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만학의 원조 박문규(朴文逵)

작성자鵝湖|작성시간11.02.17|조회수157 목록 댓글 1

 

만학의 원조 박문규

우리나라 역사상 '만학(晩學)도의 상징'으로 꼽힐 만한 인물로는 조선시대 근체시 전문가이자 가선대부(嘉善大夫)의 자리에 올랐던 박문규(朴文逵, 1805~1888)를 들 수 있다.

박문규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집안 어른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으나, 그다지 공부에 관심이 없었다. 대신 그가 관심이 있었던 분야는 바로 '돈'과 '장사'였다.

친구들이 서당에 둘러앉아 공부에 열중하는 동안, 그는 어떻게 해야 돈을 벌 수 있을지 궁리했다. 젊어서 채소장사(菜田)를 시작,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수완 좋은 그는 직접 채소 농사도 관리하고, 시장에서 거래하는 일에도 능숙했다.

하지만, 젊은 나이의 성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말 그대로 떼돈을 벌어 집을 새로 짓고 친구들을 모아 잔치를 벌이기를 여러 날. 방심한 그에게 돌아온 것은 결국 실패였다. 채소도 흉작이 되고, 빌린 돈을 갚지 못해 재산을 모두 팔아야했다.

장사에서 실패한 박문규는 재물의 덧없음을 깨닫고, 정신을 채워줄 학문 쪽으로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 이때 그의 나이 마흔. 고시(古詩)에 매력을 느낀 그는 수만편의 시를 외우고 시에 대한 전문적 식견을 쌓아갔다. 특히 근체시(近體詩, 엄격한 규칙이 있는 한시체)의 전문가로 인정받아 그 명성이 청나라에까지 퍼졌다.

젊은 시절 장사로 이름을 날렸고, 학문에서도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러 사람들의 존경도 받게 된 그는 나이 80을 바라보는 노인이었다.

하지만, 박문규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에너지가 끓어 넘쳤다. 주변의 우려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과거 준비에 몰두하여 그의 나이 83세이던 고종 24년에 당당히 병과 급제하였다.

그의 급제는 조선 조정과 선비들 사이에서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특히 당시 35세였던 고종은 박문규의 열정에 큰 감동을 받아 직접 그를 챙기고 나섰다.

고종은 막 과거에 합격한 박문규에게 병조참지(兵曹參知, 정3품 당상관)를 제수하라고 명하였다. 이것만해도 파격적인 대우였는데, 그 이듬해에는 가선대부(嘉善大夫, 종2품 문무관)로 승진을 시켰다.

일반적으로 가선대부에 오르려면 과거 급제 후 25년은 족히 걸린다고 한다. 고종은 박문규의 나이와 그칠 줄 모르는 노력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종2품으로 승진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박문규는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박문규의 천유집고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나는누구인가 | 작성시간 12.06.23 좋은자료 감사 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