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서목록(求書目錄)
청주고인쇄박물관을 찾는 관람객 안내를 하다가, 전 세계 사람들이 인정하는 최고의 발명이 금속활자이고, 이 발명이 13세기 초 세계 최초로 고려에서 이루어졌다는 설명을 하면 이런 질문을 던지는 분들이 있다.
“금속활자를 발명한 고려는 과연 어떤 나라였기에, 금속활자와 같은 세계 최고의 발명을 할 수 있었을까요?”
사실 이 문제는 금속활자 발명 사실에 대한 어떤 기록도 없는 상황에서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전에 영국의 문화비평가 레이몬드 윌리엄스(R. Williams)의 말을 빌어보자. 그는 기술이 사회를 결정한다는 ‘기술결정론’에 반론을 제기했는데, 한 사회에 어떤 기술은 채택되고 어떤 기술은 배제되는 결정적인 영향은 사회 구성체의 필요성과 적합성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 말에 따르면 고려는 당시 금속활자라는 기술이 필요했으며, 이 기술이 당시 고려 사회에 적합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한걸음 더 나가보자. 금속활자라는 기술이 필요했다는 것은 고려가 지식정보 전달을 위한 뛰어난 전달매체를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 이는 고려시대 우리 선조들이 필사나 목판인쇄만으로는 정보의 유통에 목마름을 느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보다 많은 종류의 책을 신속히 만들기 위해 금속활자를 발명 사용한 것인데, 활자의 가장 큰 장점이 조판을 통해 많은 종류의 책을 신속히 인쇄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기술적인 차원에서의 활자 만드는 방법은, 수천 년 전의 중국이나 서양의 금속 세공기술 발달사를 보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지 이런 기술을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책을 찍는데 활용할 만한 사회수준에 언제 도달했느냐는 것이다. 고려는 유럽보다 2세기 이상 빠른 13세기에 지식의 대량생산을 요구하는 수준에 도달했고 이런 사회수준이 금속활자의 발명을 요구했던 것이다.
고려의 당시 수준을 단적으로 알려주고 있는 기록이 바로 <구서목록(求書目錄)>이다.
고려사 선종 8년(1091)편을 보면 ‘송의 황제가 고려에 서적이 많음을 알고 <구서목록>을 써서 주면서, 비록 여유분이 없더라도 찍거나 써서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는 글이 나온다.
목록을 보면 총 128종 4,992권에 달하는 방대한 양이다.
당시 중국은 당이 망하고 계속된 전란으로 많은 서적이 소실되어 황제가 직접 타국에 까지 필요한 책을 요청한 것인데, 이는 당시 고려의 서적문화가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것을 알려 준다.
고려는 일찍이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많은 서적을 수입하여 관리하였고, 중국에서 이미 멸실된 서적들도 고려에서는 전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신난과 몽고의 침입 등 내외 우환으로 찬란했던 문화가 제대로 이어지지 못한 것은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다.
인류 최고의 발명, 금속활자를 세계에서 제일 먼저 사용한 나라, 고려!
21세기 지식정보시대를 맞아 이런 훌륭했던 선조들의 뛰어난 정신과 문화를 제대로 알고 이어받아 세계 속의 코리아로 우뚝 서는데 앞장서야겠다.
청주고인쇄박물관을 찾는 관람객 안내를 하다가, 전 세계 사람들이 인정하는 최고의 발명이 금속활자이고, 이 발명이 13세기 초 세계 최초로 고려에서 이루어졌다는 설명을 하면 이런 질문을 던지는 분들이 있다.
“금속활자를 발명한 고려는 과연 어떤 나라였기에, 금속활자와 같은 세계 최고의 발명을 할 수 있었을까요?”
사실 이 문제는 금속활자 발명 사실에 대한 어떤 기록도 없는 상황에서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전에 영국의 문화비평가 레이몬드 윌리엄스(R. Williams)의 말을 빌어보자. 그는 기술이 사회를 결정한다는 ‘기술결정론’에 반론을 제기했는데, 한 사회에 어떤 기술은 채택되고 어떤 기술은 배제되는 결정적인 영향은 사회 구성체의 필요성과 적합성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 말에 따르면 고려는 당시 금속활자라는 기술이 필요했으며, 이 기술이 당시 고려 사회에 적합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한걸음 더 나가보자. 금속활자라는 기술이 필요했다는 것은 고려가 지식정보 전달을 위한 뛰어난 전달매체를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 이는 고려시대 우리 선조들이 필사나 목판인쇄만으로는 정보의 유통에 목마름을 느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보다 많은 종류의 책을 신속히 만들기 위해 금속활자를 발명 사용한 것인데, 활자의 가장 큰 장점이 조판을 통해 많은 종류의 책을 신속히 인쇄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기술적인 차원에서의 활자 만드는 방법은, 수천 년 전의 중국이나 서양의 금속 세공기술 발달사를 보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지 이런 기술을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책을 찍는데 활용할 만한 사회수준에 언제 도달했느냐는 것이다. 고려는 유럽보다 2세기 이상 빠른 13세기에 지식의 대량생산을 요구하는 수준에 도달했고 이런 사회수준이 금속활자의 발명을 요구했던 것이다.
고려의 당시 수준을 단적으로 알려주고 있는 기록이 바로 <구서목록(求書目錄)>이다.
고려사 선종 8년(1091)편을 보면 ‘송의 황제가 고려에 서적이 많음을 알고 <구서목록>을 써서 주면서, 비록 여유분이 없더라도 찍거나 써서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는 글이 나온다.
목록을 보면 총 128종 4,992권에 달하는 방대한 양이다.
당시 중국은 당이 망하고 계속된 전란으로 많은 서적이 소실되어 황제가 직접 타국에 까지 필요한 책을 요청한 것인데, 이는 당시 고려의 서적문화가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것을 알려 준다.
고려는 일찍이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많은 서적을 수입하여 관리하였고, 중국에서 이미 멸실된 서적들도 고려에서는 전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신난과 몽고의 침입 등 내외 우환으로 찬란했던 문화가 제대로 이어지지 못한 것은 참으로 유감스런 일이다.
인류 최고의 발명, 금속활자를 세계에서 제일 먼저 사용한 나라, 고려!
21세기 지식정보시대를 맞아 이런 훌륭했던 선조들의 뛰어난 정신과 문화를 제대로 알고 이어받아 세계 속의 코리아로 우뚝 서는데 앞장서야겠다.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