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묘향산 저녁에 독한 평양소주 몇 잔을 했는데도 아침 일찍 눈이 떠진다. 해가 뜨는 평양의 아침 풍경은 안개가 끼어서인지 희미하다. 미리 양각도 호텔 주변은 자유롭게 돌아 다녀도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간단한 복장으로 산책을 나왔다. 남한에서의 시끄럽고 복잡한 생활에서 벗어난 대동강변의 고즈넉한 분위기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게 한다. 묘향산으로 출발했다. 평양 시내를 빠져나가자 아름다운 전원풍경이 펼쳐진다. 나지막한 야산들만 보인다. ‘평평하고 밝은 땅’이라 평양(平壤)이라 했다더니 주변에 높은 산이 없다. 곳곳에서 모내기가 한창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마주 오는 차를 볼 수가 없다. 묘향산에 도착할 때까지 2시간여 동안 본 차량이 10대가 안된다. 그러고 보니 중앙선도 그어져 있지 않다.
풍치가 하도 절묘하고 향기 그윽한 곳이라 묘향산이라 했다는 이 산에서 첫 번째로 간 곳은 국제친선관람관으로 김일성, 김정일이 받은 세계 각국의 선물들을 모아 둔 곳이다. 산을 뚫어 거대한 2개의 건물을 만들었는데 외부에서는 2층 정도의 한옥 건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모두 176개국 21여만 점의 선물들이 나라별, 종류별, 년도별로 구분되어 전시되어 있다. 정말 대단한 규모의 보물들이다.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보물창고 같다.
김일성관에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김일성 밀랍인형이 있다. 그런데 전혀 참배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어디에서도 참배를 요구받은 적이 없다. 전에 몇 번 와보았던 사람들이 놀라워한다. 북한이 무척 유연해졌다는 것이다. 전에는 최소한 묵념이라도 해야 했다는 것이다. 안내원이 거든다. “주석님이 살아 계신 것 같지 않습네까? 이곳에서 참배를 하는 사람 중에 주석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네다.” 기대에 찬 눈망울을 무시할 수가 없다. “아, 그래요. 놀랍습니다.”
점심을 먹고 만폭동 등반을 시작했다. 만개의 폭포가 있어 만폭동이라고 했다고 한다. 서곡폭포, 무릉폭포, 은선폭포에 당도하니 정자가 있다. 휴식도중에 안내원에게 노래를 부탁했다. ‘우리는 하나’라는 흥겨운 노래를 다함께 합창하면서 남과 북이 하나가 되고 있다. 묘향산에서 매장량이 많은 금광이 발견되었는데, 김일성 주석이 경제적 수익보다 자연훼손을 우려해 금광개발을 막았다고 한다. 바닥으로 향하는 관람객들의 눈길을 보며 안내원이 웃는다. “그렇다고 돌 주워갈 생각은 마시라요.” 하산길 무릉폭포 밑에서 안내원이 깜짝 제안을 한다. “이 시원한 물에 발이라도 한번 담그고 가시라요.” 정말 시원하다. 그 마음이 더 시원하다.
보현사가 오늘의 마지막 코스이다. 1042년에 세워진 사찰로 대웅전, 관음전 등 여러 건물과 우리나라 석탑 중 그 아름다움이 최고라고 하는 8각13층탑이 있는 곳이다. 이곳 주지스님과 함께 간 조계종 스님들이 간단하게 합동예불을 드린다. 이곳에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서산대사와 사명당 그리고 처영 등을 기리는 수충사가 있다. 대웅전 옆에는 한반도 모양으로 가꾼 향나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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