 나는 당신과 함께 십자가에 죽었음을 믿습니다. 이 후로는 내가 아니요 당신이 내 안에 사시며 주님이 나의 왕이십니다."
매일마다 십자가를 보며, 나는 죽었고, 그리스도가 사심을 믿을 때, 나의 열매가 아닌 성령의 열매가 우리의 삶에 맺히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죄성에 패배하지 않고 참으로 승리하게 되는 새로운 신앙 생활의 장이 열릴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계신 주님이 사시는 인생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9.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작성자 스데반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