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니겨 날로 쑤메 뼌한...
우리 민족이 금속활자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사용한 슬기로운 민족이라고 자랑을 하다 보면 바로 반격이 들어온다.
“아니, 그렇게 위대한 발명을 세계 최초로 하였다면서, 세계 문화 발전에 영향을 끼친 것이 거의 없음은 물론, 나라 발전도 못한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이것은 미국의 전부통령인 엘 고어도 지적한 바 있다. 그는 1995년 벨기에 브뤠셀에서 열린 G7 정보통신장관회의 주제강연에서 정보고속도로(Information Superhighway)를 주창하면서 “한국인들은 구텐베르크보다 200여 년이나 앞서 금속활자 인쇄술을 발명했으나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 한국문화를 향상시키는 데는 실패했다.”는 말을 하여 우리를 부끄럽게 한 적이 있다.
금속활자가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가치는 지식정보를 대량으로 신속하게 전달함으로써 인류 문화수준을 급격히 올렸다는데 있다. 이 기준에 비추어보면 우리의 금속활자가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지고는 있지만 이런 본질적인 차원의 질문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럼 금속활자를 세계 최초로 사용했으면서도 문화발달이 늦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문자’에 있었다. 유럽의 지식정보는 30자 안쪽의 표음문자 조합으로 표현될 수 있었다. 따라서 누구나 짧은 시간에 문자를 배울 수 있었고, 문자 해득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에 급격한 문화 발전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동양의 경우 평생 배워도 다 못 배운다는 표의문자인 한자(漢字)를 정보전달 수단으로 사용함에 따라 문자해득계층이 적을 수밖에 없었고, 이는 기술적인 인쇄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태생적인 정보전달 한계였던 것이다.
그러나 일찍이 이런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내놓으신 분이 있는데, 바로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이다.
세종대왕은 총 28자를 조합함으로써 세상의 온갖 소리를 쉽고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를 창제하셨다. 훈민정음 창제 반포문을 보면 왜 세종대왕이 문자를 만들게 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우리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는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데 편하게 하고자 한다.’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이 쉽게 배워서 자주 쓰라’는 창제 사유는 금속활자가 지니고 있는 정보전달의 본질을 정확히 나타내고 있다.
아쉬운 것은 이런 세종대왕의 뜻이 제대로 펼쳐지지 못한 점이다. 당시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기술과, 세계 최고의 문자인 훈민정음이 제대로 연결이 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대단한 발명은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 그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을 다녀 보면, 우리나라의 인터넷과 컴퓨터, 휴대폰 등 디지털 매체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전문가들은 그 근간에 바로 한글이 있다고 한다. 한글이 디지털시대에 잘 맞는 쉽고도 과학적인 문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글날’이 있는 10월에 한글이 지닌 정보 전달 수단으로의 우수성과 세종대왕의 위대함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
우리 민족이 금속활자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사용한 슬기로운 민족이라고 자랑을 하다 보면 바로 반격이 들어온다.
“아니, 그렇게 위대한 발명을 세계 최초로 하였다면서, 세계 문화 발전에 영향을 끼친 것이 거의 없음은 물론, 나라 발전도 못한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이것은 미국의 전부통령인 엘 고어도 지적한 바 있다. 그는 1995년 벨기에 브뤠셀에서 열린 G7 정보통신장관회의 주제강연에서 정보고속도로(Information Superhighway)를 주창하면서 “한국인들은 구텐베르크보다 200여 년이나 앞서 금속활자 인쇄술을 발명했으나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 한국문화를 향상시키는 데는 실패했다.”는 말을 하여 우리를 부끄럽게 한 적이 있다.
금속활자가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가치는 지식정보를 대량으로 신속하게 전달함으로써 인류 문화수준을 급격히 올렸다는데 있다. 이 기준에 비추어보면 우리의 금속활자가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지고는 있지만 이런 본질적인 차원의 질문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럼 금속활자를 세계 최초로 사용했으면서도 문화발달이 늦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문자’에 있었다. 유럽의 지식정보는 30자 안쪽의 표음문자 조합으로 표현될 수 있었다. 따라서 누구나 짧은 시간에 문자를 배울 수 있었고, 문자 해득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에 급격한 문화 발전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동양의 경우 평생 배워도 다 못 배운다는 표의문자인 한자(漢字)를 정보전달 수단으로 사용함에 따라 문자해득계층이 적을 수밖에 없었고, 이는 기술적인 인쇄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태생적인 정보전달 한계였던 것이다.
그러나 일찍이 이런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내놓으신 분이 있는데, 바로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이다.
세종대왕은 총 28자를 조합함으로써 세상의 온갖 소리를 쉽고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를 창제하셨다. 훈민정음 창제 반포문을 보면 왜 세종대왕이 문자를 만들게 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우리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는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익혀서 날마다 쓰는데 편하게 하고자 한다.’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이 쉽게 배워서 자주 쓰라’는 창제 사유는 금속활자가 지니고 있는 정보전달의 본질을 정확히 나타내고 있다.
아쉬운 것은 이런 세종대왕의 뜻이 제대로 펼쳐지지 못한 점이다. 당시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기술과, 세계 최고의 문자인 훈민정음이 제대로 연결이 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대단한 발명은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 그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을 다녀 보면, 우리나라의 인터넷과 컴퓨터, 휴대폰 등 디지털 매체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전문가들은 그 근간에 바로 한글이 있다고 한다. 한글이 디지털시대에 잘 맞는 쉽고도 과학적인 문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글날’이 있는 10월에 한글이 지닌 정보 전달 수단으로의 우수성과 세종대왕의 위대함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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